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어찌 이리도 예쁘고 잘 생겼을꼬?’
가녀린 몸매에 부드러운 곡선, 요염해 보이면서도 은은함을 잃지 않는 청옥 같은 살결, 풍만한 젖가슴에 작은 입술이 예쁘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인데도 피부에는 윤기가 흐른다. 온몸에는 매, 난, 국, 죽의 사군자가 새겨져 있다. 푸른 노송엔 학이 날아들고, 매화, 난초, 국화 향기가 그윽하다. 곧은 절개의 대나무는 푸르다 못해 진녹색으로 물들었다. 천삼백 도의 불가마에서 두 번이나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온 때문일까. 조각칼로 고운 살결을 도려내고 패인 곳에 새살을 채워 음양을 접목한 상감기법의 조화이런가. 먼 옛날 고려의 한 여인이 유리관 속에 알몸으로 서 있다. 군립 강경 청자박물관이다. 선조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 상감청자의 너무나 고운 자태에 넋을 잃었다. 공방에서는 도공들의 일사불란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점토를 주무르는 사람, 물레를 돌리는 사람, 몸통에 문양을 새기는 사람, 가마에서 혼 불을 조절하는 사람, 예술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는 경매가 이루어지고, 도공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혀 있다.

Ⅱ. 청잣빛 하늘이 너무나 푸르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창공을 헤엄쳐 다닌다. 한줄기 바람도 파란 하늘빛을 닮아 파르르 불어온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파란 하늘이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나는 유난히 가을 하늘을 좋아한다. 파란 하늘에 어둠이 내리면 까만 하늘로 물들지만,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박히며 수를 놓는다. 별들의 색깔도 파랗게 물든다. 하늘은 어째서 파란색일까. 태초의 하늘신이 푸른 물감으로 색칠을 한 것이리라. 우주 공간에 하늘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땅과 바다만 있었다고 상상해 보라. 맑은 가을 하늘에 솜털 같은 뭉게구름이 온갖 형상으로 그림을 그리면, 하늘은 커다란 도화지가 되어 거대한 화랑이 된다.

Ⅲ. 비췻빛 푸른 바다가 싱그럽다.
마음이 답답할 때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부서지는 물거품은 푸르다 못해 하얗게 변한다. 바다의 색깔은 왜 푸를까. 아마 그것은 오염된 물을 소금기로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기 때문일 게다. 온 바다가 붉은 색깔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니 빨간색이라면 모든 생물은 살지 못했을 것이리라. 그래서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넓어진다고 하는 모양이다. 바다란 모든 것을 다 받아준다고 ‘바다’라고 이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육지의 오염된 물이 바다에 가면 다 받아서 염분으로 소독하고 파도로 정화시켜 푸른색으로 만든다. 언제였던가. 남태평양의 맑고 푸른 바다 위를 항해하던 크루즈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하는 추억이다. 호주 시드니 항구와 파도 없이 잔잔한 그리스의 바다, 뉴질랜드 남섬의 비췻빛 바다 ‘밀포드사운드’, 마운틴 쿡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파란남색의 자연호수 물빛, 지중해, 홍해의 검푸른 바다, 염분이 많아 사람이 물 위에 떠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해, 물 반, 고기 반의 오클랜드 앞바다……, 바다는 지구를 정화시켜 주고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보고(寶庫)이다.

Ⅳ.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라는 M수필가의 글이 떠오른다.
그 누구에게도 가슴에 품은 청년시절의 꿈은 다 있었으리라. 나에게도 청춘의 푸른 시절이 있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학업에 전념하던 옛 시절이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어디를 가도 자신감과 포부가 충만했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노래와 춤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자꾸만 그립다. 청춘이란 마음의 상태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청춘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며, 육체의 젊음만은 아니리라. 원대한 꿈도, 희망도 청춘이다.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피 끓던 푸른 시절을 동경한다.

Ⅴ.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하는 ‘청출어람(靑出於藍)’,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있을까. 40여 년의 교단생활에 무수히 많은 제자들을 길렀다. 제자가 스승보다 잘되어 사회에서 큰일을 할 때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지금부터 삼십 년 전의 일이었다. 체육시간 뜀틀지도를 하다가 제자가 머리를 다쳐 병원에 실려 간 사고가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사흘 만에 깨어나서 지금은 바다를 지키는 해군 준장으로 국토방위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오고 꽃바구니를 보내준다. ‘청출어람’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지금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지난날의 그 사건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제자들이 잘되어 안부를 전해올 때 교직에 몸을 담은 보람을 느끼며 자긍심을 갖는다. Ⅵ. 나는 여러 가지 색깔 중에 유난히 푸른색을 좋아한다. 청색은 청춘을 뜻하며, 미래와 희망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의 장인의 혼이 깃든 상감청자, 높고 푸른 하늘, 비췻빛 바다, 젊음의 상징인 청춘,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다는 ‘청출어람’의 靑은, 나의 인생항로에 늘 푸른 빛깔로 마음의 심연(深淵)을 채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