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환 회장! 하면, 가장 먼저 마음씨 착한 이웃 어르신을 떠 올리게 되고, 선하고 푸근한 인상은 누구나 금방 가까워질 수 있는 다정다감함 까지 갖췄다. 이 회장은 폭넓은 대인관계와 타고난 성실성이 장점이며,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삶으로 평가되어 자수성가의 전범으로 알려졌지만, 젊은 시절에 겪은 모진 고생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느새 8순을 맞았지만, 그 연세로 보이지 않는 타고난 건강까지 겸비해 비결을 물었더니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면 늙을 새가 없지” 라며 활짝 웃으시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이장환 회장은 1개월에 반은 수도권 분당에 살고, 나머지 반은 내상리(낫질) 집에서 농작물도 가꾸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또 고향주민들과 어울려 노후를 보내는 게 일상이라고 들려준다. 마침 고향집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내상리 자택을 찾았더니, 집 주변에 흐드러지게 활짝 핀 연산홍이 필자를 반긴다. 전원주택 앞 야트막한 야산을 개간해 매실을 비롯한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 산수유 등 유실수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가죽나무, 복분자, 취나물, 돈나물 등 야채와 산꼭대기에는 정자(亭子)인 팔각정이 우뚝 솟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필자가 방문한 이날도 야채를 손보다 흙 묻은 손을 털며 일어서는 이 회장에게 “힘드시겠다”는 물음에 “고향에 오면 틈틈이 작물을 돌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라며 “다만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재미로 가꾸어서 이웃과 지인들에게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지난 달 ‘자랑스런 군민상’ 수상을 축하드린다는 인사로 시작해 몇 가지 궁금한 점을 알아본다.

▶지금 하시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영진석유(주), (주)영진에너지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때는 판교주유소, 신정제일주유소, 신성원당주유소 등 여섯 곳의 주유소를 운영했지만, 지금은 몇 개 사업체는 임대업으로 돌리고 안양의 꿈주유소, 금촌주유소, 율정주유소 등 세 곳을 직접 경영하고 있다. 다행히 건강이 뒷받침 되어 아직은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막내아들에게 후계자 경영수업을 하는 중이다. 한창 사업이 잘 될 때는 ‘注油王’을 꿈꾸기도 했고, 주변의 시선도 받은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이 주유사업이 옛날만 못해 격세지감(隔世之感) 마저 느낀다.
 
▶젊은시절 얘기가 궁금합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집안형편이 좋았다. 전답과 임야가 많아 지역에서는 부자 소리를 듣고 자랐다. 형제가 7남매 맏이로 태어나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나고, 아버지(작고, 이 담)께서는 면서기로 공직에 첫발을 들여놓아 군의회 부의장, 관선 고령읍장을 거쳐 초대 민선읍장으로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지만, 6개월 만에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모든 행정관서는 군인들이 장악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일손을 놓았다. 선친께서 선거를 치르는 동안 논밭뙈기 등 재산이 대부분 축난 상태였지만, 제대로 업무를 시작도 못했고, 그 충격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이 회장은 고령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학으로 영남대학교 법대를 마쳤지만, 학창시절의 그 과정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눈물겨운 삶이었다. 장남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아래 동생 둘이 같은 시기에 어렵게 공부했지만, 그 밑에 동생들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 항시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다. 오로지 장남이며 종손이라는 막중한 중압감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평소 아버지께서 바라시던 법관의 길을 가려고 영남대학교 법대를 나와 몇 차례 고시에 응시했지만, 낙방의 쓴맛을 봤다. 법관이 내 길이 아님을 직시하고 진로를 수정해 장사를 해 보기로 마음먹고 첫 사업으로 효렴을 정제해서 고운 소금으로 만든 후 됫박으로 파는 소금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렇다고 망연자실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전매청에 행정직으로 취직하여 신탄진 연초제조창에서 15년간 근무하는 동안 32살이라는 만혼의 나이에 아홉 살 연하인 부인(곽동희)을 만나 결혼했다.

▶선배의 주선으로 주유업계에 뛰어들다
그러나 박봉으로 안정된 노후를 보장할 수도 없고, 동생들 뒷바라지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꿈이었다. 고심하던 중 마침 대신석유주식회사에 근무하는 선배의 권유로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 주유업을 하게 된 시발점이 된 것이다. 평소 폭넓은 대인관계와 타고난 성실성으로 근무하다 보니, 차츰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여 직접 사업을 해 보겠다는 용단을 내리고 사표를 썼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거래관계로 인연을 맺은 업체에서 1995년 당시 10억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받아 판교에 땅을 매입하고 주유사업을 시작했다. 비교적 늦은 60의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 주변에서는 우려의 소리도 있었지만, 정말 옆 돌아볼 새 없이 열심히 노력했다. 그동안 꾸준히 쌓아 온 천부적인 성실성으로 인맥과 노하우를 발휘하여 ‘주유왕’의 꿈을 키워나갔다. 안양의 꿈주유소가 바로 그것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으로 사업이 조금씩 커지면서 이웃과 내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독불장군은 없고, 오로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삶의 철학을 항시 가지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무렵에 싹트기 시작했다. 천성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보면 지나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형편 닿는 대로 남을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그 무렵 다졌다. 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서 우즈베키스탄에 안경을 보낼 때도 동참했고, 남모르게 조금씩 이웃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니 내가 먼저 즐거웠다.

▶재경고령군향우회 활동은 언제부터입니까?
친구인 이상달 회장이 향우회장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향우들과 만나게 되고, 고향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출향인들 친목을 위해 노력했고, 축제나 고향장보기 행사 등 고향 발전과 연관 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고 자부한다.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서던 이상달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그 분의 고향사랑 정신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향우들과 따뜻한 마음이나마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합당한 직책을 맡은 게 필연적인 책무로 생각된다. 재경고령군향우회장이나, 명예고령군수라는 과분한 직분을 맡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고향발전을 위해 쾌척한 성금 내용을 알려달라는 필자의 간청에 이 회장은 대뜸 손사래부터 친다. 아마도 그것은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은 몰라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렵사리 알아낸 통 큰 기부 내역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이 회장의 향우 사랑과 애향심은 남다르다. 우선 고향의 후진 양성에도 이 회장은 특별한 관심을 보여 재경고령고 초대 회장을 맡았을 때 매년 모교 후배들에게 장학금 수여의 전통을 만들었다. 교육발전기금으로 지금까지 3천5백만 원을 쾌척해 개인 기부금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고, 열악한 재정 확충을 위한 일에는 기업유치와 예산확보에도 엄청난 열의를 보였다.
재경고령고동문회 창립 당시는 본교가 통합 전이었지만, 언젠가 실고와 여종고가 통합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아예 동문회 이름을 ‘통합 동문회’로 명명한 것도 이장환 회장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재경고령군향우회장 재임 시 회원이 1천여 명이던 것을 배가운동을 통해 3천5백여 명으로 늘렸고,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여러 대의 버스를 동원 고향방문에도 앞장섰다. 그리고 고향의 어려운 이웃이나 소외계층에 알게 모르게 베풀고, 세계육상선수권, 경주엑스포 등 국제행사에도 입장권을 구매하는 등 그의 비공개 선행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것은
‘처(妻 )를 만난 것’ 이 회장의 가족으로는 부인 곽동희(72, 포산, 현풍인) 여사와 슬하에 3남매를 두었다. 장남과 자부, 딸은 상당한 직위까지 오른 공직에 있고, 막내아들(이헌철)이 후계 경영수업을 마치고 지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업을 돕고 있다. 이 회장이 지금까지 가장 잘 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부인 곽동희 여사를 만난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집사람의 내조 덕분에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가세를 일으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여럿 형제의 맏며느리로서 시동생, 시누이 뒷바라지며, 아래 시동생들은 가정 형편으로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바르게 자라 제 발등에 불을 끄고 있는 것이 부인의 내조 덕이라고 강조한다.
부인 곽 여사의 친정은 대덕이며, 포산곽씨 양반 가문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엄한 교육을 받은 전형적인 한국의 현모양처 형이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이장환 회장의 선친께서도 대가없이 남에게 베풀었는데, 이 회장 또한 선친의 베푸는 삶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웬만한 가정이면 부인 입장에서 남편이 ‘남에게 퍼 주는 것’을 바가지라도 긁으련만 곽 여사는 남편의 인격을 항시 존중하며 뜻을 함께 해 더욱 고마운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이 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명예고령읍장을 역임한 이진환(삼오산업 대표)씨도 고향마을 입구에 자비를 들여 장승을 세우고, 고령중학교 교정에 세운 이 인 초대 교장선생님의 송덕비 주변에 소나무도 심었고, 지난달에는 고령터미널 앞 로터리에 수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소나무를 기증해 아름다운 고향 가꾸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어서 ‘그 형님에 그 동생’이라는 찬사가 이어지면서 대(代)를 이은 선행의 표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령교육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수년 동안 교육발전기금 수천만 원을 쾌척했다.
이러한 선행은 돈이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닌 것 같다. 마음에서 우러나고 고향발전에 진심이 묻어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