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숱한 여인네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서 한해를 아주 복되게 지내고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그분께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고 노래했었다. 나름으로 선비의 후손이라 자칭하는 몸으로 사랑받은 자랑만 하는 것이 모양새가 궁색하여 오늘은 筆者가 사랑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너무나 귀하고 값진 사연이라 보배함에 간직한 모양으로 하늘아버지께 갈까했지만, 고품격 글은 아닐망정 표현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신 아버지의 뜻이 있을 듯하여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촌놈이 거창이란 대처에서 보낸 중학생이던 시절이었다. 사연(事緣)이 있어 수업을 약 열흘 쉬고 교실문을 들어서는데  “걱정했었다 아이가? 이놈아. 정말 잘 왔데이.” 하시면서 덥석 안아주시던 상미선생님의 향내는 아직도 내 코를 벌렁거리게 한다.
157mm 모나미볼펜도 감사하며 잡고 있는데, “내 만년필 사는데 한 개 더 주더라 ” 하신 157cm 키에 너무나 예쁘고 목소리도 고왔던 그분. 나의 감정으로 사랑했던 최초의 여인 양선생님. 항아리모양의 함초롱한 짧은 치마를 항상 입어셨고, 수업시간에 졸기라도 하면 “해에게서 소년에게”란 최남선 선생의 시를 암송 하시면서 “너 지금 철썩 할 때마다 맞은 거다 알았니?”해서 모두가 까르르 웃고 나면 정말로 얼굴이 붉어지면서 수업에 충실할 수 있었고, 덕분에 筆者가 국어 과목을 아주 열성으로 공부 하면서 선생님을 마음으로 사랑하였고 지금은 글줄을 쓰게 되었다.
기온주가 물이 어는 빙점을 지나서 스물다섯 점을 흔치 않게 오르내리던 추운 곳 양구에서 군(軍)생활 할 때였었다.  위생병이라 사단 의무근무대로 한 달에 한 번씩 의약품을 수령하려 가면, 꼭 양철 쪼가리 찢어지는 목소리로 군기 잡던 간호장교 양(梁)중위. 까만 얼굴에 살점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른 모양인데 마음은 태평양이라. 
너무나 술이 먹고 싶어 한잔 했는데 수령물품을 잃어 버렸다. 이제는 영창이다 싶어 어린 생각에 탈영하여 북으로 갈까? 죽어 버릴까?  온갖 잡념으로 고생하다가 양중위님을 찾아 장교 숙소로 갔다. 그야말로 걱정이 너무 크니 술 먹은 것은 별것 아니었다. 심각성을 감지한 그 여인은 아무 말도 없이 당신의 침실에서 쉬게(숨겨두고)하고 여러 곳을 연락하고 수배하여 문제의 물품을 찾았단다.
“니 전역하고 병원근무 할끼가?”
“..........”
“니 양상미 시인을 아나?”
“양상미 시인은 모르고 은사님중에 양상미 국어선생님은 있습니다......”
“임마, 니 사과 묵어 봤나?”
“예?”
“한 병장. 니 운 터졌다 임마. 거창사과 농사꾼 양상미 시인이 내 고모 아이가?.”
어릴 때 마음으로 사랑한 그분이 양철 쪼가리 양중위의 고모라, 내가 사랑했던  선생님의 정성이 여기까지 찾아와 도와주셨다. 우연치고는 필연같이 나의 곤욕스런 사건을 풀어주는 또 한 겹의 끈이 될 줄이야.
筆者가 사랑한 7학년 후반의 그분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시더라도 쪼매만 아프고 그 詩(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읊으면서 나를 때려 주시면 좋겠다.
용광로에는 못 미치더라도 숯불정도의 뜨거운 향미 사랑을 해 보았다고 자부하는 筆者였다.  한편  筆者가 그렇게 가슴이 아플 정도로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 애끓는 사랑을 예수님의 무한사랑(agape love) 흉내를 내는 모양새로 끌어 올려서 진정한 기쁨을 맛본 경험이 있었다.
구름처럼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와 초계고을에서 어르신들 돌봄이 일을 할 때이다. 筆者입장에서는 고품격의 agape love라 할지라도 그분에게 누(累)가 될까하여 지칭(指稱)과 전개(悛改)을 변형한다. 세월의 무게에 허리가 꺾일망정 정신줄 놓지 않으신다며 닭도 울기전인 미명의 시간에 흐느끼는 멜로디의 찬송가를 보듬다가 옆 침대 동료들의 눈총을 그렇게 받으면서도 눈가에 이슬조차 맺히지 않으시던 그분.
특히 집안의 후손(아들)으로 인하여 영육(靈肉)간에 어려움을 보듬고 살아가련만 그 유명한 영화 ‘벤허’에서 한센병을 앓고 있는 누이를 찾아가는 벤허처럼 덤덤한 정을 나누던 그 여인.  오후 나절에 이층 홀에서 사물놀이라도 하면은 세상시름 모두 잊고 몰입하며 즐기던 순수함을 보여주신 깨끗한 사람.
괭가리 가락에 순간의 피곤함을 잊어 보려는 듯 무아지경에 몰입하실 때,  筆者는 징으로 음률의 맥(point)을 놓칠까 염려하면서 땀 흘린 때가 있었다. 즐거움인지 흥겨움인지 분위기가 고조(古調)되고 시세말로 ‘흥분의 도가니’를 형성하면 筆者는 일부러 징소리를 반 박자 늦게 울렸고, 용하게도 그 분은 찡긋하고 이마의 머리칼을 정리하는 사이로 미소를 보내 주셨다.
내 앞자락도 못다 여미는 筆者가, 표백제 사용하지 않은 은은한 순백의 사랑으로 기도해 드렸던 그분은 지금도 역시 행복한 웃음을 날리고 있을까?
지난해 여름 끝자락에 (물의 색깔을 만지고 싶다)란 글을 신문(新聞)을 통하여 독자들께 드린 때가 있는데, 그 글로 인하여 메일(e-mail) 한통이 왔었다. 동양화을 전공하였다며 당신도 물의 색깔을 몰라서 여백으로 남겨둔다고 했다.
물론 동양화 기법(技法)중에 으뜸이 여백의 운치임을 글쟁이인 筆者도 알고, 독자 어르신들도 아는데  동양화 전공의 화백이 몰라서일까?
생활 근거지가 같은 지역이라 차 한 잔 할 시각이면 만날 수 있는 곳에 살고 계셨고, 자주 이메일(e-mail)를 주고 받다보니 정말 연인처럼 느낌을 주기도 했었다. 요즘처럼 세계 공동화라며 외국여행을 쇠똥구리 장마 만난 듯 드나드는 세상에,  筆者는 제주도 여행도 마다하는 위인이니 옆 동네라 해도 열없이 만나는 것 보다 메일로 사귀는 것이 마음 편하였다. 실없이 만나는 것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특별히 갈 이유도 없고 열정도 없었다는 표현이 옳다고 본다.
이 메일(e-mail)로 심심찮게 그녀의 그림을 보내왔고 또 나의 글을 지상(紙上)에  얹기에 앞서서 드리기도 하면서 제법 솔솔한 사랑을 주고받았다. 정신적인 사랑이 이런 것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번은 그녀가 筆者의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보내주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해가 바뀌었다.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e-mail 우체통이 덜덜거리며 열어 보란다.
사극(史劇)에 나올법한 먹으로 그린 몽타즈(인물화) 한폭을 이메일로 보내왔고, 筆者는 그림을 보고 웃지도 못하고 화를 내지도 못하고 정말 난감함을 느꼈다.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저팔계의 형상이라 筆者의 자존심이 인내심의 한계점을 넘나들 정도로 상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메일로 몇 번 동무 했다고 이렇게 당황스럽게 하다니, 높은 곳에 계시는 저이를 찾지 않고는 가슴이 터질듯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찾고 있었다.  전화기 구멍으로.
“선생님이 000씨와 사귀는 사람이요?”
이것이 무슨 귀신 씨앗 까먹는 소리고, 도무지 뜬구름도 유분수지 도대체 뭐꼬?
“아아  메일 주고받았던 (칠발라) 할머니를 아느냐고 묻는 말입니다.”
“아 예. 할머니인가  할아버지인가는 모르고 ‘칠발라’ 주소를 쓰는 동양화 그리는 화백을 메일로 몇 번 사귀기는 했지요.”
“역시 선생님은 꾸밈이 없네요. 어머님이 선생님 초상화를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셨습니다. 선생님이 유복자인 저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시면서 그리셨는데......  제가 보기에도 민망한 그림이라 고민하다 방금 보내드렸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 겨우 전화 드립니다.”
“.....”
“제가 어머님을 잘 못 모셔서, 환갑도 못 채운 분을 ......”
“제발 멈추시오. 당신의 어머님은 보통 사람이 삼십년 동안 받을 고귀한 사랑을 미리 받고 가셨다고 보오. 어쩜 내가 드린 사랑을 당신 아버지와 나누고 있는지도 모르잖소?”
구정을 보내고 약간은 나른할 듯하여 조금 변형 준 글로 인사 올렸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