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 병균처럼 전염이 되는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학한 범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오늘 또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엽기적인 사건 하나가 신문 지상의 사회면 톱뉴스로 올라 있는 것을 본다. 이삼십 대 둘이가 신용카드 사용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일반 승용차에 영업용택시 표시등을 부착해 서울과 경기 일대를 배회하며 승객인 이십 대 여자들로부터 금품을 빼앗고 살해한 뒤 자신들의 차 뒷좌석에다 천연덕스럽게 싣고 다녔다는 사연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다섯 명씩이나.
세상이 너무 혼탁하고 살벌해 어지럼증이 날 것만 같다. 오싹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워진다. 이렇게 된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르긴 몰라도 가정의 붕괴가 그 정점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 시대착오적인 것 같기도 한 성구가 결코 빈말이 아님을, 실로 절실하고 궁극적인 진리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모두는 알게 모르게 이 가정 파괴의 간접적인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여기에 관한 한 내남없이 그러한 죄를 방조했거나, 아니면 미필적 고의로 알고도 모른 척 애써 눈감아 버린 공범인지도 모른다.
특히 어머니의 위상, 어머니의 자리가 급격히 흔들려 가는 시대인 것 같다. 굳이 어머니 면허증 제도를 두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낳았다고 다 저절로 어머니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크나큰 착각이다. 요새 세상의 엄마들 가운데는 이미 어머니이길 포기한 사이비 어머니들이 대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다 날이 갈수록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이것이 더욱 큰 문제다. 세상은 그에 정확하게 비례해 날로 그 험악함의 도가 높아져 갈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없으리라. 
우리네 삶이 지난날 보릿고개에 허덕여야 할 만큼 절박한 힘겨움 가운데서도 무성한 솔밭처럼 건강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행복은 밀쳐둔 채 자식들에게 온전히 삶의 무게 중심을 두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조건 없는 희생과 헌신 덕분이 아니었을까. 
‘내 인생은 나의 것’, 너무도 당당히 이 거창한 구호를 부르짖으며 홀로서기에 나서는, 이른바 깨친 엄마들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오늘의 현실이 어쩐지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요즘 세상에 어머니는 많지만 진정 어머니다운 어머니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흔히들 ‘미시족’이라 이름하는 젊은 엄마들은 가정 안에만 머무름을 단호히 거부한다. 남편 혼자 벌어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며 너도나도 벌이의 대열에 나선다. 아니, 꼭 벌이만을 위해서도 아니다. 자아실현이란 보다 고상해 보이는 이유를 번쩍거리는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내민다. 그 덕에 얼마간의 경제적 여유는 부릴 수 있게끔 됐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물질적 풍요, 이 바람이 어느 정도는 충족돼 가고 있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따뜻하고 고운 심성이며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며 살가운 인간적 유대, 이런 소중한 것들을 반납해야 했다. 
어머니가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오뉴월 뙤약볕에 물웅덩이 잦아들 듯 날이 갈수록 줄어만 간다. 어머니의 보살핌과 자애慈愛를 먹고 자라야 할 연약한 들풀 같은 존재가 그 무관심이며 푸대접으로 기가 꺾이고 있다. 오늘의 많은 아이들은 지금 어머니의 참사랑에 목말라 한다. 이리해 그들의 여린 가슴에는 그 어떤 명약으로도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공동空洞이 생겨나고, 이 공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깊어만 질 것이다. 
바깥 생활에 나섬으로써 누리게 되는 다소의 금전적 여유가, 어머니의 가정 내 부재로 인해 얻게 되는 아이의 공허감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을 만한 상대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한번 곰곰이 헤아려 볼 일이다. 아니, 벌이로 인한 부재라면 그건 오히려 다행일지 모른다. 그다지 뚜렷이 내세울 만한 목적도 없으면서, 이런저런 이유를 달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주부主婦들의 가정 밖의 머무름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사오십 년 전, 내가 어렸을 적으로 시계를 되돌려 본다. 학교 일과가 파한 후 집에 돌아오면, 대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어머니부터 찾았다. 어쩌다 눈앞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온 집 안이 텅 빈 듯한 공허감으로 그만 끈 떨어진 망석중이의 기분이 된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존재, 어머니라는 이름은 그렇게 크고 완전한 우상이었다. 
요즘 아이들인들 뭐 그리 다를 것인가. 인간의 마음 바탕은 예나 지금이나 결국 매한가지, 그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며 정신적 안식처는 바로 세상의 어머니들인 것을……. 
우리는 이 마음의 고향을 차츰 잃어 가고 있다. 영혼의 안식처가 위협받는 세상살이의 거미줄에 불안스레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어머니의 계속된 가정 안에서의 부재, 그로 인한 공허감에 길들어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정서적 우울감이 깊어질 것이고, 이것이 훗날 뒤틀린 성격으로 발전될 소지素地를 키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툭하면 등 돌리고 갈라서 버리는 일이 식은 죽 먹듯 예사로이 행해지고 있는 세상, 날개 달린 듯 버젓이 활개치고 다니는 시대이다. 부모의 이런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의 결과는 한창 감수성 예민한 나이의 자녀들에게 감당해 낼 수 없는 마음의 짐으로 떠넘겨져, 그들의 여린 가슴에 평생을 두고 아물지 않을 대못 자국을 남긴다. 그러기에 어찌 보면 아무 죄 없는 그 아이들이 가정파탄의 가장 큰 피해자인 셈이다. 여기서 어머니의 자리가 그리 떳떳하고 온전할 리 없다, 물론 아버지들의 책임이 없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지만.
‘어머니’란 그 이름 석 자가 갖는 정서도 세월 따라 어쩔 수 없이 변질돼 가는가.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우리가 평소 별 의식 없이 버릇처럼 주워섬기고 있는 이 한마디가 오늘따라 더욱 심장한 말씀으로 다가온다. 
아버지 열이 들어도 어머니 하나를 당해 내지 못한다. 그것은 지극하고 자애롭고 숭고하기까지 한 모성母性의 자리, 그 의미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군魔軍을 항복 받은 것이 신장神將의 위압에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자비심에서였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