鳶(연)을 타고 하늘을 날면 얼마나 좋을까?
옛 어른들이 임금이 타는 가마를 연이라고 표현했으니  하늘을 날지 못하더라도 연을 타 보면 좋을 듯하다. 아니 타 보고 싶다. 내가 정말 어린 童子(동자)가 되어.
시세말로 ‘남정네는 가을을 탄다’라고 하더라만  筆者는 유독 봄을 탄다. 괜히 간질거리고 어딘가 막연히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불끈 솟구칠 때마다 마음고생을 톡톡히 한다.
어느 시인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다고 노래하듯이, 뒷동산이라도 냅다 뛰어 오르고 싶다.
요즘은 제법 잘 맞아 떨어지는 일기예보가 강수 확률 60%라는 황색경보를 울리고 있지만, 맑은 물이 흐른다는 청계천을 따라 흥겨운 콧노래를 뿌려가며 나홀로 산행을 즐기고 있을 때이다.
사형천(蛇形川)의 본보기라도 되는 양 아주 아름답게  또아리 튼 기슭에, 젖먹이 아기가 어미 젖무덤 붙잡듯,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 듯한 채소밭이 산자락에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몇 번을 오르내렸건만 무심결에 지나며 못 보았는데 오늘은 문득 보인다. 탱자의 꽃이.
순백색의 앙증스런 작은 꽃이, 예수님처럼 초록의 가시 면류관을 쓴 것이 아니라 冠을 타고 놀고 있다. 요 녀석도 봄꽃이라  꽃잎이 잎보다 먼저 핀다.  잎이 피지 않았지만 가시를 포함한 줄기자체의 초록 광택이 빛을 발하니 녀석의 처지가 가련하기조차 하다. 꽃이 주목 받지 못함과 같이 결실의 계절이 와도 枳實(지실: 탱자 열매)은  橘(귤)의 뒤안길에서 영원한 out sidemen이 되는 것이다.
향기로는 枳香이 모과향에 못지 않지만 너무 짙고 쉽게 물려터지면서 역한 냄새를 동반하니 사랑 받기에 애시당초 힘들기가 한량없다.  흔히들 주연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조연배우라고 하지만 탱자의 입장이 애처롭다.
橘化僞枳(귤화위지)라 하여 맛난 귤이 황하 이남에서 황하강을 건너 북으로 이동하면 탱자(枳)가 된다고 하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홀대의 대상이다. 물론 지금이야 과학문명의 발전으로 열대과일이나 채소가 온대(溫帶)지역을 벗어나 거의 한대(寒帶) 영역을 넘나들고 있으니 옛말의 뜻을 직역보다 의역으로 받아들여야겠지만 말이다.
탱자가 홀대 받는 것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이 아침에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떠오른다.
枳柵(지책)이라 하여 남쪽의 생활권에서는 집 담장이나 경작지의 울타리를 탱자를 심어 사용하기도 했었다.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들의 피해를 방어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인천에 살면서 자주 가 보았던, 강화지역 감곶리와 사기리에 있는 400여년 수령의 탱자나무가 천연기념물 제 78호와 79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지만 식재된 사연은 눈물을 머금게 한다.
정묘호란때 인조임금은 피란처인 이곳에 성을 쌓고 그 주위를 탱자나무를 심어 외적의 접근을 막으면서 안위를 구걸하였다 하며, 15세의 젊은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 이건창이라는 분이 암행어사로 활동하면서 당시 상당히 권력가였던 충청도 관찰사 조병식의 비리를 적발하고, 오히려 칭찬이 아닌 미움의 대상이 되어 사기리로 귀양을 갔었는데 거처의 울타리가 탱자였었고 그 흔적이 앞서 말한 천연기념물79호이다.
古書(고서)에 모든 이가 따르더라도 조심스레 살펴보아야 하고, 많은 사람이 지탄의 말을 던지더라도 충심으로 따져보아 판단함이 군자의 몸가짐이라 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正意(정의)는 책에서만 보일 때도 있나 보다.
탱자가 슬프고 억울함만 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참새, 딱새를 비롯한 어리고 약한 새들이 천적들로부터 보호받는 안식처가 바로 탱자나무 울타리이다.
지금은 합천호 물밑에 숨바꼭질하고 있는 고향 동구(洞口) 밖의  작고 예쁜 길섶에도  아카시아꽃 울타리와 나란히 줄지어 있던 탱자나무 울타리가 내 친구였고 안식처였었다.  딱지치기를 하다가 집에 돌아갈 때는 이 울타리 한켠에 고이 감추어 두기도 하였고, 소 먹이러 가서 구워먹을 감자를 잠시 보관하기도 하였던 탱자나무 울타리가 그리워서 나는 귤(橘)을 품을 수 없다.
정승께옵서 유자(橘) 보다 못한 홍시(紅시)라도 품어 가서 드릴 어머님이 아니 계심을 노래했었는데, 오늘 筆者는 이렇게 귀한 귤을 품을 수 없다. 탱자가 가지고 있을 또 다른 미담을 찾아 鳶을 타고 하늘을 오르기 위하여.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