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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사성어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것인데 흔히, 가훈이나 좌우명으로 많이 쓰고 있다.
우리 속담에 ‘마누라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다. 그렇다.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물어보고 한 일은 별 탈이 없었다. 그럼, 사십 여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아내의 의견을 들어보고 의사결정을 했었던가. 지난 일들을 반추해보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늘 그랬다. 무슨 일을 덜컥 저질러 놓고 아내에게 물어보는 것이 다반사였다.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장사꾼들의 권유에 솔깃하여 덥석 사놓고 아내에게 야단을 맞는 것이 일쑤다. 한 사람의 생각보다 두 사람의 생각이 더 나을 것이라고 뻔히 알면서도 저질러 놓고 후회를 하곤 했다.
아내에게 물어보기가 남자로서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 아니면 온 고집 인간으로 태어난 성정 때문 일 게다. 지금도 집안 살림 중에 거금의 돈을 들여 사놓은 물건들이 사용되지 않고 공간만 차지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수 년 전 비싼 돈 주고 산 러닝머신을 빨래걸이로 사용하다가 아들집에 주었더니,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고발이 들어 왔단다. 요즘 층간소음으로 문제가 되어 살인사건까지 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오래 전 일이다. 남들이 하는 부동산 투기에 귀가 솔깃해 선조께서 물려준 조상 답을 덜컥 팔아 대도시 주변의 임야를 비싸게 사들였다.
그 일대가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사기꾼의 농간에 넘어간 것이다. 지금도 그 일을 떠 올리면 잠이 오지 않는다. 왜 한번쯤 부부가 같이 상의를 해 보지도 않고, 나 혼자 판단하여 결정했는지 후회가 막심하다. 그 것 뿐인가. 남들이 거금을 벌었다는 주식과 펀드에 뒤늦게 뛰어들어 손해를 본 일이며, 아파트 투기에도 끼어들다 적지 않은 재산을 잃은 것들, 하여튼 내 머리로서는 경제관념엔 태어날 때부터 잼뱅이로 태어 난 것 같다.
다행이 아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저질러 놓은 것들에 대해 원망하거나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말없이 살아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 할 따름이다.
요즘 친구들의 우스갯소리가 재미있다. 퇴직 후 ‘하바드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하와이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나? 무슨 뜻인가 했더니, ‘하는 일없이 바쁘게 드나드는 대학을 마치고, 하는 일없이 와이프 뒤만 따라다니는 대학원’에 다닌다는 뜻이다. 또 한 친구는 퇴직 후 ‘거안실업’에 대표이사로 근무한다고 자랑하기에 부러워했더니, ‘자기 집 거실과 안방을 드나들며 청소 일을 도맡아하는 대표이사’란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과 취미를 좀처럼 고칠 수 없는가 보다. 신문을 펼쳐볼 때도 맨 먼저 보는 면이 각자 다르다.
아내는 경제면을, 나는 스포츠면을 먼저 본다. TV를 시청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쪽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리라. 퇴직을 하고 이 문제로 아내와 심각하게 다툰 나머지 TV 한 대를 더 사서, 아내는 안방에서 연속극을, 나는 거실에서 야구를 보는, 각방 쓰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한 쪽 귀가 탈이 나서 수술하면 더 잘 들릴 것이란 말을 듣고 혼자 판단하여 덜컥 수술했더니, 그 전보다 잘 들리기는커녕 오히려 후유증만 더 심하다.
지나간 일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 아내의 말만 들었어도 그냥 견디다가 마지막에 가서 천천히 수술해도 되는 것을 성급하게 나의 고집으로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그 뿐인가. 수 년 전 몸속에 조그마한 돌이 생겨서 그냥 두어도 평생 지장이 없는 것을 쉽게 생각해 멀쩡한 장기를 재거한 일 과, 몇 년 전, 무릎에 물이 차서 수술까지 했던 일이며, 멀쩡한 사랑니를 무료로 재거해준다고 억지로 뺀 일까지 어처구니없이 결정한 것들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지금까지 세 번의 큰 수술과정도 나 혼자 온 고집으로 쉽게 판단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아내는 하지 않아도 큰 불편이 없는 것을 사서 고생한다면서, 이젠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남의 이야기만 듣고 아내의 이야기는 건성으로 듣는 고집불통 때문이리라.
부부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서로 소통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성격이 다르고 자라온 문화가 달라 두 사람의 의견이 대립 될 때는 자기 고집만 내세우지 말고, 반려자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 정답은 옛날 사람들의 말대로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요즘 세태비평가들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처화만사성(妻和萬事成)’으로 회자하는 것을 보면 세상 참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남은 인생은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고, 무슨 일이라도 아내의 의견에 따라 살아간다면 행복이란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리라. 지금까지 밥 굶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도 아내가 살림을 잘 꾸려왔기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것이라 늘 고맙게 생각하는 터이다.
그럼, 우리 집의 가훈을 ‘처화만사성’으로 고치고, 나의 좌우명도 ‘진인사대처명’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이 세상에 남편들이여! 아내의 말 만 들으면 만사형통할 것이니, 가정에 충실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한 후 그 결과는 아내의 뜻에 따를지어다.<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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