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항간에 떠도는, 연대별로 아내의 존재 가치를 풍자하는 우스갯소리가 재미있다. 20대 아내를 ‘애완동물’, 30대 아내는 ‘기호식품’, 40대 아내는 ‘필수가재도구’, 50대 아내는 ‘가보(家寶)’, 60대 아내는 ‘지방문화재’, 70대 아내는 ‘국보(國寶)’로 비유한다. 그럼, 우리 집사람은 지방문화재로 간주한다는 말이 아닌가. 몇 년 후에는 국보급으로 격상될 것이라고 여겨지니 더욱 소중하고 더 잘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옛 말에 처자식 자랑하는 사람을 팔불출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럼, 나도 팔불출이 한번 돼 볼까 보다. 
우리 집사람은 마음이 착해서 좋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잘 참으며,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에게 바른길을 걷도록 충고도 해준다. 나의 단점을 지적해 줄 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우리 집사람은 알뜰해서 좋다.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모델이 되며, 살림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집사람은 웃는 얼굴이 좋다. 입가에 늘 미소를 지으면서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불편한 마음을 먼저 읽고 봄눈 녹듯 녹여주며 기분도 좋게 한다.
우리 집사람은 피부가 고와서 좋다. 화장발을 잘 받아 값비싼 화장품을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 집사람은 빨래를 자주 해서 좋다. 옷이 깨끗해 보이고 언제나 입어도 새 옷과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 집사람은 요리를 잘해서 좋다. 내 기호에 맞는 음식을 해줘서 반찬 투정을 하지 않게 한다.
우리 집사람은 잔소리가 적어서 좋다. 한평생 살면서 바가지를 긁으면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니까, 그런 것이 없어서 좋다.
우리 집사람은 건강해서 좋다. ‘신외무물(身外無物)’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건강보다 더 큰 재산은 없다는 뜻이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니 건강이 큰 재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집사람은 얼굴이 예뻐서 좋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다른 여자들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 집사람은 경제에 관심이 많아서 좋다. 그러다 보니 재산을 늘릴 수 있고, 윤택한 살림을 꾸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사람은 신앙심이 확고해서 좋다. 늘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불심(佛心)으로 기도해 주기 때문이다. 재직 시절, 출근할 때 문간까지 따라 나와 합장하며 한결같이 무사 안녕을 기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한 초하루, 보름 때는 몸을 정결히 하고 절에 가서 백팔 배를 하며 가족들의 소원을 간절히 비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가 좋았었다. 어찌 그것뿐이랴. 한평생을 같이 살아오면서 험한 가시밭길을 묵묵히 헤쳐 나오며, 속으로는 눈물을 삼키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해 하는 모습들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가는 것은 왜일까.
불가에서는 길을 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부부가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은 억 겁의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모 방송국 TV프로에 ‘내조의 여왕’이란 연속극이 심금을 울린 적이 있다. 그 연속극이 꼭 우리 집사람을 두고 엮은 것 같아 퇴근 때면 그 시간이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해마다 명절 때면 남편을 위해 윗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일이며, 친인척을 방문해 선물의 예를 갖추는 것은 집사람의 몫이었다. 본래 나는 천성적으로 그러한 인사치레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는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비익조(比翼鳥)와 같은 존재이다. 젊은 시절 한때는 동기들 중에 부부교사가 그렇게 부러워 보일 때가 있었다.
두 사람의 수입을 합치면 얼마나 윤택한 살림을 꾸려 나갈까도 생각했다. 하기야 그들은 두 배로 벌지만 지출도 두 배로 나가기 때문에 마찬가지라면서 퇴근해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때 못 먹어 보았다는 것이다. 그 친구들은 오히려 가정에서 퇴근시간에 된장국 끓여놓고 남편 오기만 기다리는 우리 집이 더 부럽다고 했다. 그렇다. 돈을 많이 벌어 온다고 가정이 행복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됐다.
어려웠던 지난날을 반추해 보면, 그래도 아내의 내조가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또한 나도 열심히 살아 왔지만 승진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에는 아내의 내조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었을까 물음표가 생긴다. 지금은 퇴직해 살아 온 지난날의 공로를 잊어 가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앞으로의 인생에도 사람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기에 늘 반려자의 고마움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시쳇말로 60대 아내의 존재가치를 ‘지방문화재’로 비유한다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집사람은 ‘국보’급으로 격상시켜 주어도 될 것 같다.
“마마, 진정으로 은애(恩愛)하옵니다. - 아이 러-브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