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가 청승맞게 내리는 초겨울 저녁이다. 윈도브러시엔 고인의 창백한 얼굴이 나타났다가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달포 전 병상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반기던 야윈 얼굴이 자꾸만 망막에 맺혀온다.
문자 메시지를 몇 번 확인하고 들어선 곳은 보훈병원 특1호실, 국화 화환이 즐비한 복도를 지나 빈소를 찾았다. 이럴 때를 두고 초상집 분위기라 했던가.
찢어질 듯 귓가를 울리는 미망인의 통곡이 애처롭다. 그 옆에 과년한 두 따님 또한 어깨를 연신 들먹인다. 나도 엎드려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비통함을 금할 길 없군요. 진정하십시오” 상투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식당에서 고인의 누님께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1년 전 위암 수술이 간으로 전이되어 간암으로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고인이야 눈을 감으면 그만이겠지만, 미망인과 아직 출가하지 않은 두 딸이 가련해 보였다.
2년 전 시 문예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던 문우인지라, 친구를 잃은 나의 가슴은 삭막한 황야에 외로운 한 떨기나무와 같았다. 모 대학 공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밤이면 시 공부 마치고 대폿잔 기울이며 인생철학을 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싸늘한 시신이 되어 아쉽게 떠나간 문우가 원망스러웠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고 했던가. 머리 좋고, 글재주 있는 망인이었었는데… 더욱이 아쉬운 것은 과년한 두 딸의 결혼을 지켜보지 못하고 떠나다니, 고인은 물론이고 미망인의 가슴에 맺힌 상처가 더욱 컸으리라.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명체란 존재의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게 한다. 지난 여름 백짓장 같은 하얀 얼굴로 나의 등단을 축하해주던 고인의 잔상이 자꾸만 떠오른다. 위로 누님이 넷이고 ‘반듯한 놈’ 얻었다고 살아생전 자랑하시던 ‘어머니’란 고인의 글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콧등이 찡해온다. 고인의 누님과 얘기하는 도중 모 사찰 스님의 우렁찬 ‘나무아미타불’ 독송을 뒤로하고 자리를 떴다.
뜬금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옛날 젊은 시절, 조문 인사말이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다. 그 시절 상갓집에 문상을 갈 때면, 무슨 말로 상주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일 때가 있었다.
“황망 중 당상을 당하셔서 퍽 애석하시겠습니다”라고 어느 지인이 가르쳐 주었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쉽게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할 때 제일 무난한 것은 상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도록 입안의 말로 중얼거리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유교사상이 팽배하던 시절이라 인사말 하기가 그리 쉽지 않던 때였다. 그 때 상주에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생각이나 혼자 피식 웃었다.
지금은 철이 들어서인지 조문인사를 할 때 고인의 나이가 얼마며,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는지 상세히 물어보고 상주에게 적합한 위로의 말을 해주곤 한다. 위로의 인사말도 고인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을 때는, “무슨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 하고, 노환으로 돌아가셨을 때는, “호상(好喪)이오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라고 조문 인사를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