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내와 나들이를 가고 있다. 차 안에서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 나온다. 차창사이로 지나가는 풍경이 싱그럽다. 녹색물감을 쏟아 부은 듯 신록이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
“볼륨 좀 낮추세요.” 아내의 짜증스런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친다. ‘아차 또 실수’ 언제나 반복되는 일이다. 난청이다. 해가 갈수록 소리의 메아리는 가늘어져만 간다. 나이가 더해 갈수록 찾아오는 자연스런 현상일까. 세월의 무게에서 스멀스멀 멀어져가는 초라한 모습이 서글프다.
저녁 식사 후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나는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TV 앞으로 바짝 닥아 간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리모컨을 집어 든다. 볼륨 조절키가 +쪽으로 높여진다. “볼륨 좀 낮추세요!” 늘 들어오던 아내의 목소리다. 그 날 이 후로 TV 한 대를 더 사서 따로따로 보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해도 거실에서 고음으로 인해 안방에까지 들린다면서 경고의 음성이 들려온다. 부부사이의 대화도 많이 줄었다. 난청이라서 그런지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면 두 번 세 번 다시 묻게 되니 대답하기가 짜증스런 모양이 다.
난청의 발단이 시작된 것은 반세기 전 이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수영장에 가서 다이빙을 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간 것이 원인이 된 것이다. 중이염으로 병원에 가도 잘 낮지 않고 고성능 항생제를 쓴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결혼 후에도 만성 중이염으로 자주 재발해서 고막이 많이 상하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니스공에 맞아 반대편 귀 고막까지 찢어져서 인공고막으로 사용하다가 가끔씩 재발해 병원 신세를 많이 지게 된 샘이다. 보청기까지 사용할 정도는 아니지만 청각 신경이 해가 갈수록 약해져만 가는 것을 어찌할 수 있으랴. 그르려니 하고 자기 위안도 해보지만 잔존 능력이 남아 있을 때 보청기라도 해 끼워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보통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면 장애인 이라고 부른다. 그 기능의 경중이 문제가 아니라 신체 일부에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장애인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안경을 끼거나 보청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모두 장애인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이 세상에는 누구나 다 장애인 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보통 사람은 나이를 더 해가면서 한 군데 한 군데 퇴화되면서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쇠로 만든 기계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고장이 나듯이 우리 인간도 병이란 것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옛말에 ‘인간 칠십 고래희’라 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은 칠십 세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말일게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관리를 잘하면 백세까지 사는 세상이 됐다. 누구나 죽는 날까지는 남에게 신세를 끼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렇게 하자면 현재의 장애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차 안에서 라디오 볼륨을 낮춰가며 들으려고 노력하고 TV의 볼륨도 줄이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먼 훗날 아내도 그런 상황이 된다면 두 사람 모두 보청기라도 준비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자연스런 노화현상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관리할 것은 잘 관리해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