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한없는 사랑을 느끼며 충만한 행복감에 도취돼 생활하고 있으나, 때론 가슴이 철렁할 정도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소소하지만 반복적인 잔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엄마 찾아 아파트 한 바퀴…성불하신 아버지를 가족묘원에 안장하고, 4형제가 후속조치를 논의하고자 술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술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만취해 자고 있었다. 깨어보니, 집 안이 휑하니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형제들은 돌아가고, 엄마는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려 가셨단다. 이사한 집의 현관 비밀번호를 모르시는데라는 생각이 미쳤다. 울고불고 형제들에게 전화하면서 아파트를 한 바퀴 돌고 보니, 반대편 아파트 입구에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한 시간이나 방황하고 계셨단다. 
아들 찾아 아파트 한 바퀴…나는 잠이 안올 때, 간혹 산책을 한다. 어느 날 새벽 두 시가 넘어 아파트를 돌면서 상념에 빠져 있었다.
엄마가 지팡이를 짚고 뒤뚱뒤뚱 걸으시며, 애절한 목소리로 우리 아들 나는 놔두고 어디 갔노? 하면서 울먹이고 계셨다. 
소소하고 반복적인 잔소리…저녁식사 후, 책상에 앉아 있으면 엄마는 반복적으로 물으신다. 상대야, 저 사진은 뭐고? 엄마 아들 인도 출장시 바이어와 저녁 먹는 사진이지, 오늘도 같은 사진을 보고 물으신다. 
저녁식사 후 챙겨드려서 드신 약을 또 드실려고 물을 찾으신다. 엄마, 밥 먹고 드셨잖아, 오늘도 잔소리를 한다. 
아침저녁으로 새 밥을 지어서 유튜브에서 배운 요리솜씨로 찌개를 끓여 공양한다. 편식이 심하시다. 골고루 드셔야 한다고 오늘도 잔소리를 한다.       
동거를 통해서 발생할 수 있는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도 있으며, 애간장을 태우는 것도 있다. 이 모든 것은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지만, 45년의 세월이라는 시공간이 주는 간격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가 없다. 때론 공허함이 명치에 걸려 있는 것 같이 답답할 때도 있다. 인생 3막의 준비가 끝나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와중에 무대를 연천에서고령으로 바꿈으로서 내적 갈등이 싹트고 있는 것 같다.
엄마와는 다르게 가슴에 멍이 들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렵다.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이고 불가능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내가 낯설고 생소하다. 어찌해야 하나,...
고령군치매안심센터를 떠올린 것은 그러한 내적 갈등으로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가 장기요양등급을 받으시고 고령군치매안심센터를 방문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센터를 방문하고 담당 선생님을 만났을 때, 보호자 입장에서 공감해 주셨고, 보호자 관리를 요양자 수준으로 케어한다는 말씀에 기대를 했다. 그리고, 보호자 우울증 검사를 실시했는데, 중간 정도의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진단을 받게 됐다. 나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나의 긍정적인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증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고령군치매안심센터 선생님과 가슴 속에 맺혀 있는 답답한 마음을 대화로 풀어만 갔는데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또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석지 선생님의 친절하고 능숙한 대화법에 기인하겠지만,... 이 모든 것이 감사하고 희망을 가져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 
무엇보다도 치매안심센터가 추구하는 구체적인 보호자 프로그램과 요양자에 대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한다면, 엄마와 함께 오랫동안 성공적인 동거생활이 지속될 것이다. 빅히스토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람과의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동물과 다르게 미성숙한 상태로 출산을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으로 양육돼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면, 뇌에 있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와 수 천 수만 개의 시냅스를 형성해 그 존엄을 유지하던 것이, 신경세포의 사멸과 시냅스의 소실 등으로 육체적 정신적인 이상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나도 당신도 그리고 그 누구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늙으신 부모님을 캐어하는 것은 대개 딸의 몫이라고들 한다. 나는 이 의견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아들이라고 며느리라고 손주라고 못할리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신의 선물을 받는 소중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