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글쎄요?”
“순장이란 왕과 같은 높은 신분의 주인공이 죽으면 그를 위해 살아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죽여서 함께 매장하는 장례풍습을 말합니다.”
해설사의 말이 또랑또랑했다.
“그럼, 생매장 말입니까?”
“생매장과는 전혀 다르지요. 반드시 죽여서 같이 묻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해설사의 설명이 청산유수와 같이 이어진다.
고려장과는 전혀 다르며 당시 전 세계적으로 고대 역사에서 널리 성행했던 풍습이었고, 대가야에서도 지배층의 무덤에서 순장이 성행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삶을 계속한다고 믿었고, 고대인들의 계세사상(界世思想)에 따라 이승에서의 생활을 저승에서도 그대로 이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이 순장묘에는 스물두 명의 인골이 나왔고, 당시의 석곽 축조와 봉토기술이 아주 뛰어나서 잘 보존된 것이다. 검은 뼈가 출토된 것은 아마 독약을 마시고 죽은 순장자로 판단되고, 유골의 뒤쪽에 망치자국이 남은 것으로 보아 강제로 죽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빈 무덤도 한 두 곳이 있었으며 죽기 싫어 밤중에 도망간 곳이란다.
‘k’작가의 ‘현의 노래’에 보면 당시 열여덟 살의 ‘아라’라는 시녀가 왕의 변을 받아보니 소변이 너무나 붉어서 내일쯤 운명한다는 것을 예언하고, 밤중에 도망을 간 빈 무덤도 있었다.
해설사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으며, 우리 일행은 너무나 신기한 왕국에 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덤 내부에 들어서면 음침한 분위기에 상여소리 같은 음악이 흐르고 목탁소리 같은 것도 들렸다.
전망대에서 주석실을 내려다보면 왕의 시신이 한가운데 놓여 있고 위 아래로 문관과 무관이 함께 매장되어 있으며 껴묻거리들이 즐비해 있었다.
으뜸돌방 옆으로 두 개의 딸린 돌방이 있었으며, 거기에는 왕의 부장품들과 창고지기 두 명이 순장되어 있고, 말과 안장 그리고 마구들이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
주위에는 서른 두기 순장자들의 돌 덧널이 있고, 인골과 껴묻거리가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만약에 생매장해서 묻었다면 이렇게 뼈가 가지런히 놓여 있지 않으며 반드시 죽여서 묻었기에 질서 정연하게 놓인 것이란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의문부호를 남기며 수 백 명의 순장자들에 대하여 고개가 숙여진다.
천 오백년이 지났는데도 인골이 썩지 않고 남아있게 된 것이며, 으뜸돌방에 신비의 등잔이 나왔다는 것은 방안에 불을 켜서 산소가 다 타 없어지면, 진공상태가 되기에 뼈가 썩지 않을 것이라는 과학적 사고의 발상이었으리라.

천년사직이 한순간의 꿈이었고, 수많은 영욕의 제단 앞에서 그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것을 갈구하고 살았을까. 마치 내 일인 양 가슴 한 켠이 아리어 온다.
‘오늘은 어제 죽은 네가 그토록 갈망했던 내일이었다’ 하는 실존에의 물음을 던지는 구절들이 되뇌어진다. 그러면서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큰 재물이며 화려한 명성이며 절대의 권력 따위가 한낱 바람에 흩어져 쓰러지는 낙엽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마르고 닳도록 갖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일진데 그 욕망을 완전히 부정해 버릴 수는 없으리라.
특정한 지배자를 모시고 저 세상에 가서 다시 살아나 못다 한 부귀와 영화를 누려 보리라는 계세사상을 그들은 반드시 믿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런 사상을 믿고 살았다지만 시시각각 피부로 다가드는 죽음에의 본능적 두려움을 그들은 어떻게 감당해 내었을까. 개중에는 현재의 제도적인 풍습 앞에 너무 인간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순장 풍습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은, 지배자가 죽으면 따라서 죽어야 하는 종속성(從續性), 동시에 죽여서 묻어야 하는 동시성(同時性), 그리고 강제로 죽여서 묻어야 하는 강제성(强制性)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장자 가운데는 자원한 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징발된 자들이다. 이승에서 짧고 굵게 살고 저승에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 후자에 속한다면, 지배자 혼자 조용히 죽는 것이 맞는 일일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옛 고분들, 부귀와 영화는 찰나인 것을, 이 역사의 현장 앞에서 백년도 마저 채우지 못하고 사라질 우리네 일생을 생각해 본다.
도대체 산다는 것이 뭔지,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예기치 않게 옛무덤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순장자들 중 30대 부부가 서로 발을 맞대고 순장된 것, 십 대 소녀 두 명이 나란히 누워 있고, 50대의 남자도 있었으며, 30대와 8세의 여아로 부녀지간에 순장된 모습을 보고 모든 관람객들이 혀를 끌끌 찬다.

아무리 지배자와 저 세상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믿음을 어찌 믿을 수 있으며, 현재의 목숨이 아까운 것은 인간의 본능인데 그 때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신분적 차이를 두고 태어난 것은 아닐진대 임금이라고 죽어서도 일을 하지 않고 수백 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저세상에서도 호위호식하려는 심보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왕의 시체 밑에는 수 천근의 덩이쇠를 가지고 저세상에 가서도 잘살겠다고 챙겨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늙어 죽을 때쯤이면 세 가지 후회를 한다고 한다.
‘좀 더 베풀 걸! 좀 더 참을 걸! 좀 더 즐길 걸!’
백 년도 다 살지 못할 인생살이를 살아생전 남에게 좀 베풀고, 봉사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죽어서도 후한이 없을 것을…….
이 나이까지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다보며 오늘도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늘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무상을 느낀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