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달리 생각해 보면, 그를 향해 뻗쳐오는 끊임없는 유혹의 손길에 방어선을 둘러친 결과이기도 하리라. 
바퀴만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어디 그 시인뿐이랴. 예쁜 꽃만 눈에 뜨이면 한번 꺾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 우리들 사람의 자연스러운 심사 아닌가. 
거기에 꺾이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 본능이 발휘돼 가시로 둘러쳐지는 쪽으로 진화를 해 오다 보니, 자연 성질이 모가 나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도 싶다. 
반면에 못난이들은 대체로 성정이 유순하다. 
오랜 세월 거듭되는 세상의 구박과 천대와 멸시가 그들의 심성을 순편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우툴두툴 거칠던 바윗덩이가 이리 받히고 저리 치이며 수도 없이 구르고 구른 끝에 마침내 반들반들 윤기 흐르는 조약돌이 되는 이치처럼. 결국 잘난 이는 성깔이 있고 못난이는 성정이 유순하다는 것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어쩌다 혼자서 기차 여행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옆자리에 늘씬한 몸매를 지니고 치렁치렁 요란스러운 장식을 한 젊은 여성이라도 앉는 날이면, 눈길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몰라 내내 바늘방석이 된다. 
그에 반해, 평범한 얼굴에 수수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여인과 동석하게 되면, 마치 품 넉넉한 이웃집 누님을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가 없다. 
반백년, 그다지 짧지 아니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지금껏 세상의 수다한 이성들을 만났다. 
불행이랄지 아니면 다행이랄지, 그들 가운데 대다수 호박꽃을 닮은 여인들하고만 인연이 되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그랬고, 또래들이 그랬고, 선생님들이 그랬고, 아내가 또 그렇다. 
덕분에 품속의 구슬이 누군가로부터 손을 탈까 봐 그다지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됐으며, 울안의 장미에 가슴이 찔릴까 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옛말에 미인박명이라고 했지만, 미인만 박명한 게 아니고 어쩌면 그 박명한 미인을 곁에 두고 사는 사내도 따라 박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박꽃은, 사람으로 치자면 비록 생김새에서는 처지지만 꼭 한번 터놓고 사귐을 가져 보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평소 호박꽃 같은 여인에게서 더욱 호감정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까닭에서라고 하겠다.
하루가 다르게 가을은 깊어 가고, 호박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이런 시절이면, 호박꽃 닮은 어린 날의 정겨운 얼굴들을 다시 만난 듯 마음 자락이 푼푼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