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미칭(美稱)인 오뉴월 ‘염천’이나 ‘염제’는 적어도 금년 여름만은 아니다.
폭서·폭염으로 온통 얼룩졌으니까 말이다.
‘열돔현상’이라는 계속된 찜통더위는 온 산하를 한 달이나 달구었다. 사람들은 온열질병으로 시달리고 잘 맞지도 않는 일기예보는 심신을 더욱 지치게 했다. 오죽하면 기상청을 ‘청개구리’라 하고 ‘양치기소년과 오보청’이라고 비아냥댔겠는가?
폭염 예보만 해도 그렇다. 그 위세의 고비는 주초가 됐다가 주말로, 다시 주초로 반복됐다. 이젠 아예 들을 것도 없고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500억 원이나 들여 설치했다는 ‘슈퍼컴’은 어디로 갔나. 첨단장비라는 말이 무색하게 됐다.
여름이면 언제나 혹사당하는 것이 전기이다. 냉방을 해야 하고 얼음을 만들어야 한다. 선풍기 에어콘도 전기 몫이다.
전기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는데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전기가 누진제라는 이름으로 본의 아니게 비난을 받는다. 비난의 실체가 전기 그 자체인가 아니면 누진제인가 이제는 그 조차도 헷갈린다.
누진제! 일반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균등할 때 형성되는 것이 생산물의 가격이다. 이에 반해 공공재인 전기는 이 수요공급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6단계로 나뉘는 요금 체계인 줄은 몰랐다. 더구나 나 같이 소액 전기 소비자에게는 별 문제가 없는 줄로 생각했다.
산업화가 시동될 때였다. 당시는 넉넉한 것이 어디 있었을까만 ‘산업입국’에서의 전력이야말로 불가결의 동력인데 그게 태부족이었다. 그래서 나온 제도가 누진제이다. 그야말로 국민의 생활보다 산업부흥이 우선이었다. 전기 요금 체계도 거기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는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산업 우선이어서 싸게 공급하고 그 부담을 일반 가정 수요자로 돌리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누진제 제도를 채택할 당시는 에어콘 보급률이 3%에 불과해 당위성은 있었지만 지금은 80%를 넘어섰으니 누진제야말로 서민은 물론 이른바 중산층에게도 요금폭탄이 될 수밖에 없게 됐다. 고소득층만의 사치품으로 취급되던 에어콘이 이제는 생활필수품이 된 것만으로도 요금 체계를 당연히 개선해야 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당시는 계층 구조가 중산층 중심인 ‘항아리’ 구조였다가 이제는 소수 특수 계층과 극소수 하위 계층으로 나뉘는 시대 변천이 왔으니 이에 따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산자부가 하루 3시간 반 정도만 사용하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가뜩이나 타들어가는 국민 가슴에 부아를 지르고 말았다. ‘SNS’가 그냥 둘리가 없었다. 장관실부터 국민을 향한 권장사항(?)을 지키라고 일갈하기에 이르렀다.
80년대로 기억하는 1차 오일쇼크 때의 일이다. 민간이나 관공서는 난방 온도를 20도인가 얼마를 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 일반 가정과 산업체는 권장 사항이었지만 관공서는 필수 지침이었다. 그때는 국민은 물론 공공기관도 ‘일사불란’이 엄존했던 시절이었고 국가 발전으로 총진군할 때였으니 사회 분위기에 반하는 기류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에너지 주무장관이 퇴근해서 집으로 왔다. 지침을 지키려는 집은 물론 추웠다. 들어서면서 ‘앗 추워! 온도 좀 올려…!’ 했다는 당시의 신문 가십난이 생각난다.
들끓는 민심을 견디다 못해 내논 처방이 요금 30만 원을 기준으로 할 때 2,3만 원 정도 내린다고 했다가 불만 여론이 더욱 거세지니 당국은 허겁지겁 전담 테스크포스팀을 꾸린다고도 했다.
사기업이나 공기업이 영업 이익을 내는 것이야 당연하다. 그러나 공기업인 한전이 상반기 이익만 6조 원이나 내면서 요금 체계 개선은 안중에도 없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기 바빴다. 게다가 산업 연수라는 명목으로 관광(?)을 떠났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공기업의 당연한 행태인가?
또 요금의 1%인 기여금의 누적 액수만 해도 몇 조가 된다니 국가 기간산업이라고 해 횡포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소시민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이윤 창출이 주목적인 사기업과 달리 그것만이 목적이 아닌 것으로 아는 공기업의 운영 실체를 잘 모르는 내가 외형으로 나타난 것만 보고 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말이다.
폭염이 계속돼도 에어콘도 맘대로 켤 수 없었던 요금 누진제! 매달아 놓은 에어콘이 현대판 자린고비(굴비)가 돼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참 안타깝게도 나도 에어콘 가동을 하루 다섯 시간을 넘지 않으려 더위와 사투를 벌였던 지나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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