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때의 갑오개혁이 근대화의 출발이었으나 결과는 실패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나도 그렇게 듣고 배웠다.
그런데 황태연 교수는 ‘근대화의 중심 사상이 실학, 북학, 개화사상이었다는 통설은 허구이다. …소수 지식인층의 지식일 뿐이었고 근대화를 이룰 능력도 지니지 않았다’고 했다. 또 ‘실학은 근대적 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 반동(反動)의 反근대사상’이라고 했다. 내 이걸 비판할 식견은 없지만 그래도 한 나라 한 시대의 학풍(學風)이기도 했던 실학 등등을 이렇게 매도해도 되는가라는 의아함은 있다. 공리공론에만 치우쳤던 성리학을 배격하고 실질을 숭상하자는 실사구시 사상이 조선 중기 사회를 지배했던 이념을 이렇게 난마를 자르듯 해서도 되는지 난 잘 모르겠다.
어느 날의 한 신문 기사이다. 前근대도시사를 연구하는 장지연 교수는, 경복궁 시대의 근정전, 강녕전, 사정전 등의 이름을 “‘똘기(덜 익은 과일)’로 충만한 사대부들이 개인적 각성을 투명하고 공정한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려 했던 욕망의 결과물”이라고 썼다. 역시 이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할 깜냥도 안 되지만, 조선 개국과 한양 천도의 500년 왕업을 이리 폄하해도 되는지 또한 좀 많이 의아하다. 경복궁만 해도 그렇다. ‘景福’은 ‘크나큰 복’이라는데 말이다.
또 어느 날의 신문은 정말 의외였다. 이영훈 교수가 쓴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를 두고 인터넷 매체에서 논란이 뜨겁다고 하며 ‘하나밖에 없는 성군(聖君)을 이렇게까지 까발려야 하나…’가 광고에 실렸기 때문이다.
첫째, 노비제 확대와 기생제 확산인데, 노비제를 확대하여 양민층의 이익을 위해 노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정책을 폈다. 양인(良人·노비가 아닌 사람) 남성과 노비 여성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노비로 규정하는 종모위천법을 제정해 노비를 늘렸다는 것이다. 또 기생제 확대에 대해서는, 세종 1431년 관비가 양인 남성과 낳은 딸은 기생, 아들은 관노로 삼자는 형조의 건의를 수락했다는 것 등이다.
둘째, 사대부의 강화다. 하늘에 올리는 제사인 처제를 스스로 없애고 중국에 조선을 사실상 종속시키는 사대주의 정책을 폈다고 비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자료에서도 본 것이 있다. 즉, 세종 초기에는 ‘지성사대(至誠事大)’라는 평판을 받을 정도였다고 하는 자료도 봤기 때문이다. 중국(明)이 요구하는 말, 산삼, 해동청보라매 등의 조공은 물론 환관(여인)도 보내야 했고, 어느 때는 명나라 조공 행렬이 남대문에서 모래내까지 1600여 명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다. 그때가 명나라는 영락제(永樂帝)라는 폭군이 있어 우리는 더 고통을 당했다는 것도 덧붙였다.
  셋째, 한글 창제도 중국 한자 발음을 정확히 표기할 목적에서 만든 발음기호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건 너무 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세계 언어가 오지 원주민 언어까지 합치면 70여 개라는데, 그 중에 가장 독창적이며 창제 원리가 분명하고 창제자의 이름까지 명징(明徵)한 글자임을 세계가 인정하는 유일한 문자인데 이걸 폄훼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만으로도 그 위대함이 여실한데도 말이다.
  오늘의 민주주의 시대에서 당시의 봉건 왕정시대를 비판하는 것은 한마디로 온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황 교수의 ‘실학 허구설’이나, 장 교수의 ‘똘기’ 그리고 이영훈 교수가 쓴 ‘세종…’ 주장은 아무리 학문의 자유가 있다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지금 천안함과 제주4·3사건이 새로운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4월 2일 공영방송이라는 KBS는 ‘천안함’을 주제로 한 ‘추적 60분’을 방영했고, 학원 강사 ‘썰민’의 ‘제주4·3’ 특강을 했기 때문이다. KBS는 국민 ‘알 권리’라 했고 썰민 강사는 3·1운동의 중심 인물들을 ‘요정 출입…’이라는 비아냥으로 독립지사를 폄하하는 강의를 했다. 강의를 본 나는, 혹시 ‘오도된 역사’를 배운 세대는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다만 한 가지 오류는, 김구의 단독 정부 반대만 부각시키고 당시의 북한 상황은 언급치 않은 것이다. 또 1947·4·19에 남북협상 하자 해놓고 북은 이미 주석단 29명까지 뽑아놨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평양까지 간 김구 김규식 등이 불참했다는 사실이다.
1947년 삼일절 기념행사가 있던 날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이가 치이는 사고, 이를 항의하는 군중을 향한 발포, 6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이 와중에 정부수립을 방해하려는 남로당 무장대와 이를 토벌하려는 군경 간에 벌어진 충돌이 사건의 요체이다.
‘천안함’과 ‘4·3’을 오늘의 대세로 연계하고 정사(正史)로 완결 짓자는 데에 대해, 조선 역사를 다르게 보는 위 세 교수는, 원인도 책임도 쌍방인데 왜 한쪽만 나락으로 떨어트리느냐고 딴죽을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이 얼빠진(?)시각을 ‘대세’와 겹쳐 보자는 데에 동참은 할 수 없는가 말이다. 참 서글픈 ‘겹쳐봄’이고 비유이고 자조(自嘲)와 독백이다.
어쨌거나 무고한 도민의 희생을 부르고, 남로당 주동자 김달삼은 나중에 평양 혁명열사릉에 묻히는 현대사의 비극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에 와서 이 비극적 사건을 이념을 떠나 ‘화해와 치유’를 더 큰 전제로 하는, 편향 없는 진실 규명을 해야 한다고 변죽이라도 울려보는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