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이 가고 희망의 새해 정유년이 밝은지 한참 지났다.
닭의 해인 정유년! 닭은 5천 년 동안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내온 동물이라 해 덕담으로 새해 벽두를 열었다. 머리에 관(볏)을 썼으니 文이요 발톱으로 공격하니 武요 적을 보면 물러서지 않으니 勇이요 먹을 것을 보면 나눠먹자고 서로 부르니 仁이고 어김없이 때맞춰 우니 信이라 했다. 이른바 이 다섯 가지 덕목을 갖췄으니 오덕이라 한다며 진원지는 중국이라 한다.
또 금년 정유년의 정(丁)은 오행사상에서 붉은 색을 뜻하기 때문에 특별히‘광명의 해 정유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이 별다르다 해 희망찬 새해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모두들 새해를 맞았다.
뿐만이 아니다. 매일 알을 낳으니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으며 혼례 때 초례상에도 올랐다. 종묘대제일 때 쓰는 제기에도 닭이 그려져 있으니 닭의 의미는 대단히 컸으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다.
농경사회일 때 닭이 지니는 의미는 여러 모로 컸다. 특히 모든 것이 자급자족일 시대였으니 닭 없는 농가는 없을 정도였다. 두세 마리 암탉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까면 3,40 마리는 보통이었다. 어려웠던 시절 경제적 소득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럴 때 계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내 초교 시절이었다. 월사금인지 학급비인지 모르지만 그것도 미처 내지 못해 선생님이 미납자들을 불러 세우고 이유를 물었다. 나는 다급하게, ‘부모님이 계란 팔아서 준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 담임 선생님이 우리 동네에 사셨고 실제로 선생님 댁에 계란을 판 일도 있었으니 그리 허황된 얘기는 아니었다.
우리 국문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조선시대 시인들이 있었다. 황진이와 허난설헌에다 이에 버금가는 여류시인이 있었으니 조선 선조 때의 이옥봉(李玉峰)이다.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 1권만이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하고 있다 한다. 애석한 일이다.
<임 떠난 내일 밤이야 짧고 짧아도/ 임 계신 오늘 밤은 길고 길었으면
닭 울어 날 새고 임 떠날 채비/ 두 뺨에 흐르는 천 갈래 눈물>.
여기 나오는 ‘닭’ 얘기는 난해하지도 않고 사변적(思辨的)이지는 더욱 않았지만, 명색이 문학을 한다는 내게는 마음을 콕 찌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단번에 음미하며 두 번 볼 것도 없이 암기를 해버린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음미라고 할 것도 없었다.
물이 흘러가듯 하는 시어들의 나열이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순수하고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몇 해 전 서울 창덕궁 소재 소극장에서, 조선 여류시인으로 중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던 이옥봉의 삶과 문학을 주제로 한 낭송회가 열렸다. 낭군 떠나보내는 절절한 심경을 출연 배우가 낭송을 하니 탄성이 터져 온 장내를 압도했다 한다.
시문의 주제 중에는 남녀의 상사(相思), 연정, 별리(別離)가 주류이긴 하지만 이렇게 연정과 별리를 절절히 나타낸 것을 쉽게 보지 못했다. 황진이의 ‘벽계수와 명월…’도 있지만, 내 좁은 견문으로 억지로 순번을 매긴다면 ‘닭 울어 날 새고…’가 압권이 아닌가 한다.
문학 작품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쉽지도 않고 의미도 없겠지만 처음 접할 때의 감동이 너무 커 이렇게라도 적어보는 것이다. 닭의 해라고 해 나온 두 번째 얘기이다.
세 번째 얘기야말로 정말 내게는 의미 있는 일이다. 새해 벽두 새 달력을 걸며 십간십이지가 정유년이라 하니 여느 간지와는 다르게 느껴오는 게 있었다.
어쩐지 뭔가는 있을 것도 같은데 언뜻 집히는 게 없었다. 다시 생각하는데 퍼뜩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아버지 환갑의 해 정유년이었다. 60년 전의 정유년이 떠오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간의 일이었다. 1957년의 일이었으니 그간의 시공이라는 간극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열일곱 살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일 년 전부터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있는 정성 없는 정성, 이 하루를 위해 일 년을 준비했으며 그 결과가 큰상에 차린 음식으로 나타났다.
정좌한 부모님 잔칫상 앞에 우리 5형제가 차례대로 서서 축수의 잔을 올리고 절이 시작됐다.
한두 번 절이 아니라 많이 할수록 좋다고 참여한 친인척과 손님들이 한마디씩 해 아마도 30번은 하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들 자식들이 기뻤던 만큼 평소 근엄하기만 했던 부모님도 그날만은 환히 웃으셨다.
원근의 친인척이 모인  잔치는 그렇게 2,3일 계속됐다.
참으로 오랜만에 해보는 ‘환갑잔치’라는 명칭이다. 당시의 환갑잔치는 오늘의 팔순이나 미수 정도의 잔치 그 이상이었다. 평균수명이 50을 넘을까 말까한 시대에서 환갑이란 말 자체로도 참으로 의미 있는 행사로 생각했다.
자손들로서는 효도의 표상이며 부모로서는 무병장수의 축복의 장이었다. 자손 흥성하고 경제적 여력이 있어서 잔치를 치르면 이웃 동네까지 알 정도로 칭송이 자자함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시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