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 한 올을 잡고 관광버스에 몸을 얹어보니, 아직 기사님은 시동도 걸지 않았는데 나의 발장단은 리듬을 타고 있다. 동석한 음악협회 회원들의 끼를 전해 받은 것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값 못하는 필자의 감흥이 제 혼자 노래함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대장경축전 현장을 향하여 미끄러져 간다.
만년 나그네인 筆者가 원인은 모르나 환송의전도 생략되어, 기분이 소요연처럼 하늘 높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온몸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찰떡 한 조각의 나눔이 무슨 요술이라도 부리는 양 풍각쟁이들과 글쟁이들의 어울림을 백년지기 벗님네로 만들어 회원모집 여행과는 전혀 별천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니 밀짚모자를 두고 온 것을 잠간 후회 했다. 왜냐하면 곧장 각설이 타령이나 폼바 한 자락이라도 나올 분위여서 말이다.
친 할머니 생신 날자는 모르면서 인기 절정의 연예인 취미나 관심사까지 꿰뚫고 있는 요즘의 젊은이들 마냥, 합천에 살면서도 가야산 해인사의 길목인 소릿길을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몰랐다. 그저 해인사 구경에 묻혀 지나쳐 온 경우야 부지기수이나 죽지 않고도 피안의 세계를 맛 볼 수 있다는 길. 그래서 예전에는 일반의 풍류객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고 구도의 길을 걷는 그들만이 수행의 한 방편으로만 사용 하였다는 그 길을 말이다. 대장경축전을 기하여 개방한 것은 수년이 되었다는데, 筆者는 이번 참에 무른 호박이라도 찔려 볼 양으로 맘 단단히 먹고 나선 여행이지만 역시 “아아, 야아”를 엄청 반복하고는 “제가 겁도 없이 소릿길을 노래 해 보겠다고 덤빈 것을 용서 하소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니 독자님들이여 직접보소서” 하는 말이 최상급인 것 같다.
가야19명소를 굽이굽이 돌면서 노래하고 새겨 놓은 앞서간 시인의 춤사위 흥에 나의 몸을 맡기고 감사함을 마시고 있는데 농산정(籠山亭)에 곱게도 사려 앉아 시조창하는 신선 같은 다섯 어르신들은 무딘 경상도 머슴애마저 구름 위를 넘나들게 한다. 
최첨단 전자장치와 수천 년의 향기가 버무려져 있는 본 행사장보다 칠쟁이(환쟁이)들의 재롱잔치에 눈길이 가는 것은 ‘내 마음 나도 몰라라’이니, 2013합천미협전에 나의 개인 자유 시간 모두를 올인(all in) 하였다.
서예, 조각, 묵화, 채색동양화, 민화 닮은 현대화 등 筆者가 환칠 전공이 아니라서 전문적인 분류를 할 수 없었지만 모두가 내공의 힘이 넘쳐나는 작품들이라 구경하는 중에 입에 침이 마르고 있다.
가장 깊은 곳의 귀퉁이 벽면에 붙어있는 그림 한 조각 앞에서 나의 발걸음은 떠날 수가 없었다. 전설의 고향에서 한이 서려 버티고 있는 시신 담은 그것처럼 말이다.
제목은 Happiness 이었지만, 筆者는 “은주네 집”으로 바꾸고 아예 이사를 들어가 살고 싶었다. 구한말 왕족의 후예로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우거진 옹달샘 가에 살아보자고 노래한 이강석, 그 사람처럼 이 그림 속에서 살고 싶었다. 꽃잎으로 만들어진 지붕과 손자 녀석이 잘 먹을듯한 과자로 벽을 만든 집.  그 집을 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여인네의 가슴을 마음껏 마시면서 지나간 “쎄시봉” 레코드음악이라도 들려 올 듯한 이집에서 살고 싶었다.
좀 생뚱맞은 줄은 알지만 이 집을 지은 사람을 만나서 커피라도 한잔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이집보다 어여쁘면서 중후한 맛을 풍기는 알맞게 살찐 여인네가 “저어 제가 이 그림을 만든 작가입니다”한다.
무슨 기도가 이렇게도 빨리 이루어진담. 마침 입구에서 커피는 무한 공급하고 있으니 이 기분 그야말로 ‘띵호아 띵호아’ 이구나.
이 그림을 제작한 의도와 기법, 주제설명하면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자기소개를 하는 화가를 그냥 둘 筆者인가?  옆에 있는 그림 한 점의 설명을 부탁하며 감상법과 筆者의 느낀 바를 피력하니 꼭 유치원 선생님마냥 자상하게 포장하여 귀에 쏙 들어오게 넣어준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도 가는 법, 풍각회(음악) 회원은 모두가 노래 한잔 춤한점을 달리는 차량 바닥과 천장에 골고루도 도배를 한다. 글쟁이 모임과 사뭇 다르다. 주접 많은 筆者는 풍각회에 몸담으면 정말 신명 나겠다고 생각하다가 몸서리를 쳤다. 불과 수개월 전, 어느 글쟁이 모임의 흥에 맞장구치다가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신창이가 되는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도 풍각쟁이 놀음에 흐느적거리며 리듬타고 있으니 분명 예술의 맛은 조금 아는가 보다.
일전에 글쟁이 묶음집에 보낼 양으로 자화상 한 수를 쓴 때가 있다. 밑그림도 어려웠지만 채색은 색조를 선택하고 채도 명도를 맞추는 작업이 너무 어려웠다. 나의 자화상을 장의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들 녀석이 그린다면, 작은 불꽃이 채 꺼지기도 전에 한 모금 담배 연기 속에 완성하리라고 억지 춘양으로 탈고를 하였었다. 오늘처럼 풍각미와 환칠미를 모두 마실 수 있는 날이었다면 좀더 진한 국물맛 나는 자화상을 드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 해 본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