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퇴직 동기들과 남해로 야유회를 가는 길이다. 버스 안에서는 ‘라훈아’의 ‘무시로’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와 버린 이별인데 / 슬퍼도 울지 말아요 / 이미 때늦은 이별인데 /
  미련은 두지 말아요. <중략> 눈물을 감추어요, 눈물을 아껴요/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인데/ 무시로-- 무시로--/ 그리울 땐 그때 울어요.”

세월 참 빠르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에 유행했던 노래다. 병아리 교사시절, 라훈아의 애창곡을 즐겨 부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머리위엔 흰 눈이 쌓이고 이마에는 인생계급장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수를 놓았다. 수많은 가수 중에 유난히 이 가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노래도 잘 부르겠지만 내 나이와 동갑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당시에는 하늘을 찌를 듯 인기가 있던 가수도 세월의 연륜 앞엔 장사가 없는가 보다.
그 시절 어떤 노래라도 그 가수가 부르면 히트를 쳤었지만, 유행가란 그 이름과 같이 유행하는 시대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 가수가 현재의 노래를 그 시대에 불렀다면 아마 유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행가란 그 시대가 낳은 음악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오래보면 싫증이 나듯이 유행이란 오래 가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40년 전의 가수라도 현대에 맞게 부단히 노력하면 다시 뜨는 가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나 가요교실에서 우리 또래의 나이에 히트를 치는 가수가 있다.
O가수의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다. 발표 당시에는 인기가 별로였으나 수년이 지난 후 에 다시 뜨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제목 자체가 우리 나이에 걸맞게 노랫말을 지었기 때문이리라.

  야이∼  야이∼  야 ! 내 나이가 어때서 /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
 <중략> 세월아 비켜라 / 내 나이가 어때서 /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차 안에서 이 노래로 합창을 했다. 회장의 인사말 또한 걸작이다. 이제 우리 나이에는 어느 때 라도 가방하나 걸러 매고 나들이 갈 수 있어서 좋다는 것, 직장이 있을 때는 공휴일에 날을 잡아 야유회를 갔었는데, 지금은 아무 날이나 갈 수 있으니 무시로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무시로(無時路)’의 그 깊은 뜻을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차 안에서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남녀 모두 그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가 이야기의 꽃을 피우기에 시간이 모자랐다.
 
대구에서 출발한지 세 시간 반 정도 됐 거제도 대포항(大泡港)에 도착했다. 대포항이란 이름은 거대한 포구의 항구란 뜻이며 조그마한 어촌 마을이었다.
이곳에 있는 횟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회장의 ‘무시로’라는 건배사가 많은 여운을 남기게 했다.
식사 후 대포항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기다란 뱀 모양의 형상을 한 장사도(長巳島)로 향했다.
옛날에는 장사도에 주민이 십 여호 살았으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고 개인이 이 섬을 사서 조경을 하고 식물원, 조각공원, 장미의정원 등을 만들어서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린 관광지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단다. 옛날 초등학교 분교가 그대로 보존됐 있었으며, 교실에 칠판과 풍금도 전시됐 있었다.
게양대에는 국기가 펄럭이고 교문에는 ‘대포초등 장사분교’라고 팻말이 달려 있었다. 남해의 ‘외도’가 인공적인 섬이라면, 이곳 장사도는 자연 경관을 그대로 살린 자연 정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창한 초하(初夏)의 계절에 옛 동기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육지와 바다의 자연경관을 무시로 다닐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하루였다.
그리고 앞으로 동기들의 모임에서 모든 건배사는 ‘무시로’로 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