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표면은 잔잔하고 어디서든 수평을 유지한다. 잠잠해 보이는 물도 실바람에는 가는 물결을, 폭풍우에는 거센 물결을 일으킨다. 
노출된 수면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출렁인다. 점철된 파고의 역정임에도 잔잔한 물결로 평온해 보일 수가 있을까? 더 넓은 바다의 잔잔한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 마음에 안정을 주는 듯하지만 때로는 거친 파도로 돌변해 평온했던 마음도 싹 가신다. 왜 거친 파도를 일으킬까? 기압 차이에 따라 바람이 일고 그 바람이 물살을 일으키는 자연현상이라고 하기엔 무미건조하다. 파도는 인생살이와 너무 닮아 있기에 더욱 그렇다. 내 마음 속의 파도만 놓고 보더라도 인생역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파도가 늘 잠잠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파고를 일으키듯 내 마음의 파고도 그렇다. 
오늘 하루만 해도 큰 파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잠잠한 하루는 아니었다. 며칠간 계속된 새벽기침은 오늘도 나를 괴롭혔다. 동창 모임에 나가 반가운 얼굴을 맞이했다. 허물없는 대화로 마음이 푸근했고 기분도 좋았다. 그렇다면 오늘도 크기는 달라도 파고가 일었음은 분명하다. 잠들기 전의 평온한 마음은 오늘 하루를 잠재운다. 밤바다의 고요한 수면과도 같이 하루를 마무리한다.
가끔 호수나 더 넓은 바닷가에 앉아 잔잔한 물결을 바라 본다.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격랑의 파고도 그려진다. 태곳적부터 있어 온 저 수면은 얼마나 많은 풍파와 사연을 담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한 길 사람의 사연이 새털만큼 많은데 태곳적 부터 출렁이는 수십 길 물이 집어삼킨 사연은 오죽하랴? 그럼에도 겉 보기에는 평온할 뿐이다. 그에 비하면 나의 육십년 여정은 찰나일 뿐이다. 나의 마음속에는 초등학교 때 쌈질하던 기억이 있고, 중학시절 소풍 갔던 추억, 고등학교 때 설악산으로 수확 여행 갔던 기억, 군 시절 병영생활, 40여 년을 부대끼던 직장과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렇듯 수많은 파고를 오르내리며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았지만 나의 기억 깊숙이 자리한 파고는 사라진듯 평소에는 잔잔 할 뿐이다.표면의 물결은 쉼 없이 출렁이며 세파를 견디고 있는 것이 인생과 흡사하다.
오늘도 가시밭길 비단길을 오가며 파고를 만들고 있지만 그 파고는 이내 흔적을 감춘다. 엄밀히 따지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수면아래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세파에 찌든 일그러진 우리의 모습일지라도 내면에는 살아남기 위한 악착같은 끈기를 감추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내 인생에도 때로는 훈풍이 일고, 때로는 폭풍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곳에 내 인생을 걸면 훈풍은 훈풍대로 폭풍은 폭풍대로 잘 적응하는 돋단배가 돼 멋진 인생행로를 맞이할 수 있다. 
우선은 잔잔한 물결이지만 온갖 세파와 파고를 넘어 왔고 앞으로도 헤쳐나갈 우리의 삶은 아름답다.태곳적 부터의 사연이 잠든 물밑, 한 평생 인생 역정을 간직한 잔잔한 가슴도 일상에서는 평온할 뿐이다. 잔잔한 파고는 쉽게 진정되고 잊고 말지만 큰 파고는 가슴 깊숙히 파고들어 내면에 흔적을 남긴다. 
외관 상 흔적없는 표면은 지나간 파고를 떠올리며 새로운 파고를 대비한다. 수많은 거친파고를 이겨내고 잠잠해진 수면에 경외감마저 든다. 마음속 크고 작은 파고를 극복한 나의 마음도 이처럼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물밑에 잠겨있는 태곳적 비밀은 신비스럽다. 가슴에 묻혀있는 나만의 비밀도 소중하다. 비밀이라기 보다 드러나지 않은 숨은 이야기다. 흔적 없는 이야기지만 물은 당시의 사연을 담았고, 사람은 저마다의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그러한 사연에 아무도 관심이 없고 알려고도 하지도 않는다. 
묵묵부답임에 오히려 솔깃해진다. 간직한 것만으로도 위대하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감춰진 이야기가 훨씬 많다. 그저 생긴 파도가 아니며, 그저 생긴 주름살이 아니다. 
그만한 역정이 있음이 분명하기에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지구를 덥고 있는 수면도 무의미한 무생물이라기 보다 늘 살랑이며 자연을 노래했고 때로는 풍파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앞서간 선조들의 흔적 없는 발자취가 묻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생행로도 자연의 일부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