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는 담배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국민 건강을 위해 금연홍보가 있어온지 십 수 년이 됐다. 처음엔 별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일부 병원이 금연학교를 개설하여 금연운동에 나서고, 유관 기관에서는 본격 금연캠페인을 벌이게 되니 국민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 이제는 흡연자가 설 곳이 없게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해 직장에서는 흡연실을 따로 만들어 비흡연자를 보호하고 애연가들의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해 주기도 하더니 지금은 그 마저도 없애고 아예 금연에 성공하면 승진 등 인센티브까지 주는 회사도 생겼다.
의학적 연구 결과도 나왔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건강에 좋지 않은 당류와 육식에다 술도 많이 먹는 반면 좋다는 해산물과 과일 야채는 적게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한국금연운동협의회에서는 담배는 술을 부르고 술은 또 담배를 부르는 상호작용을 한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금연이 국민 건강을 위해서 적절하다는 적극 찬성론자와 기본권 침해라는 의견과의 충돌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금연 정책으로 값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법안 발의를 했다가 애연가들의 압력에 유야무야되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흡연자의 설자리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들 가정도 다를 게 없다. 담배 피우는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들 눈치 봐야 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놈의 냄새는 아무도 속일 수가 없으니 섣부른 거짓말은 통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영유아가 있는 가정이면 천하에 없는 애연가라도 금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 접견권(?)까지 박탈당할 처지가 될 것이니 이 노릇을 어찌하랴!
담배와 우리 인생! 조선조 광해군 때 일본으로부터 전래됐다는 담배는 담바고(淡婆姑), 심심초, 마구초 등의 별칭도 많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는 민담도 있었다. 청상(靑孀)이 추야장 긴긴 밤을 지세우려 담배를 접했다는 얘기도 있고, 홀로된 며느리가 안쓰러워 시아버지가 흡연을 권했다는 애연한 얘기도 있다.
담배가 수난을 겪는 오늘에서 담바고라는 이름의 유래를 잡학으로라도 명쾌하게 풀어낼 수 없음이 조금은 유감으로 남는다. 청상이 그렇고 담바고의 바(婆)와 고(姑)가 여인에 관한 글자이니 여기엔 분명 여인들의 애환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게나마 짐작만 할 뿐이다. 임진왜란 이후 경상도 지방에서 담바고타령이라는 민요가 불렸다는데 이 또한 궁금증만 더하게 하고 있다.
조선시대 반상의 구분이 확연할 때 일상 착용하는 복식으로 신분을 나타낼 때도 있었듯 담뱃대 또한 다르지 않다. 한 뼘도 안 되는 곰방대를 뒷춤에 차고 다녔던 하층민, 이보다는 조금 길었던 중인계층, 긴 담뱃대와 위의(威儀)의 상징 지팡이가 한 세트가 되어 이른바 사류(士類)계층이라는 권위의 상징물이 될 때도 있었다.
담배의 위계질서는 엄격하여 함께 끽연할 수 있는 연령이 불문율로 정해져 있었다. 성년의 관례를 치러야 어른 대접을 받고 그래야 공개석상에서 술을 마시듯 담배도 마찬가지였다. 통념상 술 담배가 무슨 어른아이를 가르는 기준 같은 것이 되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보다는 그 질서가 엄존했던 때의 얘기, 그때도 불량 청소년은 있었던지 밭두렁에 쉬고 있는 장죽 문 촌로(村老)(지금의 어르신)에게 담뱃불을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기가 막힌 어르신, 주자니 체면이 말이 아니고 안 주자니 봉변을 당할 것 같아, 외면하고 돌아앉아 “자! 여기…” 했다는 얘기는 웃을 수만은 없는, 지금으로서는 씁쓸한 기억일 수밖에 없다.
이 땅에 양복과 더불어 근대 신문물의 상징이었던 궐련이 보급되고 궐련은 또 시가(cigar)로 격상되니 한 모금 길게 빨아들여 후! 하고 내뿜는 연기에 애연가 특유의 멋과 풍류를 즐기기도 하고, 호기 있게 내뻗다 여력이 잃어 삽시간에 사라져가는 연기와 함께 쌓인 스트레스도 날려 보낼 수 있다는 애연가들의 ‘담배 예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문필인에게는 시가 한 개비 물고 연기 내뿜어야 글이 나온다는 별스런 취향의 소유자도 있었다는 문단 주변의 공통된 담설이 있기도 했다.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후석(後石) 천관우(千寬宇) 선생은 시험 치는 대학생들에게 ‘담배를 물어야 글이 잘 나오는 학생은 피워도 좋다’고 했다는 일화로 단순한 기호품 이상의 것임을 알게 한다.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선생은 원고지를 잡기 전 담배부터 빼어 무는 지독한 애연가였기로 오늘날 말하는 이른바 ‘체인 스모커’였다. 그래서 인명사전에는 선생을 ‘애연(愛煙)…’ 이라고 기록될 만큼이었으니 동료, 후학들이 ‘꽁초“라 별칭 했고 그것이 ’공초‘라는 아호가 된 것이다.
내 20대 때 당시의 문예지에서 사진으로만 본 선생의 풍모는, 백발인데다 스포츠형 두발은 중량감을 더했으며 원고지를 펼쳐 놓은 찻잔 앞에서 시가를 빼어 문 선생을 보노라면 그 자체로도 문학 이전의 풍류 바로 그것이었다. 갓 끓여 피어오르는 듯 한 찻잔의 김과 어우러진 담배 연기 속의 선생이 어찌 그리도 중후해 보이던지 나 같은 ‘문청’이야 그 앞에 앉는 것조차도 위압감에 안절부절 못할 것만 같았다. ‘애연’이 문학적 수사로 미화됐던 때이기도 했던 것이다.
끽연자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설 곳이 없게 된 이 현실을 공초 선생이 봤다면 과연 뭐라 하실까? 그것이 대단히 궁금한 오늘이다. 시가와 조화를 이룬 선생의 고답적 풍모와 멋 그리고 그의 문학적 향기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세상 참 많이 변했다”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이 기회에 중고생의 흡연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학교 주변이나 특히 학원가의 골목을 지나다 보면 무리지어 흡연하는 학생들을 만난다. 성인보다 이들의 흡연을 막아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은 결코 나만의 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학생인권과 교권이 자주 부딪치고, 어린 학생이 담배를 피워도 나무라는 어른이 없다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 참으로 걱정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