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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마 전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이냐’로 칼럼을 실은 일이 있다. 한낱 삼등시민이 나라 걱정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나라 안 일들을 생각하니 정말 걱정스럽다.
도대체 세상이 어디로 가려 하는가? 한마디로 하면 그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갑오년이 가고 을미년이 왔다고 그러는가.
그야말로 ‘고난의 을미년’인가. 갑과 을! 갑오년에 잠복해 있던 ‘갑질’이 을미년에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현상인가. 국권을 침탈당한 광무 7년(1905·을사년)의 을씨년스러웠던 역사가 연상됨을 어쩌지 못한다. 그 을미년의 ‘을’이 정녕 갑질에 대한 을씨년스런 을이어야 하는가.
‘땅콩 회항’이 온 나라를 들썩이더니 ‘백화점 모녀’는 또 뭣인가. 갑과 을! 갑은 언제나 갑이고 을은 언제나 을은 아니었다. 모두가 갑이고 을이었다. 굳이 갑·을 구분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갑·을의 경계가 명확해졌으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되었을까?
원래 갑·을은 하나였다. 경계는 있어도 상하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이고 유기적 공동체였다. 국가도 사회도 그게 기본 구도였다. 갑은 갑으로서의 영역을 지키고 을의 영역을 넘보지 않았다. 넘볼 이유도 없었다.
그것이 농경사회의 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돼온 농경사회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계층의 신분 사회이기는 했어도 대국적으로는 불협화음은 없었다.
그런대로 위계질서도 분명했으며 저항은 없었다. 천분(天分)으로 알았다.
그러나 왕정에서 공화정이 되고 민본 질서가 자리 잡을 때 신분적 계층질서는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와의 간극은 더욱 멀어져만 갔다.
가진 자가 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한 번 가진 자가 되면 더 많이 가지려고, 절차적 질서도 무시하고 강자적 횡포를 은연 중 즐기려 하는 것 같았다. 소득 지상주의(至上主義)는 사람 사는 모습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물재적 소유가 삶의 전부였으며 지고지선의 가치로 오도(誤導)되었다.
오로지 ‘부의 쌓음’이 최대의 목표였고 삶의 가치였다.
프로스포츠 선수의 연봉 서열화, 기업의 자산 규모 서열화… 서열화, 서열화! 여기서 낙오하면 패배자가 되며 이를 피하려 불법·탈법을 예사로 감행한다.
갑은 을에 횡포를 부려야 하고 을은 그것을 감수해야 그나마도 살아남는 다는 절박한 현실을 감수해야 했다. 나라 망신을 부른 비행기 회항! 항공기는 비행에 관한 한 기장이 전권을 가진다. 사무장도 이에 준한다고 한다.
탑승객은 하나의 탑승객일 뿐 지위 고하는 없다. 그랬는데 터지고 말았다. 터지고 나니 이 곳 저 곳서 적폐였다고 자성의 소리가 나온다.
인간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규범이 뭣인지도 모르고, 출생 그 자체가 곧 갑질로만 알고 살아가는 특정 부류가 그들뿐일까? 아마도 그렇지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어디엔가는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른바 ‘자유시장경제’의 맹점이라는 말인가.
물재적 소유욕의 한계는 있는가? 7억 원밖에 없어 희망이 없다고 극단적 선택을 한 그 엘리트 가장, 존·비속 살인에다 보험 살인, 청부 살인이 예사로 일어나는 이 병든 사회를 어찌 정상이라 하겠는가.
성선설, 성악설 따위를 허접 쓰레기로 아는 그 인질 살인범,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 잔혹할 수 있는가. 그렇게 표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실체적 진실인가. 사이코로 치부하기엔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 뻔뻔함에 정말 기가 막혀 공분을 부른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가려는가를 걱정하는 내 탄식이 표피적 감성으로만 그칠 수 는 없는 일이 아닌가? 끝없는 물신숭배를 부추기는 사회, 강자가 약자를 딛고 서야 생존할 수 있는 이 사회는 언제 종말을 고하려나. 강·약이라는 단어가 사전에만 존재하는 나라가 이상사회가 아닐까라고 한다면 너무 순진하고 퇴영적(退嬰的)일까? 그래도 역시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생각을 벗어날 길이 없다.
현대의 물질문명에서 조선시대 선비사회 같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은 안 되겠지만 소유욕을 넘어 탐욕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저명인사는, 짐승은 만족을 아지만 수치(數値)를 모르고 인간은 수치를 알지만 만족을 모른다고 일갈한다. 내 언젠가 방송에서 약육강식이 생존질서인 ‘동물의 세계’를 보았다.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 대초원이었지만 일단 사슴 한 마리가 희생되니 배부른 사자는 누워있고 살아남은 사슴들은 풀을 뜯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평온을 되찾는 생태계의 질서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나저나 사고는 왜 자꾸 일어나는가. 교통·화재사고가 연이어 나고 인질사고, 어린이집 학대 사고까지 터진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가?
이 문명세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폭력이나니, 그것도 청순하게 막 돋아나는 새싹을….
입방정이 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 주저는 되지만 만에 하나 ‘하인리히 법칙(잡다한 사고의 빈발은 대형사고의 징후)은 아닐까라는 불길한 생각을 감출 길이 없다. 제발 더 큰 흉사는 없길 빌고 또 빈다.<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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