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언제 생성됐으며 현생 인류와 생물은 언제부터 살게 됐을까? 지질시대를 지나 원생대, 중생대에 와서 식물은 주로 해초, 양치류(羊齒類)이고 동물은 바다에 살았던 산호류, 해백합(海百合·갯나리류라고도 하는데 표피에 가시가 돋아 있는 해삼, 光蔘같은 동물) 등의 무척추 동물이었다 한다.
수십억 년의 장구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생성과 분화, 진화를 거듭하며 오늘의 생태계가 됐을 것이다. 학술적으로는 그 많은 생물종들을 종속과목강문계(種屬科目綱門系)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나 같은 문외한으로서야 그것을 어찌 알기나 하겠는가. 더구나 참나무 종만 해도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 등이 있다니 말이다. 다만 생태계 연구자들이 편의상 그렇게 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일 뿐이다.
조선시대부터 열렸다는 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약령시에 가보면 어디서 그 많은 몸에 좋다는 약초들이 나왔는지 수백을 넘어 수천 가지는 될 것 같다. 식물도감에서나 있을 법한 것인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나와 있고 돌담이나 기와지붕 등 아무 데서나 자라는 와송(瓦松)이나 부처손도 그 대열에 끼어 있다.
우리 전래의 토종만 있는 게 아니라 구색이나 갖추려는 것인지 중국산 인도산도 버젓이 나와 있었다. 잎사귀로부터 꽃 수염 열매 가지 몸통 뿌리까지도 알뜰히도 나와 있다. 뜯기고 잘리고 꺽이며 토막이 되어도 어찌 보면 웃는 듯하고 다르게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내 알바 아니라고 체념하고 있는 듯했다.
어느 것은 켜켜이 생선포를 뜨듯 얇게 저며져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껍질 벗겨 묶이고 이름 모를 잎사귀류는 줄줄이 엮여져 굴비 신세가 되어 처마 밑에 매달려 있어도 이제는 아무 저항도 못하고 사형수 집행 날짜만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건강 100세시대가 될 것이 필연이라는 듯 무슨 풀 무슨 덩굴이 좋다고 신문·방송이 나오기가 바쁘게 그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상가에 나온다. 마치 100미터 단거리 선수가 출발선에 엎드려 있다가 땅! 하면 내달려 시장으로 향하는 듯하다. 지금도 어떤 종이 워밍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요식물이라는 겨우살이가 신경통에 좋다고 했더니 높은 산에서도 꼭 나무 꼭대기에 뿌리도 없이 자생하는 놈을 언제 어떻게 채취했는지 참 민첩도 기민도 하구나! 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친근한 이름 인동초 우슬은 언제부터인가를 알 수도 없이 민간의 생약이 된지 오래이지만, 논밭고랑 어디에서나 자라는 참비름은 이름 앞에 ‘참’자나 붙었지 지천으로 나는 ‘쇠’자가 붙은 쇠비름까지 약용 목록에 끼였으니 이게 또 무슨 조화인가. 뽑아 뙤약볕에 내던져도 죽지 않아 농민의 애를 태우던 쇠비름이 인동초 우슬과 동격이 되다니 초목사(草木史)의 덧없음(?)이라고 하면 감성의 남용일까? 마치 계층 질서가 엄존했던 조선시대의 상민이 양반반열에 올랐다고나 할까….
생명은 고귀하다고들 한다. 이 말 속에 인간이 포함됨은 물론 이 지구상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길섶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면서도 꽃과 잎 피우고 가지 뻗어 벌나비 날아들면 열매 맺어 다음 세대로 이어간다. 그런데 그들을 생명체로 여기지 않고 마구 학살하고 뿌리까지 파헤쳐버리는 만행을 예사로 저지르는 주체가 있다면 특정 종교인이거나 철저한 박애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 쯤은 생각해볼 일이 아닐까?
식물류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날 건어물 시장을 갔었다. 새우, 멸치로부터 오징어, 조기, 명천 사는 태자가 처음 잡았다 해서 붙은 이름 명태…. 대양을 누비다 어쩌다 포로가 됐을까? 귀물 알은 명랑젓이 됐을 것이고 등껍질은 벗겨졌고 머리는 이미 없어져 버렸고 배는 갈려 창자는 어디로 증발해 버렸고 등뼈는 자취도 없는 맨살로, 같은 어미 알집에서 탄생했다 포로도 함께 됐는지 대여섯 마리가 부챗살처럼 묶여 있었다. 없어진 머리는 노끈 이 입에서 아가미로 관통하여 빨래 신세가 되어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한이 많은 최후를 맞아 입도 다물지 못하는지 벌린 입 그대로, 눈은 허여멀겋게 퀭!하고 있으니 그런 것을 두고 무념무상의 경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퀭한 눈, 벌린 입이 히죽이죽 웃는 듯도 하고 엉엉 우는 듯도 했다. 땡볕에 걸린 한 놈이 ‘아이고 뜨거워 죽겠다’고 하니 ‘아니, 우린 벌써 죽은 몸이야…’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몸체가 너무 작아 눈인지 머린지 분간이 가지 않는 진도산 ‘지리가이리’라는 그 멸치를, 덩치로는 수십만 배도 넘을 인간이 그걸 먹겠다고 잡아 바싹 말려 놨으니 이거 너무 잔혹하지 않는가. 이를 자연 선순환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약육강식을 들이대면 너무 강퍅(剛愎)하지 않을까?
누가 말했다. 다람쥐 양식 도토리를 싹쓸이하고 그것도 모자로 몽둥이로 나무를 생채기 나도록 후려 패 달린 도토리까지 겁박을 줘 따가는 사람이 있다고 힐책한다. 그걸 먹어야 할 만큼 궁핍한가. 이 문명사회에 무자비한 폭력과 학살이라니 이게 될 법이나 한 말인가? 나라 밖은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는 언론인을 잡아 공개처형(참수·斬首)을 자행하는 IS(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이슬람의 국가)의 중동사태, 나라 안은 폐륜 범죄가 횡행하고 극악한 폭력은 인간의 포악함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정말 도를 넘었다. 이를 어째야 할까?
물리적 폭력단 폭력이 아니라 시궁창에나 있을 저질의 막말 언행도 폭력이다. 이름 하여 언어폭력이라 하던가. 나라 일을 한다고 표 달라던 그들, 되고 나면 어찌 그렇게 표변하는지 정작 그들에겐 이성이 있고 지성이나 있는지? 아참! 아니다. 그들에게 빗대는 것조차도 고결한 이성과 지성이라는 단어의 모독일 뿐이니 내가 먼저 취소해야겠다.
지난 70년대의 어느 날 마장동 도축시장 구경을 갔었다. 지금이야 그런 광경을 볼 수도 없지만 당시엔 참 후진적이었다. 도살에서부터 운송 저장 등은 말로만 들었지 막상 판매 현장을 가보니, 생피가 흥건하고 특유의 비린내가 진동하는 시멘트 바닥에 생고기를 놓고 칼질하고 쇠망치로 뼈다귀 부수는 소리가 요란했으며 위생이라곤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게 열악했던 당시니까 눈요기로는 충분했지만 좀 충격적인 걸 보고 말았다. 두 뿔이 투우사와 맞설 때 그 용맹을 금방이라도 떨칠 듯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부릅뜬 두 눈은 아직도 황소 그 특유의 뚝심을 발현하려는 듯 더욱 커 보였다. 더욱 놀란 것은 부라리는 두 눈 사이 정수리를 도끼머리로 내리치는 여인을 봤기 때문이다. ‘소라도 잡을 장정(壯丁)’이 할 일을 연약미의 별칭 여인이…. 내 머리 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직업이라곤 해도 인간의 잔학성이 드러나는 듯해서다. 현생 인류가 나타나기 전 백악기 공룡시대가 있었듯 또 새 땅 새 하늘이 열려 牛공화국이 되는 날 그 여인은 어떻게 될까? 생물 학대 얘기 하다 잠시 낭만(?)의 상상을 하며 엇길로 나가 봤지만 바로 U턴을 했다.
찰스 패터슨은 그의 저서 ‘동물 홀로코스트’에서,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동물에게 자행하는 폭력은 결국은 약한 인간에 대한 폭력과 강자의 착취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이자 역사가인 한 외국인이 주장한 논지를 전적으로 찬동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인용을 해보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과 착취라면 자의로는 아무 저항도 못하는 식물류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물다양성 구축(構築)이 지구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지난 9월 세계 149개국 대표단이 강원도 평창에서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생물이 곧 자원임을 알게 한다. 몸에 좋다고 그 알량한 탐심(貪心)에 빠져 남획하고 있으니 매년 3만~5만여 종이 멸종되고 있고 이에 따라 황폐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 토종 초·식물류(草植物類)는 번식력의 폭군인 외래종에, 고유 토종 식용 식물류는 DNA조작의 개량종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게 오늘의 이 지구가 맞고 있는 현실이다.
마구잡이 초목 수난의 현장인 약령시 골목, 새우 멸치로 시작하여 갈갈이 찢기고 깨어져버리고 짓이겨져버린 바다 어류들을 보고 그걸 먹은 사람들이 희희낙락할 것을 생각하니 좀 다른 느낌이 있어 적어 보았다. 하지만 써놓고 봐도 참 부질없는 글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랴. 느낌은 느낌인 것을….<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