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갓 입학한 중 1년생이 극한 선택을 한 사건이 터졌다. 벌써 이 문제에 대해 당국의 대책은 수없이 나왔지만 이렇다 할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이 현실이다. 스쿨폴리스, CCTV, 가해 학생의 전학 등 표피적이고 근시안적 대응책일 뿐, 보다 근원적 접근을 못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기상천외한 부정부패 유형에다 빈발하는 사회악으로 나라가 온통 온전한 곳 없이 혼탁할 때,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낙담하기도 했다. 지금 이 학교폭력 문제도 그 낙담 중의 하나일까?
그렇다면 오늘의 이 학교폭력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무거운 주제에 대해 감히 원인을 진단하고 내 식견으로 대응책을 내 놓는다는 것이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른바 사회적 병폐와 비리라는 사회악은 어느 특정한 영역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사회적 별이 현상으로 서로 유기적이고 복합적이라는 사실이다.
가해 학생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내 자식만 무사하다고 안도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크게 보아 학교도 사회 한 구성원이므로 이런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사회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말이다.
오장육부 모두가 건강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질병에 걸리지 않듯 건강한 사회에서 사회악이 생길 수가 없다. 도미노 이론을 여기 대입하면 지나친 비약이 되는 것일까. 학교폭력 문제를 ‘4대악’으로 규정하여 국정지표로까지 내세웠으니 이제 어디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너무 단순한 논리일까?
가장 밝고 건강하고 생동감이 넘쳐야 할 우리 학원(學園)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가. 국가 백년대계의 인재를 양성해야 할 학교가 왜 이 지경이 됐는가. 학교 폭력이 어찌 교사와 학생만의 문제일가만 어쨌거나 보호막이 되지 못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권위주의적이라고 하여 ‘훈계’라는 말이 없어진지 오래인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는 커녕 꾸지람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 교사상(像)에서 무엇으로 학생을 가르치겠는가. 교권과 학습권을 두고 서로 수평적 관계라고 정의하는 마당에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민주화는 나라의 근간인 헌법적 가치이다. 이의 실현을 위한 값진 대가도 치렀지만 민주화의 순기능 뒤에 숨은 역기능 현상을 간과했거나, 아니면 팽배한 평등주의가 낳은 평등교육이 불러운 폐해는 아닐까라는 아주 조심스런 진단도 해보는 것이다. 적어도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수평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도 교사는 교사이고 학생은 학생이라는 말이다.
지식과 교양 그리고 바른 품성과 한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원초적 소양을 기르는 행위가 교육의 본령이며 가장 보편적 목표인 동시에 가치이기도 하다. 이 포괄적 개념 속에는 우리들 살아가는 공동체의 규율도 포함돼 있음은 상식인데 언제부터인가 이 공동체의 규율도, 교육 목표도 실종돼 버렸다. 전래의 농업시대를 지나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는 사이 목표와 가치의 혼돈이 오고 만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師影不可踏)는 사제의 윤리도 그 혼돈 속에 함몰된 지 오래다. IT세대와 농업세대와의 부조화인가. 왜 이렇게 갈 데까지 가고 만 것인가.
5.16 정변이 있은 후 한때 반짝 사회 운동으로 ‘인간개조’라는 거창한 구호도 나왔다. 국가기관 ‘국민운동본부’도 그때 나왔다. 더 잘 살아보자는 새로운 사회 기풍 운동이 일어났고 그러자면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으니 이 ‘사람’의 인성을 깨우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사고방식을 과감히 바꾸는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상당한 실효를 거뒀던 것도 사실이다.
가난을 좀 벗어나 물질적 풍요는 누렸지만 인성은 그 삶을 따라갈 만큼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물질만능이라는 풍조가 만연했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이런 사회 가치관의 변화에 편승해 인간관계도 급격히 변해갔다. 여기다 민주화라는 정치적 격변은 인간관계의 가장 기초적 질서인 위계질서도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기업은 신성한 노동운동을 탄압하니 노동자인 을은 노동쟁의라는 이름을 빌어 불법·탈법·떼법로 대응했고 사회 정의라는 말이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국가 공권력은 空권력이 되고 만 것이다.
교육입국의 최일선인 학교에는 교원노조도 생겼다. 처음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노조 그 자체를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상호 협조와 소통 그리고 상생관계가 아니라 대결적 관계로 변질됐던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한다. 현장학습이라는 미명으로 빨치산 축제에 중학생을 견학시키고 이른바 이념 교육으로 오도하는 현상도 교원노조 문제와 별개는 아닐 것이다. 그 중학생이 성인이 됐을 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라는 것도 나왔지만 자주 교권과 상충되니 이 또한 교원노조 문제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사랑의 매’로 훈육하던 고전적 의미로의 교사상을 정립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관계 설정(設定)은 있어야 함을 말하고자 함이다. 적어도 지식만을 주고받는 거래 관계는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교사 중에는 묵묵히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열정을 불사르는 분이 더 많지만, 일부는 아직도 사회 변화에 적응을 못하고 서로 사랑과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상명하복의 관계로 인식하는 극소수의 교사가 있는 것도 부정할 길은 없다. 그렇다고 5~60년대의 ‘매’ 하나로 가르치던 단순 강의식의 시대로 돌아가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창의성과 인성 중심으로 교육해야 하고 사회적 변화에 따른 학습 성적 못지않게 인성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학교라는 특수 조직체는 가르치고 배우고, 사랑과 존경이 그 존립 근간인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도덕률도 느슨해져버려 인간관계의 근간이 무너진 우리 사회의 속된 말로 ‘어른 아이가’ 없어졌다고 탄식이 나온 지 오래이다. 우리들 어릴 때는 남의 어른도 ‘사회적 교사’가 되기에 충분했을 생각하면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개똥녀’가 나오는가 싶더니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막말이 SNS에서 홍수를 이루고 그 파급은 학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막말이 아니라 옮겨 적을 수도 없는, 거의 육두문자 수준인 비이성적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으니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 아이도 어른도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말이 너무 공허하고 무력하기만 하여 서글프기까지 하다.
공무원의 노조가 생기니 이러다간 경찰노조, 군인노조도 생길 판이라고 시니컬한 사회 비판도 있었다. 정당한 권익을 찾고 의무와 권리를 향유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래도 상급자는 상급자고 하급자는 하급자인데 7급 공무원이 단체장을 개로 형상화하여 새끼를 매어 끌고 다니는 세상이 됐으니 이런 세태에서 무슨 사회 질서와 기강과 기풍이 정립하겠는가. 민의의 전당 신성한 국회에는 쇠망치가 등장하고 최루탄까지 터트리는 판이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오늘의 이 현상을 보고 누가 탄식하며 말했다. 이제 사부(師傅)도, 원로도 ‘사회적 어른’도 없어졌다고. 이에 더하여 ‘어른 아이’의 구분도 없어졌다. 어른의 어른 대접을 해야 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최소한의 위계질서로 이렇게 세대, 계층, 빈부와 이념 등으로 갈가리 찢긴 사회를 지탱하는 구심점은 꼭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민주주의라 하여 첨예하게 의견을 대립해도 국익이 최우선이어야 하며 함께 살아가야할 사회의 지향점은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학교도 이 원칙에서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어른을 대하듯 학생이 교사를 대하여야 하고 ‘스승존경과 학생사랑’이 최고의 덕목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교단에 선 교사만 스승이 아니라 이른바 덕망이 있어 존경 받는 사회 원로도 ‘스승’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교단 교사의 가르침으로 또 사회 원로의 가르침을 좌우명으로 하여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현상이 바로 가는 사화이다.
흔히들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 3주체라고들 말한다. 이들 사이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여야 한다. 체벌 좀 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무릎 꿇게 하고 멱살잡이로 폭행했다는 사실 앞에서는 경악 밖에 할 게 없다. 이런 환경에서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길 어떻게 바라겠는가.
우리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가. 범죄도 지능화, 흉포화하고 패륜 범죄도 예사로 일어나니 이제는 무감각해지기까지 한다. 적어도 가난했던 시절에는 이러지는 않았다. 생활이 나아지면 사회 안전망도 튼튼해야 하는데, 남자아이는 학교폭력에, 여자아이는 성폭력에 하루도 안심할 수 없어 조마조마해야 하니 이래서야 언제 국격이 높아지겠는가.
굳이 누구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아날로그 시대의 사고로 디지털 시대의 사회를 한 규율에 얽어맬 수 있는 정책은 없다. 다만, 당장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먼 장래를 내다보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더욱이 교육 정책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서두에 언급했듯 ‘인간개조론’은 어떨까? 난데없이 내 이 지난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언감(焉敢)일 수밖에 없음은 내가 더 잘 안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사에 있어서는 시대 변화에 따라 인간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부인할 수 없지 않겠는가. 오로지 엥겔계수에만 매달리던 단순했던 생활사에서 분화된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하는 지금은 의식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 같은 어른, 어른 같은 아이’는 어떨까? 성선설의 본질이듯 태어날 때의 그 순수함을 지닌 아이 같은 어른, 사리 분별력을 가진 어른 같은 아이가 된다면 사회는 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치기(稚氣)에 가까운 제언도 해보는 것이다. 5.16 이후 국부(國富)정책과 병행하여 인간혁신의 사회운동도 했으면 그게 바로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초고속으로 변화해가는 오늘의 사회를 한마디로 규정할 말을 찾지 못한다. 구태여 찾자면 그저 ‘복잡다기화’라고만 말할 뿐이다. 이럴 때 사회를 위한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한 거대한 키워드는 어디 없을까? 이 혼탁한 사회를 무엇으로 치유할까? 그래도 주장할 말은 막연하지만 인성 교육이요 인간성회복 운동이 요체일 뿐이다. 입시 위주 교육에 밀려나버린 인성 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다. 인성이 21세기의 국가 경쟁력이라고 설파하고, 경제 논리가 아니라 도덕과 품성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교육하자도 있다.
다시 말하여 이 주마간산식 얼치기 주장이 언감일 수밖에 없지만 세상을 향해, 학교를 향해 한번 호소해 보는 것이다.