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남은 살 시절, 읍내에서 군민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관내의 모든 학교들이 고령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운수雲水초등학교라는 학교도 끼어 있었다.
‘운수’, 그 이름은 어린 내게 막연한 신비감을 불러일으켰었다. 세상의 무수한 지명 가운데 어디 이런 이름을 흔히 만날 수 있었던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생각샘이 깊어지고 보니 그 운수에서 얼토당토않게 운수납자雲水衲子를 떠올린다. 운수납자라면 다름 아닌 출가수행승이 아닌가. 그래서 막연하게, 알 수 없는 신비감으로 다가왔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견모주政見母主라고 해 어머니 같은 산으로 불리는 가야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운수 땅을 비켜서 굽이를 이룬다. 이름 해 대가천이다. 그래서이리라, 운수는 가야산과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한다.
그 운수에 가면 봉평리鳳坪里라는 마을이 있고, 마을이 소재한 면사무소 바로 옆에 봉평리 고인돌이 수수만년을 누워 있다. 봉평은 ‘봉새가 깃들어 있는 땅’이라고 풀이가 되니 또 얼마나 신령스러운 이름인가. 거기에다가 아득한 옛적 사람들의 무덤인 고인돌이라니……. 운수와 봉평과 고인돌, 이 셋은 그래서 절묘한 조화다.
운수면 봉평리에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은 오랜 옛적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아 왔다는 확연한 증거가 돼 준다. 상서로운 상상의 새인 봉황이 깃들 만한 땅이고 보면 당연히 사람도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것이고, 거기다 가까이에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이 흘러내려 회천과 만나는 아우라지이니 물을 얻기도 아주 수월했을 터이다. 그러고 보면 운수 봉평 땅은 천혜의 입지조건이 아닌가.
어쩌다 고인돌을 만나면 이런저런 호기심들이 고개를 든다. 고인돌은 대체 왜 만들었을까.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 시절에 저처럼 엄청난 크기의 덮개돌을 어떻게 받침돌 위에다 얹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무엇 때문에 기를 쓰고 그 큰 돌을 굳이 받침돌 위에 들어 올리려고 하였는지 그 연유도 궁금해진다.
고인돌의 유래와 고인돌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양하다. 그 때 당시의 사람들은 덮개돌로 쓰인 널찍한 돌이 삶과 죽음을 격리시키고, 죽은 자로부터 산 자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그런 생각으로 고인돌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유랑을 하던 유목생활에서 정착을 한 농경생활로 바뀌면서 잉여생산물이 생겨나고, 부의 축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무리를 이끌어 나갈 통치자가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 마을과 마을 사이 혹은 부족과 부족 간에 영토 확장을 위한 다툼은 불가피했고, 마을공동체를 대표하는 부족장은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큰 고인돌을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거대한 고인돌을 가졌다는 사실은 강력한 지도자가 존재한다는 증거이고, 따라서 마을의 규모도 그만큼 컸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에 반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겨났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죽은 사람이 다시 깨어나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검을 묻은 뒤 그 위에다 무거운 돌을 올려놓았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를테면 고인돌이 주검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영혼을 묶어 두는 역할을 지녔다고 믿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이론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학설로는 집단의 기념물로서 고인돌이 건립됐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고인돌을 만드는 행위는 공동체 사회의 힘을 결집하고 협동 단결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구구한 학설로 미루어 볼 때, 옛사람들이 지금 아무도 남아 있지 않기에 어느 누구도 단정 지어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문헌상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견해들은 다들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할 뿐이다.
고인돌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때 당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죽살이의 세계관에 대한 수수께끼를 던져 주고 있다. 그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몫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