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무속인, 심리학자, 해몽가(?) 등이 방송에 나와 죽음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어느 무속인은, 자기를 찾아온 고객이 꿈에서 자기가 죽었는데 들어갈 관을 열고 들어가려 했지만 뚜껑이 열리지 않아 끙끙대다가 잠을 깼다는 얘길 들었다. 그로부터 사나흘이 지났는데 멀쩡했던 동생이 갑자기 횡사(橫死)를 당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해몽가는 자기 차례가 아니라 동생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 때 TV방송이 전설이나 설화를 드라마로 제작 방영했다. 너무 오래되어 그 구체적 기승전결 같은 것은 잊었지만 대강 기억에 남아 있는 것만 적어보는 것이니 혹여 오류가 있어도 나 개인에 국한된 일이니 그렇게 이해를 바랄 수밖에 없다. 경기도 진천과 용인을 두고 ‘살아서는 진천(生居鎭川)이요 죽어서는 용인(死後龍仁)’이라는 전설이 있어 그것을 극화한 것이다. 진천은 지형이 분지이므로 농산물이 풍부해 살기 좋은 고장이었고 용인은 산세가 신령스럽게 펼쳐져 풍수지리학상으로 명당이 많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천 사는 사람이 죽어 황천길을 나섰는데 저승사자가 실수로 동명이인을 데려온 것이다. 옥황상제가 대노하여 돌려보낸 것이다. 육신은 이미 죽어 땅에 묻혀 있고 혼령만 살아서 집을 찾아가 내가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받아주기는커녕 들리지도 않지만 들은 척도 않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고혼이 되고 만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일까. 이게 바로 유체이탈이라는 말일까? 60년대 중반 대구에서 자취하며 직장에 다닐 때인데 그해 늦여름 장티브스에 걸렸다. 40도 고열이 오르내리다 새벽녘이나 돼야 조금 내렸다가 또 해가 뜨면 다시 열이 나길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도 밤새 사경을 헤매다가 잠시 잠이 들었는데 그때 어머니가 흰죽 먹으라고 이불을 개키니까 내가, 눈은 흰자위뿐인데다 이는 꽉 깨물고 두 주먹은 불끈 쥔 채 부들부들 떨며 불러도 대답도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내 투병의 시발이었다. 혼절하였다가 3일 만에 깨어나고 열흘 만에 큰 불은 잡고 귀가하여 정신을 좀 차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들은 얘기이다. 놀란 어머니가 가까이 사는 종질을 부른 것이다. 심상찮은 내 몰골을 본 그는 가까운 산부인과 간호사를 불러왔고 링겔을 꽂은 것이다. 그때 갑자기 죽었던 내가 눈을 뜨더니, 간호사를 보고 ‘너 참 예쁘다!’라고 하며 꽂은 링겔을 뽑아 던져버린 것이다. 놀란 간호사가 병원으로 가자고해 종질이 업고 가 입원을 시켰다. 잠을 자는듯하더니 벌떡 일어나 알아듣지도 못할 소릴 지르며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간호사와 종질 둘이 붙잡아도 소용없었다.

1주일을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힘은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제압할 수가 없었다. 위층 아래층으로 오르락내리락 뛰어 다니더니 기어이 코로 입으로 피를 펑펑 쏟고서야 쓰러지는 것이었다. 내 혼절한 이후의 소란이 얼마나 유난했던지 고향 4촌 동생이 죽었단 소문을 듣고 동산병원 영안실을 찾았다는 말까지 훨씬 뒤에 듣기도 했다. 오늘날의 교통통신에 비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당시의 상황이었다. 다음 날 그 산부인과 의사는 경대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지금 같으면 119를 불렀겠지만 축 늘어진 나를 택시로 이송한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죽음이란 꿈속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듯 난 그때부터 꿈속 저승길을 가고 있었다. 죽을 이유는 이렇다. 그 자취집 딸과 나는 그 아버지 몰래 밤 산책도 하는 사이가 됐다. 그걸 아신 어머니가 내게 엄명을 내리며 가까이 말라고 하여 어머니에게 한바탕 부아질을 해놓았다. 그래놓곤 내가 이래선 살 수 없다고 하여 부산앞 바다에 뛰어들고 만 것이다. 바다에 빠진 나를 지나가던 작은 고깃배가 건져 내 두 발목만을 잡고 백사장에다 질질 끌어다 놓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눈 뜨고 내 몰골을 보니 병중에 입었던 내복차림 그대로였다. 이 꼴로는 대구 집까지 갈 수가 없어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섰었다. 그러다 인적이 없는 외진 길을 찾다 보니 허허벌판이 나타났고 또 조금 지나니 산길이 나타났다. 급경사도 아닌 완만한 동산이었는데 골골마다 나무는 없고 모두가 꽃밭이었다. 내 생전 그렇게 휘황 찬란히 핀 꽃을 본 일이 없다.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은 향기와 함께 웃음도 피어내고, 형형색색 여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들리니 그게 바로 환상의 별천지였다.

환희와 법열(法悅)만이 넘칠 뿐이었다. 여기 무슨 인간의 고뇌 같은 것이 있겠는가. 복숭아꽃은 없었지만 그게 바로 무릉도원이었다. 떠나기 싫었지만 아련한 꽃들의 웃음소리와 평화로운 새소리가 하모니를 이룬 동산을 뒤로 하고 밀려나듯 산등성이를 넘었더니 끝도 보이지 않는 광야가 내 시야를 압도했다. 인적은 고사하고 하늘이 처음 열리는 파천황(破天荒) 바로 그것이었다.
 
저 멀리 광채를 발하는 동산만한 태양이 이글거리는 곳으로 나는 달렸다. 전인미답의 사하라사막 같은 지평선은 가도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가삐 쉬는 인간의 숨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 봤더니 이슬람권에서 온 전설상의 처용(處龍) 같은 얼굴을 한 8척 장신이 ‘후유! 나보다 앞선 사람이 있었군!’ 하며 절망하듯 돌아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다시 사방을 살폈더니 이번에는 느닷없이 대전역이었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열차를 탔지만 열차는 떠났고 나는 그냥 철로 위에 서 있었다. 그러길 두어 번 하다 망연히 서 있는데 하늘에서 무슨 주문을 외라는 신의 계시 같은 것이 들렸다. 다시 타고 주문을 웅얼거렸더니 그 주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구역 대합실에 서 있었다. 내 차림새를 보더니 대합실 모든 사람들이 뭐라고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그 마지막 한 사람은, ‘그래서 인생살이는 말이 많게 되는 법’이라고 결론 삼아 얘기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그렇게 해서 고향집 사랑방에 누웠지만 아직도 헤매는 저승길은 끝나지 않았다. 고향집 그 두꺼운 흙담이 내게는 투명이어서 방에 누워서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알고 있었다. 이는 유체이탈이 아니라 혼령이탈이 아니었을까? 앞서 언급했듯 혼절하여 사경을 헤맸던 3일이 지나 눈을 뜬 것이다.

창밖을 내다봤다. 초가을 이름 모를 나무는 잎은 아직 듬성듬성 매달고 있었다. 그나마 차린 정신이 온전하진 않았지만 스산한 가을바람에 나뭇잎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그 와중에도 오 헨리의 마지막 입새가 떠올랐다. 나는, 잎이 아직도 반은 남았으니 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은 무엇이며 그 경계는 어디일까? 잠시 죽어 겪었던 일들은 아주 일부이지만 인간의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그게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이고 이승과 저승의 실체는 아닐까…. 내 어머니도, 지인들도 장티브스가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워낙 심해혼절을 할 만큼 혹독하게 투병했으니 비록 꿈속이지만 죽으려 바다에 투신했기 때문에 살아난 것이라고 역발상(?)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었다. 살려고 발버둥 쳤으면 정말 죽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생즉사 사즉생(生則死死則生)이라는 것인가?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도 혼령만은 구만리장공, 저승을 날아다니며 세세토록 삶을 누린다고 ‘믿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 사생관이다.

아마도 죽으면 모든 것이 허사라는 허무감에 대한 현상학적(現象學的) 반의어라고 생각한다. ‘생거진천 사후용인’ 같은 전설은 있지만 정말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없으니 사후세계의 실체는 그야말로 불가사의다. 3일을 죽어 꿈속을 날아다닌 것이 이 뿐만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환상도 아니고 몽유병 같은 것은 더욱 아니라는 사실이다. 너무 영험(靈驗)스러워 지금도 그 기억은 또렷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단테의 대작 신곡을 조금 읽어보았다는 한 친구로부터 ‘한국판 신곡’을 한 번 써보라는 허풍(?)을 떠는 소릴 듣기도 했던 일이 벌써 40여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