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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키지 못할 악연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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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19  11: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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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날의 오후는 지루하리만치 길다. 겨울철이었으면 하마 어둠살이 몰려왔을 시간인데도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 있다. 
이 훤한 대낮에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강아지만 한 짐승 하나가 반쯤 차로를 물고서 뽈뽈뽈뽈 기어가고 있었다. 얼핏 새끼 너구리 같았다. 조건반사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이 갔다. 그러면서 반대편 차로로 살짝 핸들을 꺾었다. 한적한 시골길이라 마주 오는 차가 없어 다행이었다. “무사히 지나쳤겠지?” 옆 좌석의 아내에게 물으며 진행차로로 돌아왔다. 
한데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미심쩍은 마음에 백미러로 뒤를 살폈다. 
거무끄름한 물체에 움직임이 없다. 직감적으로, 치였구나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아내의 말로는, 길 바깥쪽으로 나가던 녀석이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방향을 바꾸어 조촘조촘 안쪽으로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급히 차를 세우고 허겁지겁 다가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주둥이에 피를 흘린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러 왔다. 내 철들고 나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육고기를 멀리해 왔고, 그러다 십여 년 전부터는 아예 금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살아왔음에도 이런 돌이키지 못할 악연을 만들다니. 
살려낼 재간이 없다.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궁리 끝에 약식으로라도 장례 절차를 밟아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것이 비명에 횡사한 목숨 앞에서 내가 취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일 것 같았다.
근처 인가에 들러 연장을 빌려 왔다. 장지는 아무래도 나무 밑이 적당할 듯싶었다. 나무에 거름이 돼 푸르른 생명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렇게 기원하며 단풍나무 뿌리 곁에다 고이 묻어 주었다. 이를테면 수목장樹木葬을 치르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부터 열었다. 인터넷에서 자동차 법규를 검색해 보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는 짐승이 갑자기 차 앞에 나타났을 때의 대처 요령을 묻는 문항이 있었다. “갑자기 짐승을 발견했을 때는 피해서 핸들을 꺾어야 한다.” 다섯 개의 항목 가운데 이것이 틀린 답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피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치고 지나가라는 것이다. 어설프게 핸들을 꺾으려 하다가는 자칫 뜻밖의 사고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설이 붙어 있었다. 
자동차 법규에는 비록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만, 나는 무의식중에 핸들을 꺾었다. 게다가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아니지 않았던가. 그랬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살생을 저지르고 만 셈이다.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단순히 땅 파서 묻어 준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 같지가 않았다. 가서 명복이라도 빌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죄책감에서 놓여날 수 없을 성싶었다.
그 밤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밝히고, 다음 날 아침 슈퍼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막걸리 한 병을 샀다. 그러곤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주위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만이 산천을 수놓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어 녀석을 묻은 나무 밑에다 막걸리를 붓고는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기를 축원해 주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법대로 따지면 나는 분명 아무 잘못이 없다. 하지만 법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은가. 이제껏 운전을 하면서 비 오는 날 도로를 폴짝거리는 개구리 한 마리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애써 온 내가 본의 아니게 살생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이 죄를 어쩔 것인가. 
‘이번 일을 경계 삼아 앞으로 운전에 더욱 근신해라’ 절대자의 말 없는 계시가 귓가에 웅웅거린다. 차의 속도가 전에 없이 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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