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으면서  온 산야 정기를 마시고 싶었다.
고운 최선생처럼 신선이 되어 우리 고장을 안고 영원한 휴식을 취하여도 억울하지 않겠다는 꿈 조각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가야산 발치의 농산정(농山亭)이라도 찾을까 하다가, 천하가 모두 나의 품속에 있노라 하는 글쟁이 정신으로 발길 가는 곳이 휴양지가 되었다.
절기 경칩(驚蟄)이 숨차게 달려오지만 몇일 남은 이 시기(時期)에 맹꽁이 녀석은 무엇이 급했는지 사랑놀음의 결정판을 쏟아 놓았다. 인간이 만든 편리와 경제성 논리에 의한 험상궂은 콘크리트 봇도랑(水路)에 담겨 있는 물웅덩이에 몽실몽실 붙여 놓고  태교(胎敎)라도 하는 양 목줄을 연신 볼록거리며 야단스레 노래를 한다.
빨리 깨어나 올챙이가 되길 기도한다. 곧 시작되는 농사철이면 수초(水草)도 없는 저곳에서 알들은 부모들을 오판으로 혼(魂) 이탈을 당할 것이다. 물론 미물들의 본능이 엄청나다는 것은 알지만 자연현상을 바꿔 놓은 인위적인 수로라 기우(杞憂)를 하고 있다.
수로나 도로 공사현장도 절개지(切開地)를 마감하면서 요철(凹凸)모양으로 하여 미관상도 좋고 유사시 탈출에 용이하도록 하는 공법을 시행한다니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자연현상이 가장 큰 스승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어디 소 논갈이라도 볼까? ’하고 살펴보아도 소는커녕 경운기 탈탈거리는 소리도 없이, 트랙터가 윙윙거리며 몇 번 중얼거리다 집에 가고 따사로운 햇살만 놀고 있다. 바람과 함께.
‘지렁이라도 벗 해 볼까’ 하는 생각도 사치스런 모양새다. 트랙터란 놈이 지력 돋운다고 냅다 갈고 비비고하여 지렁이가 있었더라도 화장한 시신(屍身)처럼 가루로 만든 땅속에 남아 있을 리가 있겠는가?  아니야 전쟁 통에도 살아남은 끈기의 나라이니 어디선가 나타나겠지 지렁이가.
이 논에는 과연 무엇을 심을까?
그야 농부의 설계도에 있겠지만, 갑자기 심는 것과 묻는 것의 차이점이 생각났다. 
우리네 인생길에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기대에 따라 묻거나 심는다. 씨앗을 땅에 뿌리면서 묻는다는 사람은 없다. 씨앗을 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묻는다는 것은 종말을 뜻하고 심는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말하는 것이다.
씨앗이 선반이나 곳간에 편안히 놓여 있는 한 그 잠재력은 절대 깨어나지 않는다.  땅에 떨어져 발아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가죽이 찢어지고 영양분이 썩어 문드러지면서 절대자가 준 생명력이 성장하고 자라서 꽃 피우고 새로운 열매를 맺어 보는 것이다.
시신이 묻힘 되어 사라지는 것과 달리, 씨앗이 어두운 땅 속에 심어지고 나서 하는 일은 실로 엄청나다. 다행이 온도와 습도가 알맞을 수도 있겠지만, 가물은 땅이라고 씨앗은 포기하지 않고 주위의 습기를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모은다. 한줌의 빛도 허용 않는 그곳에서도 먼 훗날 언젠가는 보란 듯이 넘치도록 마셔보리라는 꿈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아니 노력하는 것이다.
타 민족의 침략으로 주권과 언어와 심지어는 정신세계까지 강탈당한 그 시기에 깨우쳐 노래한 우리 선열의 독립만세 노래가락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믿는 것이다. 다함이 없음 즉 끝이 없이 계속됨을 뜻하는 무궁화(無窮花)를 국화(國花)로 정하면서 끝없이 싸우면서 얻어내야 할 그것(自由)을 위한 노력을 하였던 선열들의 피와 땀이,  묻힌 것이 아닌 심어졌던 씨앗들이었다.
큰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면서, 돌이 아닌 바위를 만나면 여울지면서 역류를 하지만 끝내 흐르고 흘러서 제갈 길을 가는 것이다. 혹여 독자 중에 학업을 시작하는 학도가 있을 듯해 드리는 말씀이지만, 성공이란 수입의 다소가 아니고, 지위의 고저도 아니고, 재산의 축적 정도도 아니며, 칭송의 수여 여부도 아니고, 나에게 내가 주는 표창장을 마음에 거리낌 없이 기쁘게 받을 수 있을 때가 비로소 성공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청춘들아 세상 말씀으로  ‘나의 길’을 가시오. 그대들의 진정한 꿈을 심어보는 호시절을 누리시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씨앗처럼 심어 볼 가치가 있을 듯하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