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교육계의 논쟁이 뜨겁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 나눠져 있어 심하게 말하면 일촉즉발의 폭풍전야 같이 느껴진다. 교과서가 어떻게 진영논리에 휘둘리는가. 여기다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쪽에서는 역사를 보는 균형 감각을 강조한다.
굳이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라 하지 않더라도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나 역사교육 문제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무릇 국가 정책은 세대·계층에 따라 또 이해득실에 따라 대립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그 나라 장래인 학생들 교육문제에 있어서만은 국론이 갈려서는 안 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학교 교육이 교재에 따라 다르게 배워야 하다니 이게 어떻게 나라 교육 정책인가.
어쩌면 한국사 교과목이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변경될 때부터 예고된 것은 아닌가 한다. 국정이거나 검인정이거나 사소한 견해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큰 줄기에서의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교과서가 왜 교과서인가. 게다가 대표 저자 교수는 이름만 걸어 놓고 실제 집필은 고교 교사가 한다는 출판사도 있다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교수도 마찬가지지만 그 교사의 역사관이 투영될 것은 뻔하지 않는가.
저명한 어느 학자는 말한다. 이렇게 역사 문제를 두고 극명하게 갈린 것은 이 나라 좌파정부 10년이 그 시발이라고-. 다양·다원화의 사회 발전도 좋고 균형 있는 인재 양성도 좋지만 나라 근간을 송두리째 흔드는 역사관이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역사를 어찌 ‘자기 논리’로만 서술하는가. 논리가 아니라 궤변에 가깝다고 해야 할 판이다. 적어도 국사교육 문제에서만은 온 국민의 대체적인 공감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빨치산 축제에 학생을 참여시키고 감상문을 쓰라고 한 중학교 교사, 좌편향 저서를 내고 끊임없이 좌편향 성향을 드러내놓고 주장하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대학 교수, 김일성 시신 참배를 두고 동방예의지국 운운한 법관…. 이게 오늘의 참담한 현실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했지만 자기 자신의 개인적 성향이나 소신을 법관의 양심으로 착각하는 법관이 버젓이 있는 현실과, 어느 전직 대통령이 이 나라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한 사실이 역사 서술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결코 비약은 아니다. 이를 두고 구태여 교과서 문제에 연결시키고 싶진 않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는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이걸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왜 나라의 정통성을 단죄하듯 부정하는가.
일제 폭압의 시대를 지나 조국광복, 6·25 등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누가 나서서 쾌도난마식으로 정리할 사람이야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엄정하게, 중도적 균형 감각으로 역사 서술은 있어야 한다. 교과서 문제는 학술세미나는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의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서술해야 하는데, 공에는 미화 일변도로 과에는 혹독한 잣대를 대는 것이 문제이다. 언어의 마술에 걸린 듯 편향된 시각은 금물이다. 문제는 편향인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7, 8개나 되는 출판사가 각각의 시대로 편찬했으니 그것이 문제의 요체(要諦)이다. 출판사들의 각 필진이 뜨겁게 열띤 토론을 거치고 하나의 큰 명제를 설정하여 그에 따른 역사의 큰 줄기(통론)는 같고 각론(디테일:detail)은 조금 달라도 되지 않겠는가. 일테면 5.16을 쿠데타라 하건 군사정변이라고 하건 그 결과는 이 나라 산업화의 기틀은 놓았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음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5.16이 쿠데타이니 그 이후 일은 모두 부정적인 시각,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지성인이라 자처는 하지만 다양성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떤 사안을 두고 엄정함이나 중도적 평가를 내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문학 작품도 평자(評者)에 다라 수준작이다 태작이다 등으로 견해가 갈린다.
역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체험한 역사는 논외로 하더라도 교단에서 배운 역사는 누가 가르치고 어떻게 배웠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극단적으로 말해 ‘빨치산 추모제’의 교사로부터 배운 학생들이 어떻게 바른 역사관이 정립하겠는가. 그 학생들이 각계로 진출하여 사회 지도층이 될 때 과연 이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균형감각! 이 담론이야말로 정말로 어려운 문제이다. 칼럼니스트요 작가인 작고한 이병주(李炳注) 선생은 엄정한 의미의 중도는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불편부당(不偏不黨)이라고 말을 쉽게 하지만 사안에 따라 그 뜻이 허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었다. 그 당시 산업화는 발전해 가고 민주화가 뿌리를 내릴 때 두 진영 간에 갈등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라 사회적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이기도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하지는 않았지만 논쟁은 뜨거웠다. 경제적으로는 비효율이고 소모적일 뿐이라고 질책하는 소리도 나왔다.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크다고도 했다. 보다 못한 이병주 선생이 두 진영 간에 합리적 접합점을 찾아야 한다고 설파한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다. 상대가 미우면 미운 것만 보이고 예쁘면 예쁜 것만 보인다고 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시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고(思考)의 한계가 아닌가 한다.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산업화의 ‘소득 지상주의’의 시대에서 한국사 교육을 슬그머니 선택 과목으로 격하(?)시킨 단견(短見)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어떻게 제 나라 역사를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가? 역사를 모르는 민족의 장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논쟁 그 자체도 역사가 될 수 있다. 만시지탄이 절로 나오지만 아직은 최종본이 나오지 않았으니 겸허한 자세로 그리고 엄중한 역사의 사명감으로 제발 대립만 하지 말고 접점을 찾아 올바른 역사관을 내일을 짊어질 다음세대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교과서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어디까지나 교과서는 교과서여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