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미명을 틈타 탱크를 앞세운 북괴군의 남침은 인명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순식간에 전 국토를 초토화 시켰다. 물밀 듯이 내려오는 북괴군은 전쟁발발 2개월 만에 마지막 방어선이던 낙동강까지 쳐내려왔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격전을 벌인 낙동강 전투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난으 로 먹고살 기가 팍팍했던 시절에 터진 전쟁에 미군과 함께 위급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인 그 무렵 8월 15일 유병령(兪炳令, 91, 기계인) 옹은 군에 징집이 됐는데, 말이 징집이지 끌려갔다는 게 옳은 표현이다. 그렇지만, 나라에 위급한 상황이 닥쳤는데 불평불만이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온 국민의 절박한 생각이었다. 한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방에서 포성이 들리고 비행기에서 내리쏟듯이 퍼붓는 포탄으로 아비규환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그로인해 너도 나도 남쪽으로 피난길을 재촉했던 것이다. 전쟁 발발 후 시시각각으로 인민군이 쳐들어온다는 흉흉한 소식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한 발짝이라도 더 남쪽을 향해 피난을 할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피난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피난지에서 육군에 징집되다
당시 유 옹의 가족들도 피난민들의 대열에 합류해 낙동강 다리가 끊어지기 전에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옥포 기새골로 피난을 갔지만, 거기도 결코 안전한 곳이 못되어 대구 남산동까지 피난지를 옮길 무렵 젊은이들은 눈에 띄는 대로 마구잡이로 징집을 당할 때 유 옹도 징집하게 됐다. 유 옹은 대구 남산국민학교에 집결해 겨우 이틀간 미군과 함께 훈련을 받은 것이 훈련의 전부다.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인데 기본적인 군사훈련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꿀 수 없었고, 오로지 총만 잡아본 것이 훈련이라고 해야겠다”며 웃으신다. 그런 후에 곧바로 총알이 콩 튀듯 하는 전장(戰場)으로 투입되었지만, 목숨은 오로지 하늘에 맡기고 젊은 혈기로 싸울 수밖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미군과 함께 첫 번째 투입된 곳이 경주지구였다. 부산이 코앞인데 더 이상 북괴군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사력을 다해 싸운 기억만 남았다.


■포항에서 인민군과 격투 중 칼에 찔려 허벅지 부상
경주를 비롯한 경산, 포항, 영천 등 전투에서 사력을 다해 싸웠다. 죽을 고비를 셀 수 없이 넘으며 전투에 임했다. 그러다 포항 전투에서 인민군과 육박전을 치르다 인민군이 휘두른 칼에 허벅지를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천 조각으로 응급조치를 하고 전투는 계속되었다. 부상을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위급한 나라를 구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부상병으로 치료를 받다보면 미군부대로 원대복귀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부상을 감추고 전장(戰場)을 누빌 수밖에 없었다.
격전이 차츰 북상하는 바람에 안강, 칠곡 다부동 격전지 전투를 치르면서 김천, 서울로 향했다. 이때 미군의 엄호아래 진격하면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북한 땅 개성을 거쳐 사리원, 안악, 대동강, 평양으로 입성했다. 수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죽을 고비도 많이 겪었지만, 그 가운데 압록강 전투를 잊을 수가 없다고 유 옹은 회고 한다. 비행기 공습으로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싸웠던 기억은 눈감을 때까지 쉽게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시체를 방패삼아 벌인 전투는 부상이나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고 오로지 적군을 무찔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회고한다.


■“죽을 뻔했다”는 말씀 반복, 치열했던 격전지 눈에 선해
인터뷰 내내 유병령 옹은 “정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말씀 하신다. 그만큼 전쟁의 참상은 끔찍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유 옹은 거제도 수용소를 거쳐 1953년 5월 1일자 육군하사로 만기 제대해 거의 3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부인이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유병령 옹의 가족으로 부인 이달암(87) 여사와 슬하에 4남1여를 두었다. 맏이가 딸(61)이고 아래로 아들 4형제를 뒀다. 손자 4명, 손녀가 3명에 증손자까지 태어나 대가족을 형성해 이제 유 옹은 3대 독자의 한을 풀었다. 자녀들 모두가 출가해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서 살고 기산리 댁에는 두 내외분이 드넓은 고향집을 지키고 있다. 전쟁 때 다친 허벅지가 궂은날이면 욱신거리지만 그 외 건강은 아직 견딜만하다고 말씀하신다.
“자녀들의 효성(孝誠)은 여느집 못지않지만, 형님은 자녀들에게 한사코 ‘부모 걱정은 하지 말고 자녀들 잘 키우면서 너희들이나 잘 살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고 인터뷰에 배석한 집안 동생 유병길(전 군의회부의장)씨가 넌지시 귀띔한다. 자정(子情)이 넘치는 사랑을 유 옹은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유 옹은 현재 적은 금액이지만 참전용사에게 주는 소액의 연금과 노령연금으로 노부부가 생활하고 있어서 넉넉지 못한 편이다. 나라를 지키려다 부상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 참전한 용사들에게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더욱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때늦은 ‘호국영웅기장’ 다소 위로, 참전용사 더 관심가져야
유 옹은 수년 전 (사)대한노인회 경상북도연합회장으로부터 모범노인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보훈의 달에 ‘호국영웅기장’을 수여받아 때늦은 감은 있지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아홉 번 죽을 번 하다가 한 번 살아난다는 뜻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은 유 옹에게 가장 적합한 말인 듯하다. 유 옹이 3대 독자이기에 더욱 그렇다. 유 옹은 젊은이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나라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니까 항시 나라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유 옹의 생각이다. “요즘 공산주의를 너무도 모르는 일부 젊은 층이나 정치권의 몇몇 사람들의 위험한 발상이 항시 걱정”이라고 말한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처참한 모습을 후손들에게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 옹은 한마디 덧붙인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미국인들에게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우리가 오늘날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원조 덕분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6·25 전쟁당시 그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던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들이 남의 땅에서 대가없이 수없이 죽어가면서도 우리를 도운 은혜를 우리는 뼛속까지 간직하고 항시 잊지말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