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부로 고령군의회의 임기가 시작됐다.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이제 20년이 지난 청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지방의회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위상 또한 군민들의 눈높이에 걸맞지 않는 권위적 자리보전과 기득권 행사에 연연해 온 게 사실이다.
 이는 제도적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의회 스스로 지방의회의 위상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도 있다.
흔히 공직자라 함은 퇴계 이황 선생의 삶을 논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남의 물건을 욕심내지 않고 손대지 않으며 부족함을 불평하지 않고 편안하게 여기며, 부귀영화는 뜬구름 보듯 했었다.
그런 퇴계가 서울에서 세 들어 살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이웃집 밤나무 가지가 담장을 넘어왔다.
밤이 익어 마당으로 떨어지자 퇴계는 손수 그것을 주워 이웃집으로 던졌다고 한다. 혹시 집안사람들이 밤을 주워 먹을까 걱정해서였다.
퇴계의 대표적인 제자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도 청백리의 모범으로 꼽힌다. 영주 풍기에서 태어나 24세에 급제하고 20여년간 관료생활을 했다. 금계는 중앙 무대보다는 지방 목민관으로서의 명성이 더 높다.
신령현감으로 있을 때는 백성들의 굶주림을 자신의 일처럼 보살폈고, 전임 현감이 관의 재정을 많이 축낸 것을 절약과 긴축으로 메웠다.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는 파산직전의 고을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임금에게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4800여자의 진폐소를 올렸는데, 백성을 위하는 마음과 명문장에 임금이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20여년간 관직에 있었지만 그가 죽었을 때 염습에 쓸 만한 천이 없을 정도였으니 가히 그의 삶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도 그리 녹녹치 않고 넘어야 할 과제도 순탄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무수한 폐해와 시행착오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유권자인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기에  청빈한 공직자를 더욱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출직 공직자는  그래서 더욱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폼 잡으며 군림하는 의원은 결코 시대가 바라는 인물이 아니다.
유권자의 권위가 존중받고 따뜻한 보살핌을 제대로 받을 때 비로소 행복한 군민임을 스스로 느끼고 자긍심을 가지기에 의회 의원의 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여전히 지방의회에 대한 주민평가는 높지 않은 편이다. 각종 행사와 경조사에만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게 기본 업무로 착각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무엇이 주민을 위한 올바른 행동인지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연의 의무와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전혀 보장받지 못한 탓도 있지만, 지방의원 스스로 자존(自尊)을 지키지 못한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방의회는 특정 당을 대표하는 것도, 집행부의 조력기관도 아니다. 지방의회는 주민을 대표하고 집행부를 감시·감독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스스로 지키지 않는 지방의회는 유권자들도 외면한다. 지방의회 스스로 의회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우선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주민의 어려움을 보살피고 복지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꾸준히 살피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후보자 시절 간절한 읍소의 심정으로 4년을 긴장하며, 유권자를 두려워할 줄 아는 진중(眞重)한 자세가 그래서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