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빵 루머’라는 칼럼이 어느 일간지에 실렸다.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가 ‘말 글’이라는 제호로 본지에 그 내용 일부를 두어 줄 인용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루이16세 왕비 앙트와네트가 당시 혁명의 도화선이 된 성난 시위 군중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인을 먹으면 되지’ 했다고 내가  썼는데 그것이 루머였다니 기고자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본래 그 말은 원래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고백록’에 나오는 예화의 일부인데, 루소가 이 책을 집필한 시기는 1766년이고 인용된 예화는 1740년대의 얘기였으니 앙트와네트가 태어나기도 전이어서 시기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출처도 모르고 남들이 인용하니까 ‘들은 풍월’로 나도 그렇게 쓴 것인데 결과는 그냥 웃고 말기엔 뭔가 좀 헛헛하다. 그 혁명 와중에서 사실 여부의 관심보다는 터무니없는 입소문도 생기기만 하면 그 파급력이 마치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했을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일들을 우리도 겪은 일이 있다. 광주민주화 항쟁이 그렇고 FTA 쇠고기파동 때가 그랬다. 특히 국가 중대사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시위가 격렬해져 루머를 넘는 악성 괴담이 들불 번지듯 했다.
앞서 말한 앙트와네트가 루머였듯 우리의 삼국시대 역사도 현세에 와서 정설을 뒤집은 것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세기의 로맨스’ 선화공주 얘기.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는 미모로 이름이 났었다. 백제의 서동(薯童·뒤에 무왕이 됨)이 이를 알고 연정을 품고 가까이 하려고 동요[薯童謠]를 지어 금성(경주)에 퍼뜨렸다. 이에 공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다가 서동에게 발각되었고 그가 구출해 주어 결혼을 하게 되니 이게 바로 백제 무왕의 왕비가 됐다는 설화이다.
2009년 백제 무왕시대에 지었다는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해 사리함(선승의 유골함)을 열어 보니 사리를 모신 봉영기(奉迎記)가 나왔다. “우리 백제 왕후는 좌평(佐平·백제의 관직) 사택적덕의 따님”이고, “사택왕후의 발원으로 이 석탑을 지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신라 선화공주가 백제 왕비가 됐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문을 갖게 됐고, 이를 통해 미륵사지 석탑 탄생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 세기의 로맨스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그 당시의 국경이라는 의미는 지금으로선 별 뜻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적성국이고 또 어쩌면 교류 기회도 없었을 텐데 그런 로맨스가 어떻게 생겨날 수가 있었을까. 혹시 라·제동맹의 의미에서 이른바 국제회의도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특사파견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1500여 년 전의 설화를 규명해 보겠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만 말이다.
조선조 초 대언어학자요 뛰어난 외교가인 정치인 신숙주. 그가 집현전 학사인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 복위 음모가 발각돼 거열형(車裂刑)을 당하던 날 밤에 집에 돌아왔다. 이를 본 윤씨 부인이 어찌 살아 돌아 왔냐며 절의를 버린 남편을 부끄럽게 여겨 스스로 목을 맸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절한 신숙주를 쉬 변하는 숙주나물에 비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고 말았다.
그 괴담의 진원은 이렇다. 18세기 실학자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을 보면, 소설가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윤씨 부인 죽음이 비슷하게 기록돼 있는데 이는 송와잡설을 인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송와잡설은 선조 때 이기(李墍)가 기자조선부터 당시까지의 역사·풍토·제도 등에 대해 쓴 시화만록집(詩話慢錄集)이다. 이기는 사육신 사건 때 처형당한 이개(李塏)의 후손이니 신숙주를 좋게 여길 리가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연려실기술과 송화잡설의 저자들이 끄트머리에, “이 기록은 잘못 듣고 쓴 것이다. 신숙주 부인은 이미 5개월 전에 죽었다. 아마도 이광수가 끝부분을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라고 써 놓은 주(註)가 모든 괴담의 진원을 시원히 풀어준 것이다.
  숙주나물이 된 이설은 또 있다. 신숙주가 녹두나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조가 그 나물 이름을 아예 숙주나물이라 부르라고 명한 데서 나왔다고, 세종학교육원장 김슬옹 박사가 썼다.
사육신 하면 또 이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생육신 남효온(南孝溫)이 쓴 ‘육신전’ 때문에 사육신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70년대 정권 실세인 한 사람(김재규)이 사육신 유응부를 빼고 김문기를 넣어달라고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양쪽 다 타당성은 있으므로 아예 육신 육자를 빼자는 학자도 있다. 그 참살의 정변에서 행적의 경중은 있을 테지만, 그걸 지금에 와서 어떻게 가리겠는가. ‘공자 제자 72현’에서 따와 ‘두문동 72현’이라 하듯 꼭 ‘육’자를 넣어야 하는 무슨 고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응부 문중도 가만있지 않았지만 다른 관련 후손들이 ‘사육신사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당시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내기도 했다. 이를 본 어느 논자는 이러다간 ‘사12신’이 될 수도 있겠다고도 했다.
당시는 김재규가 국사편찬위원회에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 예단하고 있었다.
상당한 파장이 일어날 이 중대한 문제를 누구 손을 들어줄 수도 없었는지 중도적 답변만 내놓다가 10·26 이후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起는 ‘빵 루머’였지만 結은 사육신으로 끝나니 내가 좀 어정쩡하다. 바로잡아야 할 역사상식이 내가 알기로도 많은데 다음 기회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