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도 아닌 筆者는 자의든 타의든 이사를 자주 다녀 주민등록초본 숫자가 몇 장을 넘어서니,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백발의 가수분이  절규하듯 노래한 제2의 고향조차 없다. 그렇다고 고향이라고 찾아본들 ‘칭구야 니 거라마 안 댄다이’하고 무거운 삶의 넋두리라도 할 머슴애나 가스나가 없기는 매 한가지다.
능안선생님의  진한 향을 품은  시조 몇 자락에 내 고향은 물속에서 잠자니 친척도 친구도 민들레 꽃씨처럼 각지로 흩어져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지, 고향 마을 대동회 한다고 한 달 전부터 전화와  메시지, 이메일, 편지등 온갖 수단을 총 동원하여야 약 팔. 구십 명 정도 고향에서 만난다.  새로이 생일을 얻는 이는 없고 추도식의 주인공만 늘어나고 있으니 그 숫자도 점차 지키기가 힘들 모양새다. 그래서 기발한  묘안이라고 생각해 낸 것이 타지에서 태어나 고향이 아니지만 부모나 처가 등 조그마한 인연이라도 있는 젊은이가 참석을 하면 정이 담긴 박수와 장원급제한 이도령 정도의 대접을 한다. 그래도 입시(入試)와 취업(就業)의 심적 부담인지  큰 성과를 보이지 않는다고  어르신들의 걱정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
고향만 공동화(空洞化)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筆者의 집안도 아주 비슷하게 속앓이를 하고 있다. 벌써 십 수 년 전에 대통령을 지내신 그분이 조찬 기도회를 하기전인 이른 아침에 남쪽 바닷가에 살고 계신 부모님께  전화로 문안인사 드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해 보였다. 항상 많은 불효짓거리를 하고 있는 筆者도 청개구리 강가에 애비 무덤 만들고 구슬피 울 듯 지금까지 흉내만 내고 있다. 물론 우리 일곱 형제가정 모두가 이 못난 筆者의 모양이 가히 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두가 같이 하고 있으니 어머님은 전화 받으시는 재미가 제법 솔솔(率率)하신 모양이다. 그런데 ‘한 다리가 천리’란 속담처럼 손자놈들은 꼭 어버이날이나 신정(新正) 어머님(할머님) 생신날에만 무슨 생색내기 하듯이 전화를 해서는 모두가 앵무새모양으로  “안녕하세요. 생신 축화 합니다”만 나불되니 筆者의 속이 편치 않고 어머님 뵙기가 민망하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筆者가 고향에 와서 어머님을 모신다는 무늬만 등록하고는 생활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어머님은 항상 “손주놈들 모두 전화 왔었다” 하시니 죄송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님이 거처 하시는 방 한 면을 큰 회사 회장님 상황게시판처럼 꾸며서 몇째 아들의 몇째 손자가 안부 전화 오면 0표를 한 개씩 하시도록 부탁을 드렸다. 이렇게 해 드리고 구정(舊正)때 열일곱 손자 중에  상위 두 사람에게 상패를 만들어 주면서 孝道를 筆者도 잘 못하지만 설득한 보람이 있어서, 오육년 세월이 지난 지금은 손자들도 할머니와 전화를 자주하면서 또 연결되면 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사람 향기가  피워내기도 한다.
筆者와 아들 조카들은  카톡이라는 방법으로 새벽에 인사들을 나누는데, “큰 아빠 두릅이 뭐예요?”, “봄나물이지.  그런데 왜 묻니?”, “할머님께서 두릅 꺾어서  나물 해 먹으면  맛 좋다고 하셔서, 해 보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저는 두릅을 몰라요.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나요?”, “물론 살 수는 있지만,  할머님은 너가  직접 두릅을 꺾어 보고  그 기분을  길게 이야기 해 드리는 것을 기다리고 계시는 듯한데,  고3인 자네를….  딸아 몇일 기다려라”, “왜요?”,  “내가 쉬는 날  동영상 찍어서 보내 줄게. 할머님께 이번 주말에 두릅 꺾으러 고향 간다고 말씀 드리고 할아버지 산소도 보고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말씀 드려라” 
이렇게 하여 회백색의 가시가 뽀족한 줄기에 새봄이 왔다고 내 밀던 어린 순을  모질게도 꺾고, 하얀 피(血)도 촬영하고 끓는 물에 데쳐서 옆집 아줌마의 도움으로 진공 포장까지 해서 택배로 어머님께 보내드렸다. 어머님은 손녀가 손가락에 가시 찔려가며 꺾어서 할미에게 보내 주었다고 경로당에 가실 때 마다 자랑하실 것이지만, 무덤에 누워계신 아버님은 찾아뵙지 못한 손녀를 오늘밤에 어머님 꿈속에서 “할멈,  혜지 그년이 왔다 가드구먼” 하실련가?  아니면 “셋째놈이 장난 한 거 할멈은 모르제?” 하실까?.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