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 멀리서 경운기 한 대가 털털털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처음엔 윤곽선만 희미하던 것이, 차츰 거리가 가까워지자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누군가 싶었더니 먼 친척뻘 되는 아재다. 젊은 날의 그리도 건장하던 풍골은 간곳없고, 북어처럼 바짝 몸집이 쪼그라들었다. 거기다 허리까지 낫 모양으로 굽어 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얼마나 가난이 한이 되었으면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죽어라 일에만 매달렸을까. 덕분에 서 발 막대 저어 봐야 짚 검불 하나 걸릴 데 없던 살림살이는 몰라보게 좋아져서 이제 허리는 펴고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꼿꼿하던 허리가 하늘을 모르고 지내야 할 만큼 꼬부라져 버렸다. 그런 불편한 몸으로도 여전히 경운기를 모는가 하면 비닐하우스를 설치한 딸기밭에서 종일토록 작업에 매달린다. 성한 사람보다 더 재바르니 혀가 내둘릴 정도이다. 아재는 어쩌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여기고 계실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이며 가치관은 백인이 백색이므로.
물론 사람살이에서 일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적당히 몸을 챙겨 가면서 쉬엄쉬엄 해 나가는 것이 보다 현명하지 않을까. 사람이 너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꾸벅꾸벅 일만 해서도 곤란하다는 인생살이의 이치를 아재의 기역자로 꺾인 허리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고 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참으로 그런 것 같다. 세상 그 무엇보다 몸이 보배다. 천금의 재물을 지니고 있은들, 명예가 아무리 높다 한들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여든에 가까운 연세이고 보면, 일제의 학정과 6·25전쟁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겪어 낸 세대이다. 게다가 물려받은 재산 한 푼 없이 스스로 일어서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 것이다. 한번 남부럽지 않게 살아 보는 것에 포원이 져서 미처 몸을 돌볼 생각 자체를 갖지 못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 대가로 아재는 곱사등 같은 척추를 훈장처럼 달고 지내야만 한다.
허리는 굽었어도 다른 데는 그다지 불편한 곳이 없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이제 충분히 먹고살 만한 형편이 되었으니, 억척스레 매달려 온 농사일은 그만 내려놓고 좋은 세상 좀 누려가며 지내셨으면 한다. 그리고 남은 생애 동안 부디 복된 나날이 되기를 마음 모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