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들이 철삿줄로 꽁꽁 묶여 있다. 주리가 틀리는 형벌을 받는 형상을 한 나무도 있다. 개중에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는 고문이라도 당한 것처럼 바늘잎이 몽땅 빠진 뒤 새로 돋아나는 그루도 눈에 뜨인다. 제발 자기를 좀 풀어 달라며 애원하는 소나무들의 하소연이 들리는 것도 같다. 그 모습이 안쓰럽다 못해 측은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두어 해 전에 새로 지은 시 변두리 어느 저택의 풍경이다. 육신이 괴롭힘 받고 있는 그 집 정원의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온몸을 한껏 뜯어고친 성형미인이 연상돼 온다. 내심 눈길은 끌리면서도 자꾸만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얼마나 번드레하게 치장을 해 놓았는지 어림짐작으로도 쏟아 부었을 돈이 가량이 된다. 그루당 줄잡아 몇 천만 원씩은 호가할 성싶다. 구불구불 비틀어진 형상일수록 오히려 금전적인 가치를 높이 쳐주다 보니,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에 의해 성장이 저지당한 나무는 억울하게 육신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맛을 잃은 작위적인 아름다움, 이러한 표현이 여기에 딱 어울리는 말일 것 같다.
여인이 적당히 하는 몸치장은 여성스러움을 한결 돋보이게 만든다. 자기 관리에 무신경한 것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무엇이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지나치게 짙은 화장을 한 것 같은 소나무의 모습이 어쩐지 삼류소설의 여주인공처럼 격이 떨어져 보인다. 많은 돈을 들여 꾸며 놓은 정원에서 호감정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불유쾌한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 비단 나만의 비꼬인 생각은 아니리라.
그 집에 심어진 소나무들은 대다수 둘레가 칠팔십 센티미터씩은 돼 보이는 성목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미 어른의 연령에 이른 셈이다. 무릇 사람이든 나무든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그 이후부터는 눈짐작으로 가늠하기 힘들 만큼 자라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든지, 아니면 아예 성장이 멈추어 버린다. 그러기에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그 집의 소나무들에서는 키며 몸집의 변화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성싶다. 꽃으로 따지자면 조화造花 같다고 하리라.
호화스러운 정원을 보고서 어쩐지 은근히 가진 것 자랑으로 비쳐졌던 것일까. 한 중년의 여인이 그 집 앞을 지나가다, “돈으로 처발라 놓았네.” 하면서 쯧쯧 혀를 찬다. 표현이 조금 지나쳤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여인의 타박을 듣는 순간, 그 집 정원에서 우리 집 정원으로 생각이 옮겨간다. 아이들 소꿉놀이하듯 소박하게 꾸며 놓은 모습이 어쩌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한 그루에 수천만 원씩이나 나가는 소나무는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서민 형편으로선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하지만 비록 큰돈은 들이지 않았어도, 여러 해 동안 아내와 둘이서 동분서주 발품을 팔아가며 알뜰살뜰 가꾸어 온 우리만의 혼이 담긴 공간이기에 나름대론 여간 애착이 가는 게 아니다. 이른 봄이 열리자마자 초롱등을 조롱조롱 매달아 놓은 듯 앙증맞은 히어리를 선두주자로 가지가지의 꽃들이 다투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면, 초겨울에 접어들어 구골목서가 온 집을 은은한 향기로 뒤덮는 시절까지 쉼 없이 바통 바꾸기를 해 가며 피고 짐이 이어진다. 그와 때를 맞추어 마당은 늘 온갖 새와 곤충들의 놀이터가 돼 준다.
다시 그 집 정원으로 시선을 돌린다. 찬찬히 살펴도 수백 평 쯤 돼 보이는 널찍한 잔디밭에 꽃나무 하나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예 벌 나비 한 마리 찾아볼 수가 없다. 봄이 와도, 여름이 돼도, 가을로 바뀌어도, 겨울로 접어들어도 사시사철 항시 그 모습 그대로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멋스럽기는 할지언정 아기자기한 정취는 느껴지지 않는, 흡사 정지된 화면 같은 풍경이다. 이런 정원을 두고 과연 살아있는 정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두 정원의 모습에서 우리네 인생이 돌아봐진다. 시작할 때부터 완전하게 갖추어 놓고 살면 참 편하고 좋은 것이야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 반면에 맨주먹으로 출발해 하나씩 하나씩 마련해 가는 소소한 즐거움은 결코 얻을 수 없을 게 아닌가. 애당초 거금을 들여서 남의 손으로 한꺼번에 완성해 놓은 정원과 큰돈 들이지 않고 내 손으로 차츰차츰 가꾸어 나가는 정원, 어느 쪽이 더 마음에 기쁨을 선사해 줄 것인지는 세상을 읽는 각자의 가치관 나름일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번듯하게 꾸며 놓은 정원은 우선 당장엔 눈을 즐겁게 할는지 모르지만, 그 대신 하루하루 한 해 두 해 식물들이 커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를 누리려는 기대는 아예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무릇 살아 숨 쉬는 정원이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철 따라 달라지는 풍경에서 기쁨을 느끼고 위안을 얻으며 사람살이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그런 정원이 아닐까. 세상에 태어나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차츰차츰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