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마른장마도 끝나고 기상 관측 사상 유례가 없다는 폭염이 심신을 더욱 지치게 한다.
  내가 사는 단독주택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쓰르람 치이…하는 쓰르라미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청량감은 더없이 신선했다. 그 오래전, 농사철에 나무 그늘에 쉬면서 들었던 매미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런저런 소음·진동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자연의 숨소리를 듣는 것이 예사롭진 않았다.
  자그만 화단 하나도 없는데다 길이고 마당이고 온통 보도블록이요 콘크리트 길바닥인데 어디서 생겨나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일단은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매미와 관련해 연상되는 게 하나 있다. 시골 노인이 서울을 와서 지팡이로 콘크리트 길바닥을 쿡쿡 찔러보더니, ‘아! 이래서 서울 쌀값이 비싸구나! 라고 했다는 당시의 코미디물이 있었다. 농업이 주산업이었던 시절은 농촌보다 도시 쌀값이 많이 비쌌기 때문에 나온 소극(笑劇)의 한 소재였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도 또 울어댔다. 2억5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다는 매미는 땅 속에서 굼벵이로 살다가 자란벌레(성충)가 돼 땅 밖으로 나온다 한다. 감나무 그루터기라고 해봐야 직경 1m도 채 안되는데 거기서 생장·탄생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사의이다. 그러면 어디서 왔을까?
  집에서 1km나 떨어진 개운산에서 매미 돼 날아왔다면 이는 무슨 길조가 되는 걸까. 바로 옆집에도 사철나무가 있어도 매미 소릴 듣지 못했으니 이게 무슨 변고가 있으려는 것은 아닌가도 했다.
  야생초 민들레에게는 충·신·강(忠信剛) 등의 9개의 덕목이 있어 구덕초라 하듯, 여기 비해 매미에게도 문·청·염·검·신(文淸廉儉信)의 다섯 가지 덕을 갖췄다고 해서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이 오덕(五德)이라 했다. 즉 곧게 뻗은 긴 입은 선비의 갓끈 같다고 해서 학문, 평생 이슬과 깨끗한 나무 수액만 먹고 산다고 해 청, 사람이 가꿔 놓은 곡식과 채소를 해치지 않아 염치를 알고 있고, 제 살 집조차 없으니 검소함이 있고, 겨울이 오기 전에 때맞춰 죽을 줄 아니 신의가 있다고 해 오덕이라 했다 한다.
  매미를 의인화해 예찬한 시인묵객이 있고, 조선시대 민화에는 상서로운 의미의 매미가 빠지지 않았다. 특히 과거 길에 오르는 선비에게 매미 그림은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었다.
  매미는 또 임금의 머리 위에도 앉아 봤다. 조선시대 임금이 정사를 볼 때 쓰는 관모를 익선관(翼蟬冠)이라 했으니 말이다. 또한 날개는 맑고 깨끗해 귀공자의 풍모를 연상케 한다고 여겨 이른바 속세를 떠난 느낌이 있다고도 한다. 한갓 곤충인 매미가 지엄한 임금님의 머리 위에도 앉아보고 또 오덕이 있다고도 하는데 하물며 매미 보다 못한 인간이 간혹 있음에는 절로 탄식이 나옴을 어쩌지 못한다.
  매미가 어쩌다 오덕을 갖게 됐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일생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무의 껍질이나 뿌리 조직 속에 산란된 알은 2~6주 만에 부화돼 땅 속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2~7년 또는 10여 년이 지나야 성충이 된다. 길게는 17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애벌레로 있어야 하고 몇 번의 탈각(脫殼)을 해야 한다. 그야말로 변태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고의 세월을 지나 신세진 나무의 그루터기를 타고 올라 우화(羽化·날개돋이)를 하고 그 자리에다, 두통·두드러기에도 약으로 쓴다는 선퇴(蟬退·매미껍질)도 남긴다. 그러고도 겨우 수명은 7~20일이라니 10여 년의 인고의 세월은 어찌할꼬. 우화는 곧 등선이라는데 신선이 됐으면 영생을 누리든지 아니면 겨우 ‘순간’을 살으려고 그 기다리고 기다린 고난의 세월은 어디서 무엇으로 보상을 받을까.
  본래의 삶이 굼벵이인가 아니면 매미인가. 인고의 세월(굼벵이로 산)을 견뎌내고 마침내 그 임계점(臨界点)을 찍는 날이 목적인가, 아니면 우화등선(매미가 되는)해 신선이 되는 것이 목적인가를 나로선 그 분별도 할 수가 없는 것이 매미의 일생이었다. 노래나 부르고 오덕을 향유하며 짧은 생이나마 덤으로 여기며 사는 것이 진정한 ‘매미생’일까? 
  매미의 일생이나 사람의 일생이 결코 다르지 않다. 우리들 인생이 가는 길은 결과보다는 과정이라고들 하는 논자도 있다. 험준한 산악 등반을 성공해 정상을 정복했을 때의 성취감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리라.
  17년을 기다려 매미가 되는 것이 마치 육상 100m 선수가 본선 ‘10여초’를 위해 몇 년 몇 날을 준비해야 하는 것과 같아, 오덕에다 참을성 인(忍)을 더해 육덕이라 하고 ‘고덕현사’라 명명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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