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라고 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이젠 100세 시대라 통칭해도 별 거부감이 없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흔히 말하는 오복(五福)이 수.부.강녕.유호덕.고종명(壽富康寧攸好德考終命)인데 그 첫째가 수인 것만 봐도 오래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건강히’를 꼭 빼놓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내 나이 고래희를 지나 한참 되다 보니 밤사이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50대에 디스크, 60대에 대장암, 70대에 와선 경막하출혈(머리) 수술까지 했으니 어디 성한 곳이 있겠는가. 내가 생각해도 참 ‘병주머니’로 자학할 수밖에 없게 됐다.
어느 날 갑자기 50견이 오는가 하더니 하지정맥류도 왔다. 치아 고장도 왔다. 발치하고 보철도 했다. 하지만 보철보다 진일보 한 틀니 요법도 나오고 이에 더하여 임플란트 시술이 나와도 난 아직은 이들의 신세를 질 일은 없지만 또 언제 시술을 받아야 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찬 것이나 딱딱한 것을 먹을 때마다 몸이 먼저 옴쭉거리니 나도 ‘언젠가…’라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이 사실이다.
낮에 심히 걷거나 좀 무리한 일을 하고 나면 그날 밤 잠자리의 자세가 자연스럽지 못하여 자고 일어나면 그야말로 온 삭신이 불편함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지금의 건강 수명은 70.3이고 기대 수명은 79.7을 믿고 싶은 것이 또한 사실이다. ‘골골 80’이라 하듯 그래도 기대 수명은 넘기고 싶으니 이 또한 인간 보편의 범용(凡庸)스러운 욕심일까, 속물의 범주(範疇)를 벗지 못한 탓일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언을 믿어야 할까?
건강! 대단히 어려운 화두이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하게 타고나야 된다는 사람도 있다.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선천적 ‘타고나기’와 후천적 ‘노력’이 뒤따라야 함이 정설이다.
인체는 원래 120세까지는 살 수 있게 태어난다고 한다. 온 몸의 기관이나 장기가 그야말로 내구연한(耐久年限)이 있다는 말이다. 과로하거나 혹사하고 또 기타 질병으로 연한을 채우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나 다 건강하게 태어난다고 한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의술이나 사회적 보건 환경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으나 당시에도 예방접종도 있었다. 아이도 어른도 예방주사 맞고 나면 그 후유증으로 하루는 몹시 앓아눕기도 했으니 말이다.
또, 당시 봄이 되면 각 가정을 청결(淸潔)이라는 이름으로 위생 상태를 점검했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했는지 남은 기억은 없으나 ‘오늘 민(면)에서 칭걸 나온단다…’라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 유해 물질이나 청소상태 점검이 주된 목적이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의 위생업소에 대한 위생검열을 하듯 청결은 전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였다. 이른바 관존민비일때의 일이니 사람들은 ‘피검인(被檢人)’의 위압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초봄부터 시작하는 그 공포의 말라리아는 여름 내내 이어지고 가을바람이 불어야 절로 퇴치됐다. 하루걸러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40도 고열이 나고 다음날 아침이면 스르르 거짓말 같이 털고 일어난다.
무슨 꾀병 같았다. 부르는 이름도 많았다. 학질, 초학에다 하루걸러 한다고 하루거리라는 속칭도 있었다.
간혹 4,50대 어른들도 했지만 주로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했으니 한창 일생 건강한 삶을 위해 내성(耐性)을 기르고 튼튼히 해야 할 시기에 병마와 싸워야 했으니 당시 평균수명 50세를 넘길 수가 있었겠는가. 게다가 건강 유지를 위한 필수 영양소 섭취는 어디 가당키나 했겠는가.
건강은 성장기의 영양이 좌우한다고 하고 더 나아가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했는데 약도 먹거리도 변변치 않았으니 뭘 더 말하겠는가.
오늘의 이 풍요에서 당시의 ‘초근목피’를 일러 무엇 할까만 그래도 평균 수명이 50세 전후였던 당시를 남의 말 하듯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기생충은 왜 그리도 많았던가. 우선 배가 고프니 아무거나 먹었다.
인분으로 키운 야채 생채를 먹으면 채독(菜毒)이, 잉어 같은 물고기 회로 먹으면 간디스토마에 걸렸다. 감염되면 변변한 약도 없었다.
안색이 노랗게 변한다고 하여 황달(黃疸), 말기에 가면 검게 변하니 흑달(黑疸)이라 했다.
흑달이 되면 지금의 암 말기와 같았다. 불명예스럽지만 낙동강 잉어는 간디스토마로 악명이 높았다.
그야말로 청정 산천수로 사는 피라미.은어는 손으로 잡아 그냥 냇물에 서서 우적우적 씹어 먹어도 탈이 없었지만 낙동강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이런 얘길 하자니 어느 먼 나라의 얘기 같아 실감이 나지 않음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겪은 지난날이니 어쩌겠는가.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태어났으면 고종명을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현실파도 있다.
반면, 병고에 시달리며 오래 사는 것이야말로 본인은 물론 부양가족에게도 고통이 되고 경제적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는 말이리라.
6.25 전후와 경제개발 시대일 때 쟁기로 논 갈고 손 모심기하며 청소년의 황금기를 그런대로 건강히 보낸 나이지만 후천적 관리가 부실하여 온갖 질병 다 겪었으니 건강할 수는 없는 것이 어쩌면 바른 수순이 아닌가 한다.
단지, 노년 초입에 들면서 현상 유지라도 하는 것만을 소망할 뿐이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임을 내가 더 잘 아니까 그게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