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연다. 칼바람이 들어온다. 동지가 가까워서 인지 햇살이 추위 앞에 맥을 못 추고 있다. 퇴색한 나뭇잎들은 이미 땅으로 내려앉은 지 오래고 몇 잎 남은 잎 새는 찬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는 마음이 스산해지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모임이 잦은 연말이다. 식사를 겸한 술자리에서는 흔히 세속적인 우스갯말이 등장한다. 며칠 전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애인이나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을 일컬어 없다는 뜻에서 ‘무심한 사람’, 애인이 하나 뿐인 사람은 ‘한심한 사람’, 둘이면 ‘양심 있는 사람’, 셋이면 ‘세심한 사람’……, 그럼 열 명 있으면 ‘열심인 사람’ 이란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무심한 사람보다는 한심한 사람이 낫고, 한심한 사람보다는 열심인 사람이 더 낫다는 말이다.
열심인 사람은 근면성실한 사람을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당해낼 방법이 없다. 태만한 사람이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는 인류 역사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성실은 최고의 자본’이라고 어느 철학자는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각종 모임에서 회장에 추대되었을 때 인사말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미사여구를 총 동원하여 자신의 생각에 취해 상투적인 인사를 열심히 늘어놓는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길어지면 지루하다. 주례사도 마찬가지다.
어느 결혼식장을 가 봐도 주례사가 길어지면 하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주례자는 열심히 연설을 하는데 하객들의 반응은 열심과는 반대다.
주례석에 올라간 어느 분은 신랑 신부에게 겨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잘 먹고 잘 살아래이~” 이 한마디만 하고 끝을 냈더니 박수소리가 더 크더라고 했다.
나도 이제까지 회장도 여러 번 했지만 인사말은 아주 짧게 하는 편이다. “도와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도다.
주례를 섰을 때도 신랑 신부의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한 말만 골라 5분 이내로 끝을 맺었더니 하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세계 10대 부자이자 아시아의 최대 재벌 리카싱은 사업 초기에 자본이 확보되지 않아 고충을 많이 겪었다.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대량의 제품을 주문받게 되었지만 그들이 믿을만한 재력가의 보증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보증 서줄 사람이 없자 그는 하는 수 없이 외국 바이어를 찾아가 솔직히 털어 놓았다는 것이다.
재산은 없지만 내 몸을 담보로 보증을 서겠다고 호소하였으며, ‘성실’이란 자본 하나 만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현대그룹의 총수였던 고 정주영 회장의 좌우명이 우리들의 심금을 울린다. “해보기는 해 봤어?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 못할 것이 없다”라고.
지금 우리는 시도도 해보지 않고 미리 안 될 거라고 체념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매사에 열심인 사람을 우리 사회는 요구하고 있다. 비록 많이는 배우지 못했더라도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대우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을 해본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학교육을 받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고급 두뇌인력이 세계 방방곡곡에 수출되어 해외로 뻗어나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우리 모두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서 ‘무심한 사람’ 보다 ‘열심인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