쭗  수  필                                                                    동화  한  봉  수
두루마기
요즘 사람들은 한복을 입는 경우가 드물다.
설이나 추석 절기에 입는 옷 정도로 여길 만큼 착복하는 기회가 드물다. 
작고하신 아버님의 팔순 잔치 때에도, 나는 급히 대여하여 입었으니 거론 할 가치조차 없을 듯하다.
이렇게 한복을 착복 할 기회조차 적었던 내가 요즘은 한복을 가장 많이 입는다. 오십이 넘어 철이 들어 전통 한복도 자주입고, 일상생활 중에 개량 한복을 자주 입는다.  그렇다고 무슨 예술가도 아니고 무속인도 아니지만 무슨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양 말이다.
처음에는 행동거지도 어색했지만 이젠 제법 걸음걸이도 자연스러워졌다. 개량 한복은 양복처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전통 한복은 옷을 입는 방법과 관리하는 것이 상당히 조심성을 요하기 때문에 한복을 입으면서 자연스레 행동 양식도  조용하면서 침착성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한복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생뚱맞게도 간단하였다.
칠년 전에 선친이 영원히 못 돌아오실 곳으로 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우리 칠남매는 무언의 약속으로 나누워 가지기로 하였었다. 모두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을 유품 한 개씩을 선택할 때 내가 간직한 것이 두루마기였다.
신장과 체격조건이 선친과 비교적 비슷하였고 아버님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듯하여 선택하고 보니 결국 전통 한복 한 벌을 곁들어서 갖게 되었다.
그 후 자연히 한복을 자주 입게 되었다. 어머님이 “자네가 입어니까 꼭 그 어른을 보는 듯하네 그려” 하시면서 선친에 대한 정을 표하시니, 바자회나 물물교환 장터에서 구하는 것이 온통 한복으로 되었다.
일상생활이 나른해지거나 힘겨워져서 누군가에게 의논이라도 하고픈 간절함이 용솟음치면 선친의 유택을 찾아간다. 조카 녀석들이 나를 상대로 많은 의논을 청해 오니, 정작 내가 의논 할 상대는 아버님이 된 것은 자연스런 모양새이다. 아버님은 말씀을 않으시고 오직 영감(靈感)으로만 전하시니 선친을 찾을 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혼자 찾아뵙는다.
아버님께서는 약주 중에 ‘막걸리’를 유독 좋아 하셨다. 농사일을 하시면서 찬(饌)으로 내가는 농주(農酒)를 드시면서 식사를 거르는 때가 종종 있으셔서 어머니의 안타까움을 배가시키기도 하셨지만, 먼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길게 내뿜으시던 골연초 연기 속에 ‘당신의 말씀을 실어 보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본다.
소가 밭을 쟁기질 하고 있던 어느 날,  아버님은 “미안 하구먼 미안혜” 하시면서 밭을 일구셨다. 보통 때는 “이러 이러” 하시던가 아니면 “어디어디”등으로  소를 내몰아가며 일을 하셨지만, 그날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말씀을 하시면서 소가 쉬면 그냥 밭고랑 가운데 서서 기다려 주시고, 소를 조용히 따라 가시면서 일을 하시니 시간이 너무나 많이 소용되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해서도 특이한 모습은 계속되었다. 평소엔 시원한 우물물로 소의 잔등을 씻어주며 얇은 갈구리 모양의 긁개로 슬건슬건 긁어주셨지만, 그날은 물을 데워서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평소엔 담배도 엄청 많이 드셨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한 모금도 않으시고 소 곁에 서성이고 계셨다.
이튿날 아침에 예쁜 송아지가 마당에 뛰어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두루마기를 입고 계셨다. 하늘 가실 때는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당시는 할아버님처럼 합천 향교에 출입하시던 분으로서 얼마나 급하고 미안했으면 양반체면에 두루마기 입고 치성을 드렸을까? 
수의사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전화로 청하였다 해도 왕진비와 송아지 값이 비슷하였을 것이니 어쩜 큰 소만이라도 무사하길 기도하면서 낮에 밭갈이 한 것을 얼마나 후회하셨을까?
물론 지금 가지고 있는 두루마기는 송아지 낳던 그날의 것은 아니다. 팔순 잔치에 수달피 털이라도 올리는 마음으로 드렸지만, 아버님은 두루마기 동정의 빛조차 바뀌기 전에 서둘러 가셨다 저 높은 그곳으로.
이 못난 아들이 오래 오래 입으라고 남겨 주신 것 같아 정말 귀한 날만 입어본다.  동정 색이 변하고 옆 주머니 솔기가 터져도 벗고 싶지 않다. 아버님의 정이 그리워지거나 아들 녀석들 몰래 울어 볼 일이 생기면 아버님 유택을 찾으며 두루마기를 입어본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