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동장(지금의 이장)을 맡은 첫해에 있었던 일이다. 약초 심을 밭에 경운기로 퇴비를 운반해 뿌리고 있는데, 마을에 사는 학생(16)이 3살 때 헤어진 엄마를 찾아달라고 울면서 찾아왔다.
학생의 외가는 다산 호촌동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학생의 이모집과 전화번호를 물었다. 이모집은 대구 대신동에서 금은방을 한다기에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이모가 형부집을 가르쳐 주기 싫은 눈치라 묻기도 거북스러웠다.
아이들은 엄마 손에서 자라야 한다. 학생의 아버지는 일은 하지 않고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말투조차 거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이 미꾸라지나 잡으러 다니고 공부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 아니다.
수소문을 통해 학생의 엄마가 살고 있는 곳이 부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학생을 데리고 버스와 기차로 부산의 엄마가 산다는 집에 도착했지만, 엄마는 집에 없었다. 꽤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마침내 엄마가 나타났다.
13년 만에 만난 딸과 부둥켜안고 우는 모녀상봉 장면은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 나도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학생은 엄마 집에 두고 나는 여관에서 잠을 잔 다음날 학생만 데리고 다산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딸에게 “엄마 만난 것을 아버지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며 옷도 사 입히고 용돈도 주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봤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흐뭇하다. 학생의 엄마를 찾아준다고 농사일을 잠시 미루고 이틀간의 비용은 내가 쓰긴 했지만 현재 엄마와 같이 살고 있다니 생각하면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기억된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마을이장시절 단체로 경주엑스포 관광을 간 적이 있다. 어린애가 울고 있기에 “왜 우느냐”고 물으니 “엄마가 없어요”라며 울기만 했다. 딱한 마음에 애를 안고 엄마를 찾겠다고 1시간 정도를 헤맸지만 결국 찾지를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주최 측 안내 방송실에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맡겼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또 한 번은 1992년 8월23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날로 기억한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께서 민원이 있어서 청도 군청에 갔더니, 고령군청으로 가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 어르신이 고령군청에 와서 대구 대명6동에 사는 친척 김상욱씨를 42년 만에 만나러 왔는데, 좀 찾아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담당과장이 “다산에 박주덕씨를 찾아가보라”는 말을 듣고 나를 찾아왔다. 사정얘기를 듣고 지나칠 수 없어 전화번호부 생각이 떠올라 우체국으로 같이 갔다. 그 당시 이종찬 우체국장이 건네 준 대구시의 전화번호부를 뒤져보고 친척을 만나게 해준 일이 있었다.

한번은 낙동강변 순찰을 하던 중 사문진대교 부근에서 울고 있는 여자(21세 가량)를 보고 왜 우느냐고 물으니 대답은 않고 계속 울기만 했다. 딱한 마음에 자꾸만 다그쳐 물으니까 “아빠가 날 버리고 갔어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좀 모자라는 여자로 보였는데, 아버지가 딸아이를 버린 것 같다. 아버지가 좋은 차를 타고 와서 버리고 갔다는 것으로 봐서 가정 형편은 괜찮은 것으로 보였다. 알면서 안 가르쳐 주는지 수차례 집 전화를 가르쳐달라고 해도 모른다고 한다. 결국 행정기관으로 보낸 일이 있다.
아무리 사회가 각박하다고는 하지만 자기가 낳은 천륜을 지능이 좀 떨어진다고 어찌 버릴 수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헤어진 사람을 찾아준다거나 찾아주려고 애썼던 일임을 부인할 수 없다.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일 만큼 보람 있는 일이 어디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