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 박 사아-”
핸드폰이 울려 전화를 받으면 변함없이 반가운 그 목소리였다.
내가 이경희 총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공직인 문화재청에 근무할 때였다. 이총장님은 가야대에 계실 때였고 재단이사장으로 계신 사모님도 그때 만났다. 두 분 모두 차림이나 모습이 순박한 시골 농사꾼의 모습이었다. 총장님은 가야대 가마에서 생산한 도자기라면서 보내오시기도 하고 또 가야대 경내에 “고천원의 고지” 비석을 세우실 때를 비롯하여 소식을 끊지 않고 연락을 해오셨다.
그 후 언젠가 총장님은 가야박물관도 보고 한번 오라고 재촉 하셨다. 그래서 내려갔더니 밤새 이야기나 좀 하자시면서 시장에서 돼지족발과 막걸리를 사서 들어간 곳이 고령읍의 한 조그만 아파트(전에 군청자리라고 하셨음)였다. 아무도 없는 빈 아파트라서 사모님은 어디 가셨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머얼리 갔습니다.”고 하셨다. 그제야 사모님이 타계하신 것을 알았다. 총장님은 그날 밤늦도록 골동계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비롯하여 그가 교육계에 투신하게 된 인생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그것이 중요한 골동계의 역사적 이야기임을 직감하고 녹음을 시작하였다.
총장님과 나는 같이 문화재분야에서 거의 평생을 생활하였기 때문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의기가 상통했다. 일제강점기에 고령의 가야고분 도굴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골동계의 역사였다. 불과 얼마 전에는 팔장군묘에서 나온 금관이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회장의 손으로 들어간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 이야기는 이미 작고한 김모씨로부터 내가 들은바 있어서 실감이 났다. 그 이야기는 이총장님이 “고령문화”에 투고형식으로 쓴 글이 있어 문화원에 같이 가서 “고령문화” 한권도 입수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증인을 만나보기 위해서 총장님과 같이 대봉동의 골동가에 같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가야금동관 사건에 대해서는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사실을 총장님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총장님은 만년에 자신이 손수 모은 많은 유물과 가야대에서 새로 구운 도자기 등을 모아둔 “가야박물관”을 공식으로 개관하고자 급히 서두르셨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당신의 운명을 영감으로 느끼시고 서둘렀던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몇 년 전에는 총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서울의 모 병원에 문병을 간 일이 있었다. 담도가 막혀서 담도길을 확장하는 관을 넣는 수술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 후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는 총장님 자신이 아닌 학교의 어느 분과 통화하면서 총장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 약 한달 가까이 입원해 계신다고 하셨다. 가야박물관 개관이 늦은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시면서 나의 주소가 대구가 아니라서 당국에서 안받아준다고 들었다면서 주소를 대구로 옮길 수 없느냐고 물으시기도 했다. 내가 병원으로 찾아가려고 주소를 물으니 병원 이름은 알려주시면서 급하게 “여기 오실 필요 없습니다. 한 일주일후에 퇴원합니다.”고 하셨다. 목소리에서 환자같은 모습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어서 아마 완쾌되어 퇴원하시나 하고 생각했다.
그 후, 어느 날 그동안 보지 못한 “고령신문”을 뒤지다가 총장님의 별세소식을 보았다. 이미 장례를 치른지 20여일도 더 지난 때였다.
사람의 한평생이 참으로 짧은 것 같다. 푸른 바다위에 새하얗게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파도의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금년은 나의 둘도 없는 형님을 먼 세상으로 떠나보낸 해여서 마음이 더욱 쓸쓸하다.
지금이라도 곧 핸드폰이 울리고 “이이 박 사아-” 하시는 그 목소리가 8월에 떠나보낸 어진 형님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더욱 그리워진다.<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