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수가 외국을 방문할 때는 부인을 동반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우리나라에 왔다. 그런데 그 부인을 우리 방송에서 제일부인이라 호칭했다고 내 동료가 말해주었다.
더 나아가 그러면 중국은 제1, 제2 부인도 있다는 건가 하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인류문명이 미치지 않는 지구촌 어디 오지이거나 어느 특정 소수민족은 아직도 일부다처이거나 일처다부로 살아가는 부족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오늘의 세계 G2라는 중국에서 축첩을 공인하는 듯한 말은 중국이 하지 않을 것이라 말은 했으나 그는 제대로 시청했다고 우기고 있었다.
제일부인?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공식 채널을 통해 공표할 일은 아니라고 해주고 나서 내가 반론을 제기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아마도 First Lady를 직역하면 제일부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설명을 했더니 그제서야 내 말에 수긍을 하는 것으로 잠시의 해프닝을 일단락지었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로 돌아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호칭이 생각났다. 대통령 각하에다 칭송할 일이 있거나 선거 때가 되면 꼭 국부(國父)를 붙였으니 그 부인은 자연스레 국모가 되었다. 지금 시대에서 보면 한낱 코미디일 수밖에 없지만 당시로서는 별 거부감이 없었다.
이 정도로 그쳤으면 좋겠는데 시중에 나돌았던 황당한 얘기는 또 있다.
이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으니 우리 한글을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자고 이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 한다.
당시 문교부 어느 편수국장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여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는데 심한 반대 여론에 밀려 백지화됐다는 얘기가 진원지도 모르게 떠돌아 다녔다.
왕조시대였다가 일천한 민주공화정 탓인지 민중들은 별 거부감을 표출하지 못했다. 문맹률이 높았던 60년대였으니 일응 공감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금석지감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을 서양인 국모 한 사람을 위해 한글의 근간을 흔들었다니 어이가 없다.
민주화가 되어가는 시기에 ‘권위주의’가 척결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거치며 ‘각하’도 사어가 됐다. 따라서 어느 대통령 시대에는 각하가 없으졌으니 그럼 부인의 호칭은 뭐라 할까 하고 자문을 구하기에 이르렀으며 ‘영부인’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권유(?)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시대는 변하여 이제는 영부인도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더구나 지금은 여성대통령이니 말이다.
그 좀 이전에는 대통령이 각하이니 지체가 좀 높으면 각하라고 통칭하던 때도 있었다. 심지어는 사단장은 각하이고 부사단장은 ‘부각하’라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시절은 지방 군수도 영감이라고 불렀다. 이는 조선시대 영상 반열에 오르면 대감이라고 하고 정2품과 종3품은 영감이라 불렀는데 이는 광복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존칭을 남용한 데서 연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우리들 초등학교 시절 졸업식에는 재학생 송사가 있고 졸업생은 답사를 했었다. 그 내용에 초청된 군수를 ‘군수 영감’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때는 군내 초교 졸업식만 해도 군수가 귀빈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참석여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답사 낭독 학생이 연습하면서 ‘군수 영감, 군수 영감...’ 한 것은 분명하다. 이를 본 어느 장난꾸러기 학생이 ‘군수 할망, 군수 할망...’ 하던 것도 오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표지석만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 육조거리 뒷골목에 피맛골이 있었다. 대감이 말을 타고 출타를 하면 지나던 백성들은 쉬! 물렀거라 하는 말구종(마부)의 소리에 행렬이 지나가도록 허리 굽혀 서 있어야 했고 이를 피하기 위해 뒷길을 지나다 보니 ‘말을 피한다’는 피맛길이 생겼다.
사농공상의 질서가 지엄할 때 지체 높은 사대부가나 명문가에서만 쓰던 말이 오늘날에는 나이 든 내외간에 아내가 남편을 지칭하는 말이 됐고, 남자 노인을 존칭도 비칭도 아닌 말로 격하된, 더 정확히 폄하하는 말이 되어버린 세상의 오늘을 살고 있다.
본문 중 편수국장이라는 직함에 실명을 거론했으니 본의 아니게 어줍잖은 필화사건(?)이 될지 모르지만 당시는 그런 설이 분분했다.
아울러 이 분이 우리 한글 발전에 남긴 업적이 컸던 것도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