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리도 닮아 가는고?”
단잠에 빠져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있다. 핏기 없는 얼굴에 아래로 쳐진 눈꼬리, 뭉툭한 코에 유난히 튀어나온 광대뼈, 머리카락엔 서리꽃이 내리고 정수리 부분에는 고속도로가 훤하게 뚫려있다.
장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금년 아흔 넷인 장모님은 상주에서 혼자 살고 계신다. 서울에서 은행지점장을 지낸 처남이 같이 지내자고 해도 고향 경로당에서 이야기 벗이 좋다며 극구 거절하신다. 그 곳에서 오래도록 후덕을 쌓은 관계로 종신회장을 맡고 있다. 장모님도 젊은 시절엔 동네에서 인물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단다. 일본에서 자라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무남독녀로 곱게 자랐다고 한다.
젊은 총각들이 줄을 섰지만 일본인은 거절하고 8남매의 맏종부로 장인어른께 시집을 왔다고 한다. 낯설고 물 설은 두메산골에서 거친 세파에 시달려온 평생, 백옥 같은 피부와 달덩이 같은 얼굴도 그 형체가 사라져 광대뼈가 튀어 나오고 머리는 백발이 성성했다.
그 누가 세월 앞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이마에는 인생계급장이 물너울을 이루고 백옥 같던 살결도 죽음 꽃이 만발하다. 집사람이 대구에서 같이 살자고 해도 극구 반대하시며, 제발 자식들 걱정 않끼치고 ‘밤새안녕’을 부처님께 기도 한단다. 장모님이 고생한 것을 책으로 엮으면 소설을 몇 권을 쓰고도 남을 것이라고 하셨다. 어렵게 살던 시절에 갖은 풍파를 겪으며 살아 온 당신이었기에 지금은 황혼녘에서 편안히 임종을 맞으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팔남매의 맏종부로 일 년에 열두 번의 봉제사며, 중풍으로 십여 년 간을 대. 소변 받아내는 일은 물론, 4남매를 억척같이 키워내신 분이 아니었던가. 설 명절에는 수십 명의 세배꾼들에게 술상 차리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것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여생과 그렇게도 닮았음을 회상해 본다.
오죽했으면 장모님께서 딸 둘은 남의 집 맏며느리로 출가를 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결과는 둘 다 맏집으로 출가를 시켰으니, 운명의 아이러니를 어쩔 수 있으랴!
젊은 시절 아내 또한 장모님을 닮아서 유난히도 하얀 살결에 달덩이 같이 환한 얼굴이었었다. 친구들의 부부동반 모임이 있을 때  기죽을 일이 없었고, 듣기 좋은 소리로 ‘예쁜이 사모님’이란 별칭을 들었던 것은 나만의 행복이었다. 살림 잘하고, 아이 잘 키우며 남편에게 잘하는 맏종부로 정평이 났으니 얼마나 신이 났었겠는가.
세월의 무게는 참으로 무거운가 보다. 삼남매 반듯이 키워 모두 출가시키고 나니 남는 것은 거친 피부와 이마에는 인생계급장만 더해가는 것을 어찌 피할 수 있으랴!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나이가 더해가면서 어찌 그리도 나쁜 쪽으로만 닮아 가는지 모르겠다. 장모님과 집사람은 물론이고 또 한 가족이 붕어빵이다. 우리 아들과 손자가 그렇다. 얼굴형이며 피부 그리고 음성까지 판박이니 정말로 피는 못 속이는가 보다. 며칠 전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 손자가 유치원에 가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서 손찌검을 했더니, 그렇게 울더라고 했다.
‘아차! 붕어빵이구나!’
나도 모르게 삼십 여 년 전의 일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아침 출근 시간 때였다.
자전거로 아들을 유치원에 태워주고 가야하기에 태워서 유치원 마당에 내려놓는 순간 울면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나는, 주먹으로 아이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내가 왜 화를 못 참고 구타를 했을까 후회를 해 보지만 씻을 수 없는 과거가 평생을 두고 가슴이 미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렇게 말 안 듣던 아들이 커서 손자에게 손찌검을 했다니 극치에 도달했을 때 인내하지 못하는 것도 붕어빵처럼 유전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월은 흘러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금 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장모님 생각이 나고, 아들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돼 철부지 일곱 살 손자를 화가 난다며 손찌검을 하는 것은, 내가 삼십 년 전 아들에게 한 구타한 일들도 대대로 이어지는 붕어빵 가족의 내력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