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법인 대구학원(가야대, 대구공업대)설립자 이경희 이사장이 지난 달 25일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10월 28일 빈소가 차려진 대구의료원에서 발인식을 갖고 이날 오전 11시 가야대학교 고령캠퍼스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구내 장지에 안장, 영면에 들어갔다. 고인께서는 일제 암흑기인 1925년 11월 10일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 633번지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경주이씨 가문의 아버지 이용석씨와 나주임씨 가문의 임윤년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38년 화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공부를 하다가 1941년 대구사범학교 특설 강습과를 수료하고, 논공공립초등학교 교사로 교육계에 첫발을 디뎠다. 교사 재직 중 불타는 학구열을 뿌리칠 수 없어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1942년 4월 수가모(巢鴨)상업학교에 편입했다. 당시 고인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쟁 상황을 파악하면서 일본이 반드시 패망한다는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1943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했다. 귀국 후 해방 직전인 1945년 4월 청도군 금천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당시 도자기 굽는 가마를 가진 분의 집에 거처를 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자기 굽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전통도자기 복원을 꿈꾸게 되었다.

●김성수 보성전문학교 교장의 큰 가르침으로 교육사업 꿈 결심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해방이 되자 새로운 앞날을 구상하며 보성전문학교 경상과에 편입했다. 고인께서 보성전문학교 재학시절에 당시 교장으로 있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고 교육사업의 꿈을 펼칠 것을 굳게 결심했다고 한다. 1947년 6월 고려대학교 제2전문부를 졸업하고 대구 신명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고인께서 고려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 재학 중에 고향에 다니러 왔다가 매형의 권유로 이웃의 과수원 매매 구경을 갔다가 흥정이 깨지는 것을 보고는 큰마음 먹고 그 과수원을 샀다는 것이다. 그리고 월배 상인동의 농토를 사서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 1950년 3월 제일여자상업학교의 일반사회학과 교사로 부임했지만, 6·25전쟁이 나자 가족을 피난시킨 다음 그해 7월 28일 거리에서 군 위생병모집을 보고 ‘앉아서 죽느니 차라리 국군이 되어 전장에 나가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로 군에 자원입대해 가산 다부원을 거쳐 원주, 춘천까지 북진하면서 비참한 전장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싸우면서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교육사업을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1951년 1월 군속으로 전환한 다음 전선을 누비다 소속부대가 통폐합되면서 퇴역하여 달성기술학교와 달성중학교에 잠시 근무하다 1952년 4월 고려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를 졸업,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무렵 고인께서 27세 되던 해에 단양 우씨 집안의 우손분 님을 아내로 맞아 집안일을 맡기고 대학원 학업에 열중했다. 1954년 3월 그동안 생각해 오던 중학교 설립을 결심하고 우연기(남양우씨)씨의 제실을 빌려 대구남중학원 이름으로 월배초등학교 출신 학생 11명을 모집해 열심히 가르쳤다. 한편 고인께서는 대구교육청에 학원 설립인가를 신청하고 대구시 서구 내당동 1099번지 소재 공터를 빌려 천막을 치고 2차 모집을 했는데, 학생 수는 125명으로 불어났다. 그해 9월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 꿈꾸던 학교설립의 소원을 이루고, 정신적 고통 종교로 이겨내
1955년 3월 학교법인 구남학원과 대구남중학교의 설립을 문교부로부터 인가받아 그동안 꿈꾸어왔던 학교 운영의 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 고인께서 서른 살이 되던 해에 학교 설립에 따른 재정부담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부친의 전 재산을 팔아 빚을 갚고 나니 갈 곳이 없어 온 가족이 대구남중학교 우물가에 루핑기름종이 지붕아래 방 두 칸짜리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 무렵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천도교에 입교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 60년을 한결같이 교인으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 최근까지도 수운선생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애썼다. 1955년 대구남중학교 인가 후 1976년 2월까지 교장으로 재임하면서 1964년에는 대구여자공예고등학교를 설립했으며, 두 학교를 육성·발전시키는데 온갖 열정을 쏟았다. 학교 육성에 바친 노력을 인정받아 이미 작고한 부친께 대통령이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여했다. 1975년 학교법인 대구학원과 대구공업전문대학의 설립을 인가 받아 이듬해 3월 개교하고, 1991년 5월까지 초대학장으로 재임하면서 학교발전에 헌신했다. 1978년 유아교육기관인 학산유치원을 설립했고, 1982년 8월 한양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를 수료하면서 ‘고려청자의 생산기술에 관한 역사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10월 일본에 우리나라의 전통도자기와 현대도자기를 알리기 위해 오사까시의 일본공예관에서 첫 번째 개인도자기전시회를 개최했으며, 2007년 5월 동경도 부중시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까지 25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개인전을 개최하여 한국도자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1987년 1~3월까지 고인께서 개발한 고려청자 재현품 청자매병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세계 저명미술관과 박물관에 기증 전시케 했다. 1987년 고인께서 그동안 도자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연구해온 자료를 모아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국도자사’를 편찬했다.

●4년제 대학 설립과 총장 취임
1989년 10월 평생의 소원이었던 4년제 대학으로서 가야대학교의 설립을 인가받고 1993년3월 13일 고령에서 개교와 동시에 총장으로 취임했으며 2006년 5월까지 재직하면서 가야문화권의 중흥에 이바지할 인재양성에 헌신했다. 또한 가야대학교 설립이후 전통도자기의 개발에 진력하여 비색청자기와와 인공비취생산방법 및 그 시설특허를 비롯하여 목엽칠기의 특허도 받았다. 1997년 3월 가야대학교 부설기관으로 가야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가야사대관을 편집출판하여 가야사와 가야문화의 복원에 기여했다. 1998년 일본 천황가(天皇家)의 고향이 경상북도 고령이라는 주장을 한 일본 쯔꾸바대학의 명예교수인 마부찌가즈오 교수가 저술한 ‘高天原の故地’라는 논문을 접하고 크게 공감하였으며 이러한 주장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야인의 개척정신을 고양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고천원고지(高天原故地) 비(碑)의 건립을 생각했다. 1999년 6월 28일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 귀빈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부찌 교수와 더불어 고천원고지 비 제막식과 제1회 고천원제(高天原祭)를 거행했으며, 2014년 4월 제16회 고천원제에 이르기까지 17번의 국제행사를 주관해오면서 고령군을 비롯한 가야문화권 지역발전과 한일간(韓日間) 우호증진의 커다란 디딤돌을 마련했다. 2000년 11월 19일 고인과 평생의 고락을 함께 하면서 고인의 인재육성사업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던 부인 화순당 우손분 여사를 지병으로 먼저 떠나보내면서 참으로 마음 아파했다. 2001년 11월 김해시와 대학설립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가야대학교 김해캠퍼스 건설을 몸소 진두지휘해 건립하고, 2003년 3월 개교했다. 2005년 7년여에 걸쳐 추진한 대구공업대학 가야박물관을 완공하고 소장한 가야유물을 비롯한 고대유물과 전통도자기 등 12,000여점을 기증, 공개했다. 2006년 5월 가야대학교 명예총장으로 퇴임 후 대구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금년 2월까지 고령(高齡)에도 매학기 교직원연수회에서 특강을 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해 대학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2014년 10월 25일 오후 9시 5분 유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타깝게도 이 나라 교육과 전통도자문화의 전승, 그리고 찬란했던 가야문화의 복원을 위해 헌신적이고도 열정적인 생을 마감했다. 이 날 수십 개의 만장을 앞세운 상여운구에 소리꾼 장사익의 구슬픈 선소리를 들으며 수백 명의 애도행렬이 장관을 이뤘다. /최종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