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子 손 원작성자(66세, 대가야읍)

▲ 父 손 봉 화참전용사(92세, 대가야읍)

구순을 넘기신 아버님은 6·25참전용사이시다. 
재향군인회에서는 매년 6·25날에 참전용사를 초청해 조촐한 행사를 하고 있다. 
참전용사 모두가 고령이기에 식사를 하고 오신다. 
이날 하루는 노병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우애를 나누는 뜻 깊은 날인 듯하다. 
지난해 지역행사로 근사한 사진을 선사 받으셨다. 얼룩무늬 전투복에 베레모를 쓴 노병의 모습이었다. 
나라를 지킨 위엄이 느껴지는 멋진 액자사진으로 침실 머리맡에 두고 계신다. 
다소 아쉬운 점은 그때 입은 전투복을 선물로 받으면 좋을 듯했다.그런 아쉬움은 이듬해에 이뤄졌다. 
연초에 국가보훈부로 부터 참전용사 제복 신청안내서가 왔다. 사이즈를 적어 신청을 했다. 대량 제작에 따라 하반기쯤 전달된다고 했다. 
몇 달 후 거행된 6·25 73주년 행사 때 제복 입은 참전용사를 TV에서 볼 수 있었다. 
제복은 국가보훈부의 ‘제복의 영웅들’ 사업으로 국민들의 호응과 관심이 크다고 한다. 
패션 분야 정상급들이 참여해 노병들의 자부심을 보여줄 수 있는 제복 제작에 힘썼다고 한다.광복절이 지나고 며칠 후 제복이 왔다. 
사각 상자에 들어 있었는데 상자 표지에 '제복의 영웅들'이란 글씨가 선명했다. 
상자 속에는 베이지색 재킷, 남색 바지, 넥타이가 들어 있었다. 아버님께 국가에서 보내온 참전용사 제복임을 설명드렸더니 입어 보시겠다고 하셨다. 
흰 셔츠 위에 재킷을 입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소파에 앉아서 몇 컷, 하얀 벽 앞에 서서 찍기도 했다. 
제법 당당한 노병의 모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늘 아버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는 동생들에게 바로 전송했다. 
아버님께 들었던 말씀이 기억난다. “치열한 전투가 밤낮으로 이어졌지. 잠 못 자고 극도의 긴장 속에 참호를 기어 다녔지, 깜빡 졸고 정신이 들면 내 살을 꼬집어보곤 했다. 그래서 내가 살아 있구나. 방금 같이 있었던 전우는 꼬꾸라져 식어가고 있었다. 순간순간이 생사의 갈림길.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공간.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여겨졌지” 아버님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구사일생으로 귀향한 역전의 용사시다.
6·25 70주년 때 받은 "불멸의 영웅" 패와 함께  받은 은빛 매달은 노병의 영예를 드높였다. 
이번에 받은 제복으로 아버님의 생은 노병의 삶이었다는 것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샘이다. 
뭇 일간지에서 “참전용사들에게 제복의 의미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한 몸 바쳤다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명예의 상징이다. 정부에서 증정한 ‘영웅의 제복’은 단순히 옷 한 벌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켜냈던 자유 민주주의라는 고귀한 가치에 대한 감사와 함께 현역으로 복무 중인 군인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영예로움을 구순을 넘겨 국가가 챙겨주었다. 통계상 90세까지 생존율이 5% 정도라고 한다. 
구사일생의 참전용사 대부분이 돌아가셨고, 생존하신 5% 정도만이 뒤늦은 예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참전용사에게 어떠한 영예와 예우도 없었다고 하겠다. 아버님의 경우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참전용사로서의 자존감 그것뿐이었다. 
제복은 자기를 희생하면서도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이고 자신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 제복을 입고 있겠다는 일종의 수의(壽衣)성격도 있다고 한다. 
제복을 받고서 아버님은 환하게 웃음을 지으셨다. 그러나 제복을 입은 후의 모습은 웃음이 아닌 큰 무게감이 느껴지는 장엄함이 엿보였다.
마치 지금이라도 명령이 떨어지면 이 제복을 입고 전장으로 달려갈 것 같은 비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번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를 통해 참전 영웅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물론 제복 근무자를 존경하는 보훈 문화가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 정부와 민간 차원의 다양한 지원책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복을 나누기까지 많은 국민의 참여와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디자인 개발에 따른 재능기부와 수억 원대의 성금을 낸 독지가와 기업도 소개되고 있다. 
실로 이 제복은 국민적 성원을 담은 국가적 예우의 산물이다.
구순의 노병은 제복 입고 걸을 기력조차도 없지만 자신을 알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해한다. 제복 입고 혼자 찍은 사진에 만족해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군인은 죽어서 제복을 입고 관속에 들어감을 영예롭게 여긴다고 했다. 
아버님도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 드리고 싶다. 오늘 찍은 아버님의 제복 입은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