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제2차 대전이 전성기였을 무렵,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에 영영 씻을 수 없는 핵폭탄 원폭을 투하해 일본열도를 뒤흔들어 쑥대밭을 만들어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직감한 국왕 히로히토는 울음섞인 어조로 항복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대한민국은 그 지긋지긋한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는 미운 일곱 살을 막 지난 여덟살이었다.
어른들께서 조국의 해방을 기뻐하면서 환국할 마음에 들떠 있었다.
나는 아무 뜻도 모르고 덩달아 좋아서 좇아 다녔다.
우리도 이제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가서 마음껏 자유를 누려야지 하면서 간식으로 먹을 고구마와 김밥을 같이 가지고 시모노세키항에 관부연락선을 기다리며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승선시, 배 맨위에 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동서남북으로 누워서 배멀미를 달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갖은 고생을 겪으며 가까스로 고향으로 왔다. 올 때 와싱토(운동화)를 신고 까만 양복을 입고 까까머리로 예쁘게 해서 오니 우리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죽기 전에 못 볼줄 알았는데 보는구나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때 막 추수를 끝낸 후라 감나무에 빨간감이 주렁주렁 달려 눈요기감이 되었다. 촌동네 오니 내 또래 아이들은 다 떨어진 버선이나 맨발로 신을 신고 있는데 어떤 애들은 발뒤꿈치의 살이 헤어져 피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옷은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고, 속내의는 입지 않아 찬바람이 살 속을 파고들어 꽤 추울 것 같았다.
와싱토를 신고 까만 양복을 입은 나를 볼 때마다 얼마나 샘이 낫겠다 싶다. 나보다 몇 살 위인 형또래들이 불러서 갔더니,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주머니가 터져 보기 싫게 되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배급제도가 도래되었는데 설탕, 고무신 등 몇 가지가 나왔다.
우리 집에는 자주색 고무신이 왔는데 내게 딱 맞는 고무신이었다. 나는 좋아서 방에서도 신고 밤에 잘 때도 꼭 껴안고 잠들고 아침에 눈뜨면 고무신부터 먼저 찾곤 했다.
오래 신어 옆구리가 찢어지면 어머님이 헝겊을 붙여 실로 꿰매 오랫동안 신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져 해지면 버렸다.
다시 또 미신을 신어야 하는 불운이 온 때도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나라 사정이 좋아져 다시 좋은 고무신을 신는 시대가 왔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생활이었지만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지금은 신발도 그렇지만 옷도 그렇다.
신기 싫고, 입기 싫어서 버리지 떨어져서 버리는 일은 없다.
우리 집 현관문을 열면 내 신발도 몇 켤레, 할망구 신발도 몇 켤레, 처음 오는 사람은 방 안에 한 10명 정도 놀고 있는 걸로 알 정도다.
신발장에도 꽉꽉, 현관에도 꽉꽉. 또 뜰에는 일할 때 신고 다니는 작업신이 따로 있다. 지금 생각하니 70년 전의 생활이 꿈을 꾼 듯 까마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집에도 고무신 한 켤레도 없는 걸로 아는데, 한날 신발장을 정리하다 보니 막내며느리가 시집 올 때 신고 온 때때신 같은 고운 신발 한 켤레가 신발장 한쪽 구석에 꼭꼭 숨어 있어 옛날 코 고무신이 위안을 덜어 주었다.
우리는 다행이도 좋은 시대에 태어났으니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즐거운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