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모두 자기하기 나름이다”
“부모 살아 있을 때 잘해야지,  죽은 후 잘 모시는 것은 생색내기일 뿐이다”

가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1년째다. 소박한 농부의 아내로 초등교육까지 받으셨다. 가녀린 체구였지만 다부지셨다.
 농사를 지으면서 5남매를 기르셨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검소하시고 부지런하셨다. 아버님은 8남매 중 일곱째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3년 동안 어머니가 모셨다. 
5남매를 키우면서 끝으로 딸 둘이 있었으나 터울이 커 도움이 되지 않아 집안 잡일은 오롯이 어머니 몫이었다. 70년대까지의 농촌 생활은 많은 노동을 해야 했다. 
남자는 들일만 하면 되었지만, 여자는 살림살이와 더불어 들일까지 도왔기에 노동 강도가 컸다. 바쁜 와중에 육아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의 인격 형성은 부모의 영향이 크다.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이 자녀의 거울인 셈이다. 
과중한 가사로 어머니는 자식들께 구구단 정도는 가르쳤지만, 알뜰히 보살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자식들은 어머니의 품행을 보며 자랐기에 그 영향이 큰 듯하다. 지금도 평소 어머니가 자주 하셨던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참아라”

아버님은 약주를 즐기셨다. 간혹 논쟁이라도 벌어지면 지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셨지만 가정적이었다. 
나의 성격도 아버님을 닮은 것 같다. 친구와 다투기라도 하고 분해하면 어머니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참아라.”라며 다독여 주셨다. 
어머니가 처방해 주신 명약이었다. 생각건대, 옳고 그름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비록 논쟁으로 자기의 옳음이 밝혀졌다 한들 관계를 망쳐 버렸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그 일로 상대방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 논쟁에서 이겼다고 해도 패배자일 뿐이다. 
시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얻고 친구와 좋은 관계를 갖는 것임을 강조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종교를 가지셨다고도 안 가지셨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교를 믿었는데 드러내지 않고 조용한 기도와 수양을 실천하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우러나오는 한결같은 선한 마음은 하늘이 알아준다”고 하셨다. 
즉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변치 아니하는 마음’을 강조하셨다. 좋은 일이라고 너무 촐랑이지 않고, 나쁜 일로 너무 상심하지 않는 한결 같이 무던해야만 신실한 사람이란 것이다. 
무엇에나 한결같은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부모 살아 있을 때 잘해야지, 죽은 후 잘 모시는 것은 생색내기일 뿐이다.”라고 하셨다. 
살아 있을 때 잘 모시는 방법이 무엇일까? 어머니의 삶을 보면 답이 나온다. 할아버지께 극진하셨다. 아버님은 8남매였지만 큰 백부님이 모실 처지가 안되었을 때 어머님이 모셨다.
가사에 바쁘셨지만, 할아버지 모시는 일이 가장 우선으로 최선을 다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모두 자기하기 나름이다”

어머니가 남을 헐뜯고 험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싸움이나 말다툼하는 것도 기억에 없다. 물론 아버님과는 의견충돌이 잦았지만 칼로 물베기였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충직하게 하면 보상을 받는다고 하셨다. 그 영향인지 나는 누구든 우선은 쉽게 믿고 좋아한다. 그것이 잘못될 수도 있기에 뿌린 만큼 거둘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로 관계할 것인지 판단하게 된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라고 하셨다. 생각 해 보면, 선한 사람은 언젠가 복을 받아 결과가 좋지만, 악한 사람은 지금은 흥할지 몰라도 나중엔 결국 망하고 만다는 의미일 것이다. 
살다 보면 유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존심 강한 나로서는 전적으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대신 상대보다 내가 조금 더 손해 보는 쪽으로 마무리하곤 한다.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다. 그저 소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씀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구분해 대하지 말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어릴 때 이웃에 사는 불쌍한 독거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약간 모자라는 분으로 시집을 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소박맞고 평생을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분이었다. 가진 것도 없는 꾀죄죄한 행상(行狀)으로 누구나 멀리했는데 유독 우리 집에 자주 들락거렸다. 
그분이 오면 어머니는 측은히 여기고 따뜻이 대해 주기에 종일 머물기도 했다. 위생관리도 소홀해 냄새도 나서 어린 우리들은 싫어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두레상에 앉게 해 우리와 같이 식사를 했다. 어린 마음에 거지와 친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깊은 속이 있었음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가장 큰 스승은 자신의 어머니다. 어머니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자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산교육이다. 
시골 농부의 아내로 소박한 분이었지만 모범적인 삶을 사셨다. 어머니는 윗대 판서 할아버지 덕망을 이어받은 듯하다. 
나는 어릴 때 고집 센 반항아로 어머니를 무던히도 애태웠다. 살아생전 살갑게 못 해 드린 것이 한이 된다. 오늘 어머니 산소 벌초를 하면서 생전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술잔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