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다. 영천에 있는 최무선과학관에서는 최무선 장군의 위업을 기리는 숭모기념비제막식과 제21회 추모제를 영천시청 등 관계기관과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고려화포과학의 태두 최무선 선생’이라는 자연석 돌비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웅장·장엄한 위용을 보는 우리들 후손들은 가슴이 뭉클함을 억누르지 못했다.
영성부원군 최무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온 나라가 아는 위인이며 굳이 우리 선조여서만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숭모와 더불어 존경해야 할 영천이 낳은 위대한 인물이다. 지난 1995년 4월에 ‘이달의 문화인물’로 지정된 바 있고 금년 4월에는 ‘호국인물’로 지정되어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보훈청장, 방위사업청장 등 관계기관이 참석하여 현양행사를 가진 바도 있다.
이미 영천에서는 과학관이 운영되고 있고 영상관도 건립하여 어린이꿈나무육성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어서 한국과학교육의 요람(搖籃)으로 자리매김이 됐으니 이 또한 영천의 자부심이요 우리 가문의 영광이다. 이보다 앞선 1993년 8월 7일에는, 우리나라 해군에서 순수한 우리의 최첨단 기술로 처음으로 건조한 잠수함을 최무선잠수함으로 명명했고, 2003년에는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장군이 헌정되기도 했다.
또 2004년 한국천문연구원은 국제천문연맹의 승인을 얻어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영천 보현산 천문대에서 발견한 소행성 5개에 한국의 위대한 과학자 최무선 등 5명의 과학자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래서 ‘최무선별’이 이 하늘을 오늘도 비추이고 있다.
사실, 평소에 위대한 장군의 업적에 비하여 상응한 예우를 받지 못하는가라는 나의 단견도 있었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역사교육의 다양화라는 콘텐츠로 인하여 근현대사에만 치우친 경향이 있어 6·25가 북침이었으며 심지어 그 날짜도 모르는 학생이 있다고 듣기도 했다. 역사적 위인을 경중을 계량(計量)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최무선 장군이야말로 세계 두 번째 화약 발명과 화포와 병기·병선 제조와 건조는 그 업적을 아무리 현창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내 선조라 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광흥창사(고려시대 관리의 녹봉을 맡아 관리하는 관청의 책임자)인 아버지 최동순(崔東洵)의 관할지인 예성강 하구에서 밤낮 출몰하는 왜구가 양민에게는 분탕질을 가하고 세미(稅米) 집산지의 약탈을 일삼으니 이를 보고 고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청년 최무선은 화약을 제조하고 병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먼저 원나라에서 온 염초장(焰硝匠) 이원(李元)을 만나겠다고 했지만 잘 만나주지도 않아 일설에는 집으로 납치해서 화약제조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하기도 한다. 1975년인가 KBS에서는 최무선 일대기를 드라마화한 일도 있었다. 집념의 최무선은 시험 도중 큰아들을 잃는 참사도 당했다.
또 2010년 5월 1일 KBS 과학카페 프로에서는, 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박사가 “로켓을 오늘날의 과학 원리로만 제작하여 발사 시험을 세 번이나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조선 예종·성종 때 만든 軍 병기에 관한 병기도설(兵器圖說)>에 있는 대로 제작 발사했더니 성공했다…” 이를 두고 “조상의 위대한 업적…” 운운은 했지만 “600여년 전 로켓의 원조인 신기전(神機箭)의 발사야말로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라고만 했지, 정작 로켓하면 떠오르는 최무선은 언급을 끝내 하지 않고 강의를 끝내는 것이었다.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이것이 최무선을 대하는 역사 인식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헛헛했다. 영화 명량이 관객 천만을 돌파했다고 하고 왜적과 싸워 이긴 ‘대첩’을 얘기할 때마다 최무선의 화약과 무기 그리고 병선이 떠오름은 왜일까? 화약 발명만이 아니다. 20여 종의 무기개발, 특히 로켓 원리의 원조라 할 주화신기전이야말로, 그것도 과학기술의 불모의 시대인 고려 말에 창안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대성은 현창할 만하지 않는가. 더구나 그 로켓이 얼마나 정밀·신묘했으면 ‘달리는 불’이라는 주화(走火), ‘귀신같은 기계화살’의 신기전이라 했겠는가?
당시의 신기전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복원이 가능할 정도의 설계 기록은 앞서 언급한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에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1993년 대전엑스포에서는 신기전과 발사대의 화차를 복원하여 발사에 성공했다 한다. 고려시대 당시로서는 세계 최초일뿐더러 설계기법도 현대식과 같으며 길이 단위를 0.3mm인 리(釐)를 사용했다는 초정밀성과, 오늘의 우주과학 시대에 와서 그대로 복원하여 시험 발사해본 결과가 성공했다는 사실에 모두를 경탄케 했다 한다.
지난 2009년 9월 17일에 개최한 국제우주대회에서는 추가 문헌조사를 통해서 당시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 발사했으며 대회 기념 신기전축제와 산화(散火)신기전에 대한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한다. 특기할 것은 산화신기전이 세계 최초의 2단 다연발장착이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세계 화약 발명사와 로켓 개발의 한 획을 그은 최무선 장군이야말로 한국의 우주과학 기술을 고려 말에 이미 개발했으니 이 기회에 세계인에게 각인시킬 좋은 사료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화약하면 한국인은 최무선을 떠올리고 세계인은 알프레도 노벨을 떠올린다. 일반적으로는 같은 화약이라고 알고 있지만 엄격하게 보아, 최무선의 화약이 순수한 ‘자연화약’이라면 노벨의 화약은 ‘인공화약’이라고 해야 맞다고 한다. 노벨이 화약 발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아 오늘의 노벨상을 제정했는데 이보다 600여년이나 앞선 최무선의 화약 발명이야말로 재화의 가치로만 환산한다면 물경(勿驚)이라고밖에 쓸 말이 없다. 화약 다음으로 떠올리는 것이 진포대첩(鎭浦大捷)이다. 진포는 지금의 전북 군산으로 창궐하는 왜구와의 대첩은 그 외 최영의 홍산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 정지의 관음포대첩이 있지만 그 중 왜선 500여 척을 전멸시킨 진포대첩이 가장 많이 기록(역사서)에 등장하는 것도 그만큼 전공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군산시에서는 화약 발명의 필요성을 통감한 최무선 장군의 선견지명과 그 지략은 청사에 길이 빛날 전승을 가져왔고 그의 휼민애족(恤民愛族)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작비 10억 원을 들여 군산시민의 뜻과 정성을 모아 전승지에 진포대첩 사적비와 군산진(群山鎭) 사적비를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매년 10월이면 당시의 진포대첩을 가상하여 시연 행사를 갖기도 한다.
이 진포대첩이 역사상의 의의뿐만 아니라 장군의 전공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당대의 대표적 시인이며 문필가였던 권근(權近)이 극찬하는 시문을 남겼겠는가.
시문 중 주요부분만 소개해 본다.
<…주유(周瑜)가 갈대숲에 불 놓은 것이야 우스개일 뿐이고
한신(韓信)이 배다리 만들어 건넜다는 이야기야 자랑거리나 될까보냐
이제 공의 업적은 만세에 전해지고
능연각(凌煙閣·당나라 때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걸어 두던 집)에
초상화 걸려 공경(公卿) 가운데 으뜸일세.>
권근이 조선 개국의 경략가임은 다 아는 얘기이다.
그런 권근이 그 유명한 주유(중국 삼국시대의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무장)와 한신(중국 한고조 유방의 신하로 고조의 통일대업을 도왔다 함)의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도 최무선의 위상을 더 말할 것이 없다.
세계의 전사(戰史)를 얘기할 때나, 무용·영웅담이나 지략가들을 언급할 때면 주유의 적벽대전이나 한신의 과하지욕(舿下之辱·사타구니 밑을 기어가는 치욕)은 빠짐없이 인용된다. 그것만으로도 주유·한신의 유명도가 드러나는데 이들의 지략이 웃음거리가 되고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설파했으니 최무선의 위인(偉人)됨의 풍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온 생애를 호국위민에만 애쓰시다가 돌아가시니 조정에서는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정승판병조사영성부원군이라는 긴 작호를 추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