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온 날의 투영이다. 그 속에는 흥망과 시련과 고난과 시대상이 투영된다. 단군이 아사달(지금의 평양 혹은 구월산)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세운 때로부터 우리의 역사는 시작된다.
역사서를 얘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보감(寶鑑)이 있다. 정사인 삼국사기와 야사인 삼국유사이다. 정사는 기록의 역사이고 야사는 기록에서 누락됐거나  논란이 있는 것은 구전이거나 항설(巷說)이 역사가 된 사례이다. 5천 년의 역사 중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인용하고 가장 많이 우리 민족의 교범이 된 것도 이 둘의 역사서가 아닌가 한다.
고대사는 논외로 하고 삼국시대의 전후사로 시작해 고려와 조선의 역사서를 보는 눈은 논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상존한다. 특히 근현대사는 그 역사적 관점에 따라 논란이 분분하다.
그 좋은 예가 제주4·3사건이다. 이른바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이 대립하고 있어서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달라도 너무 달라 지금도 그 여진은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논란의 핵심은 폭동이냐 항쟁이냐이다. 다시 말해 건국을 방해하려는 세력과 이를 진압하려는 토벌경비대를 두고 전후사(前後事)는 규명하지도 않고 토벌대만 폭동으로 본 것이다. 심지어 원천적 발생 상황의 증언도 있고 기록도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토벌대의 폭동이라고만 결론을 내린 것이다.
사건 당시의 역사는 폭동으로 기록했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배웠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났는데 ‘역사바로잡기’가 태동되더니 폭동이 항쟁으로 뒤집힌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항쟁으로 완결판을 내며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으니 논란은 일단은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
폭도는 피해자가 되고 유공자가 되는 상전벽해가 되는 형국이었다. 거액의 보상금도 주었다.
평화재단도 만들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 역사를 엮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은 시대 따라 다른 것이 숙명인가! 2000년 1월 ‘제주4·3사건특별법’이 제정됐다.
당시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점은 외면하고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반인권적 양민 희생만 문제 삼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남로당의 건국 방해 세력의 반란을 항쟁으로 미화시키고 대한민국을 부정했던 반란 세력을 정부가 수용했다는 말이다.
해방정국은 좌우익으로 갈리어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로 혼란스러웠다. 남로당의 발호와 신탁과 반탁으로 날이 지새는 때였다. 편안한 날이 없었다.
폭동이건 항쟁이건 전쟁이나 다름없는 내란 수준인데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기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왜 한쪽 편만 들었는지가 문제의 요체이다.
오늘에 와서 봐도 그 4·3사건은 폭동이거나 항쟁이거나 모두 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피아간의 희생은 피할 수가 없다.
이를 두고 한쪽의 피해는 눈감고 다른 한쪽만 보고 항쟁이니 폭동이니 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다. 항쟁이 됐건 폭동이 됐건 모두 내 나라의 문제이다.
일이 이런 데도 왜 한쪽만 보고 항쟁이라고 하는가 말이다. 한쪽은 평화주의자고 한쪽은 폭도라고 낙인찍는 것은 본질을 왜곡한다는 말이다.
그 혼란한 시기에 흑백을 어떻게 가리겠는가. 모두가 가해자이고 모두가 피해자인 것을…. 해방정국의 혼란은 있었지만 적대국가와의 전쟁은 아니지 않는가.
왜 진압경비대만 잘못된 공권력의 집행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오늘의 시위에서 흔히 보는 공권력의 무력화가 그때부터 있어왔던 걸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로 다투는 자식들을 본 부모는, ‘너는 이게 나쁘고 또 너는 이걸 고쳐야 돼’라고 해야 정상이 아닌가. 한 나라의 두 세력의 다툼을 두고 한쪽 편만 들어서야 되겠는가. 시대상황을 직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모가 두 아들 중 하나를 버릴 수야 없는 것 아닌가.
내 열 살 전후일 때 그 혼란했던 시대를 보고 자랐다. 학도병이 지리산 공비토벌 갔다가 전사한 경우도 보았다.
특히 가야산 공비토벌로 당시 지서주임 노 구백이라는 경찰관의 활약상을 듣기도 했다. 당시 열 살 전후의 어린이들에게는 영웅담이 되기에 충분했다.
분명한 것은, 그땐 공비가 빨갱이이기 때문에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현대사를 보는 안식(眼識)이 생기면서는 피아간 모두가 시대적 아픔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쪽만 폭동으로 단죄하는 것은 준엄한 역사의 흐름을 왜곡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아직도 당시 참상의 양 당사자들 증언도 있는데 어쩌다 공권력 행사를 쾌도난마이듯 반역으로 재단하는가 말이다.
또 역사는 흘러가 반전이 일어나 역사의 엄중함이 훼손되고 일시적 시류에 따라 국가의 정통성이 단절된다면 이를 어떻게 한 나라의 역사라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