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를 항해 중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1)고비탄 길, 메마르고 척박한 산등성을 지나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중앙아시아 고비사막을 건너가고 있다.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몸 하나 숨길 곳도 없다. 지평선 위로 종일 이글거리던 태양이 붉게 부풀리더니 온 사막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서서히 떨어진다. 비단같이 보드랍고 매끈한 모래산과 광야로만 연상됐기 때문일까. 이제까지 전두엽에만 각인된 사막이란 단어가 후두엽을 후려친다.
모래 반 자갈 반이 섞인 척박한 땅에도 듬성듬성 풀이 나 있다. 낙타풀이란다. 낙타라는 최적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물과 식량을 얻을 수 있었던 카라반들의 지혜였으리라.
또 하나의 단어가 감탄사를 자아낸다. ‘카레즌’이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수를 끌어오기 위해 백 킬로가 넘는 ‘투루판’시까지 지하 땅굴을 뚫어 놓았다. 열두 줄 수로(水路)를 합한 그 길이가 팔천 킬로미터가 넘는다는 곳, 만리장성, 황하운하와 함께 불가사의한 선조들의 거사에 오늘날 후손들이 편안하게 농사를 짓고 잘 살 수 있는 것 같다.
험준한 산맥을 오르고, 끝도 없는 고비탄을 걸을 때, (고)달프고, (비)통함을, (탄)식하며 지나쳤을 것이리라. 누가 고비사막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이 사막의 절반 이상은 고비탄으로 이루어져 고달프고, 비통함을, 탄식하며 넘어야 하는 아리랑 고개이기 때문일 게다.
어디 사막뿐이랴. 뜨거운 태양열에 겉흙이 굳어져 돌같이 단단한 산길을 오르고 모래 바다를 건너면서 비단과 소금을 옮겼을 것이다. 몸 하나로 버티며 고비탄을 넘다가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하면 수백 년 묵은 미라로 변했으리라.
내 생의 고비탄을 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었는지 지난날을 반추해 본다.
어미 둥지를 떠난 철부지 한 마리 새는 대학이라는 큰집 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보기 좋게 낙마하고 말았다. 신이 내린 가혹한 심판은 당연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그리 부족하지도 않은 환경에서 호강에 받힌 푸념을 하며, 본연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눈앞에 벼락이 떨어지고서야 번갯불이 보였다. 재수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은 뒤에 오아시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8세기 중엽 혜초 스님이 인도와 중원을 답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완성하였다. 이보다 1세기 앞서 신라 원효 대사가 당나라 유학길에서 밤중에 목이 말라 물 한바가지를 단숨에 마시고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바가지의 송장 썩은 물이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그렇게 목숨과 바꾼 고행 길의 생생한 역사문화 보고(寶膏)가 중국 장안에서 둔황의 막고굴로 들어갔고, 불란서의 한 동양학자가 단돈 몇 푼에 사가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진품이 소장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의문부호가 뇌리를 스쳐간다. 석가와 예수는 무엇을 찾기 위하여 설산에서, 황야에서, 고행과 방황을 하였을까.
첫 발령을 받고는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본래 낙천적인 성격 탓으로 오락에 빠지고 놀기만 좋아하는 무능력한 소유자였다. 동반자도 만났지만 더 나태해져만 갔다. 원래 인간의 심리는 편하면 편할수록 더 편해지고 싶어 하는 속성 때문일까.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듯 안일무사주의자로 전락해 버렸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에 빠져 혼자서만 안주하려는 행동이 부끄러운 것인지도 몰랐다.
언제나 그렇듯이 폭풍이 한번 휘몰아친 뒤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당시 승진이라는 목표는 안중에도 없었다. 저만치 동기는 앞서가고 형체가 사라질 쯤 되어서야 그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출발점 행동이 늦을수록 몇 갑절의 노력이 있어야 따라갈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세계 최고의 대학도서관 입구에 적힌 글귀가 떠오른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 한 번의 고비탄을 넘기 위해 혼자 짐을 꾸렸다. 벽지학교를 지망했다. 자취 도구를 한 가방 짊어지고 시골 버스에 몸을 실었다. 훈풍이 부는 날들보다 폭풍과 눈비가 휘몰아친 날이 더 많았다. 길이 끊어지는가 하면 눈이 쌓이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대학원을 진학했다. 좋아하던 운동도 포기했다. 주경야독하며 동, 하계 방학을 대학원 공부에 고스란히 반납했다. 자기 출세에만 몰입하면 직장 상사의 눈치꾸러기가 된다.
탐욕만 가득한 이기주의자에 대한 형벌은 가혹했다.
제일 먼저 건강이 부도를 맞았다. 할 수 없이 한쪽을 포기하고 가족을 데리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바람이 몰아치는 땅으로 신기루를 좇았다가 가족을 지키려고, 건강을 지키려고, 폭풍 속을 참고 견디며 고비탄을 넘었다.
고통은 늘 상처로만 남는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인내심 강한 지도자로 만든다.
인고의 고비탄 길, 묵묵히 견디다 만나는 오아시스가 ‘교직의 꽃’이라는 꽃자리에 앉아도 보았다.
느지막이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건강이 돌아오고 가족이 보인다. 토끼 같은 손자들의 재롱이며, 혼자만의 시간엔 수필이라는 친구가 곁에 있어 좋다. 이 친구는 내 영혼을 살찌우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신실한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비탄을 넘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리라!
지금은 인생 3막 중 2막을 넘어서 써-드 에이지인 제3의 인생길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고)달프고, (비)통함을 (탄)식하며, 넘어야 할 고비탄이 언제 쯤 도래할 것인지 예상해 보면서…….
나는 오늘도 인생의 고비탄을 넘고 있는 수행자이다.

각주) 고비탄 : 모래와 파석이 섞인 척박하고 못 쓰는 산과 고비사막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