최순실 사태는 탄핵 정국이 되고 탄핵 정국은 국회 청문회와 국정 조사로 이어졌다. 청문회나 국정조사는 사실의 규명이나 의견을 청취하는 제도인데언제부터인가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고 호통 치는 것으로 변질됐다.
질의하는 의원이나 증인석에 앉아 있는 증인이나 똑같은 인격체이다. 성격상 갑을 관계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이 우선이다.
피의자 심문하듯 하고, 을이 갑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듯 해서야 되겠는가. 증인으로 불려나온 한국의 유수 기업인들은 말한다. ‘한국에서 꼭 기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모멸감을 느낀다고 한다.
미처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면 ‘어디 어른들 앞에서…’라 할땐 보기가 민망했다. 질의하는 의원이 ‘어른…’이라고 하니 정말 갑질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을 보고 ‘의원 갑질’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갑질의 횡포’가 사회적 화두가 될 때 어느 정당은 갑질 안 한다고 ‘을지로위원회’를 만든다고 법석을 떨더니 그게 얼마나 표피적이고 가식적인지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국회의원이라는 갑질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었다. ‘표’ 구걸할 때만 을이고 배지를 다는 순간부터는 드러나는 행태가 바로 갑의 본색인 모양이다.
정국은 탄핵 정국이고 대통령 대행 체제가 됐다. 어느 정당의 한 대표는 대통령대행 총리를 보고, 박근혜 흉내 내지 말라고 하고 ‘대행’이라고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야 할 것을 굳이 ‘총리’라고 깎아내리면서 ‘대통령 되신 것 아니시거든요. 폼 잡지 말고…’라는 빈정거리는 대목에선 치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꼭 예의를 갖추라는 말은 아니다. 품격 있게 질책하고 적어도 희화화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을사오적신에 비유하는가 하면 패륜·반란군이라는 말을 마구 쓴다. 이런 행태는 여야 구분이 없다.
또 어느 한 당직자는 ‘새 정부 들어설 때까지 얌전히 국회 뜻 받들라’고 한 대목에선 실소가 나오며 이른바 공인임을 자처하는 그에게서 그런 우는 아이 달래듯 하는 저급한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는 사실에서 적어도 공인의 소양이 저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어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평소 아무 데서나 군림하는 듯한 그 대단한 ‘의원님’이라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공인이라면 최소한의 품격은 갖춰야 할 것 아닌가. 저잣거리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말과는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른바 ‘기름장어’ 같이 요리조리 송곳 질문을 빠져나가는 증인을 보노라면, 그걸 보는 국민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한 대 쥐어박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박한 막말을 마구 뱉어서야 되겠는가.
정치하고는 먼 거리에 있는 내 3등문사가 이런 정치판의 행태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지 모르지만 이 난국에 벌어지는 일들이 하도 어이가 없어 잠시 틈을 내어 써보는 것이다.
누구나 그 나름대로는 인격이라거나 품격이라는 게 있다. 시정인(市井人)은 시정인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이른바 사회 지도자급은 지도자급답게 언어를 가려 써야 한다는 말이다.
꼭 청문회가 아니더라도 외양과는 다르게 언어가 나올 땐 사안의 본질을 흩뜨리기도 하고 듣는 이로 해금 실망케도 한다.
의혹을 밝히고 비리를 추궁하는 것이 청문회의 목적이어서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의는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증인을 겁박하거나 위협하듯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무슨 훈시나 하듯 손을 들어보라고 하거나 ‘당신은 죽어서 천당은 못간다’라는 대목에선 치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저명한 학자의 강의이거나 이른바 교양인이 써야 할 말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정확한 내용과 정연한 논리로 ‘미꾸라지 증인’을 휘어잡아 품위 있게 질의하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