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오늘도 ‘순환 2번’ 시내버스를 탔다.
“어서 오세요” 늘 그랬듯이 귀에 익은 기사님의 따뜻한 목소리가 추위를 녹여준다. 내릴 때면
“안녕히 가세요” 타고 내리는 손님 모두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지만 급추위에 감성마저 얼어붙은 듯
“수고 하세요”라는 한 마디를 입 밖으로 내보내는 승객은 드물다. 반응 없이 무표정한 얼굴들, 경상도 정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기사님은 내 집에 오는 손님을 대하듯 언제나 마음이 담긴 친절을 베풀고 운전 또한 급출발이나 급제동 없이 여유로워 승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버스 안에 비치되어 있는 칭찬 엽서에 있는 그대로를 적어 우편함에 넣었다.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친절을 동료들이나 기업주에게도 알려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게 하고 싶었다. 아울러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실망하지 말라는 뜻으로 응원의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는 말도 적어 넣었다.
탈무드에 보면 ‘똑똑한 사람보다 친절한 사람이 낫다’고 했다.
부드러운 인사 한마디가 마음이 추운 사람에게는 따뜻한 밥 한 그릇만큼이나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즈음 ‘미인’이란 얼굴도 예쁘지만 ‘미소로서 인사 잘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럼, ‘미남’이란 ‘미소 짓는 남자’로 해석하면 어떨까?
몇 해 전 일본 여행 때였다. 백화점에 우연히 들렀다가 종업원이 얼마나 친절하던지 미안해서 물건을 사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역사에도 친절과 배려가 없지 않았다.
태조 왕건이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물 한 바가지 얻어 마실 때였다. 물을 건네는 처자가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체하지 않도록 해준 배려에 감동해서 왕후로 삼았다는 두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미국의 어느 호텔 종업원이 눈보라치는 겨울에 방이 없어 헤매는 노부부를 자기 방에 모신 친절로 미국에서 제일가는 호텔 지배인이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지 않은가.
요즘 나는 시내 외곽지로 봉사활동을 나갈 때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버스를 이용하면 차가 밀려도 한숨씩 자면 되고, 술 한 잔 해도 음주운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 시내를 벗어날수록 인정미가 달라짐을 확연히 느낀다.
차에서 내릴 때는 승객이 수고했다고 운전기사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참 흐뭇한 광경이다. 올림픽이나 세계적인 대회를 치른 결과의 산물인 것 같다. 이런 굵직한 대회가 국내에서 치러짐으로 외국인을 맞이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오래 전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먼저 인사하기운동’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다. 당시는 매스컴을 통해 워낙 떠드니까 실행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렸다.
일본 문부성에서 학생들에게 인사교육 한 가지만 지도하는데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지난여름엔 우리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치렀다.
과연 우리 대구 시민들이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했었는지 다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따뜻한 인사 한마디쯤 건네는 친절을 어른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웃으며 건네는 눈인사에도 얼마간은 즐겁지 않던가.
내일 아침에도 ‘순환2번’ 그 기사님을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